윤 수석은 문 대통령이 발사대 4기 추가 반입에 대해 보고받지 못했다가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국방부가 발사대 4기 반입을 일부러 대통령에게 숨겼다면 국기문란이자 하극상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국방부 측은 ‘커뮤니케이션 상의 오류’라는 입장이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희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 문 대통령, 고의 누락에 “충격적”
청와대는 국방부가 국가안보실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사드 발사대 4기가 비공개로 추가 반입된 사실을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게다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의 국가안보 참모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문의에도 모르쇠로 나왔다는 사실까지 공개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31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한 내용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국방부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에는 사드가 대한민국에 전개돼 있다는 취지로 포괄적 기술만 이뤄졌다. 이 보고서 초안에는 ‘6기 발사대 모 캠프에 보관’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었는데 최종 보고서에는 이 문구가 빠졌다. 청와대는 위승호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등 군 관계자를 불러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의도적인 보고누락으로 판단했다.
청와대가 밝힌 누락 확인 과정은 이렇다. 5월 21일 임명된 정의용 안보실장은 26일 국방부 위승호 실장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는 24일 선임된 이상철 안보실 1차장과 김기정 안보실 2차장도 동석했다. 정 실장은 보고내용에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이상철 1차장은 26일 오후 7시 30분쯤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한 국방부 관계자를 사무실로 따로 불렀다. 군 출신인 이상철 1차장은 세부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드 발사대 4기가 비공개로 국내에 반입돼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이상철 1차장은 27일 정 안보실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윤영찬 수석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사실을 들은 정 안보실장은 28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의 오찬에서 ‘사드 4기가 추가로 들어왔다면서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한 장관은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며 오히려 되물었다. 정 실장의 질문이 “사드 발사대 4기가 추가로 반입됐느냐”고 물은 것인데 한 장관이 딴청을 부렸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정 안보실장은 한 장관과 오찬을 한 바로 다음 날인 29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안보실은 국방부 보고서 외에 사드 4기 추가반입 사실을 담은 별도 보고서도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정 안보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국가 운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드 배치가 국민도 모른 채 진행됐고 새 정부가 들어서 한미 정상회담 등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임에도 국방부가 이런 내용을 의도적으로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 충격을 받은 것이라고 청와대는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30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반입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이어 조국 민정수석과 정 안보실장에게 철저히 진상을 파악할 것을 지시했고 언론에도 이 사실을 브리핑을 통해 공개했다.
# 청와대, 국기문란 간주 진상 규명 착수
3월 6일 사드 발사대 2기의 한국 도착, 그리고 4월 26일 성주 골프장으로 들어간 사실은 이미 확인됐고 언론에도 나왔다. 사드 편제는 1개 포대가 모두 6기 발사대로 구성되는데 이미 반입된 발사대 2기 외에 나머지 4기는 추가로 들어올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만 나왔을 뿐 이후 정확한 소식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머지 4기 발사대가 국내 미군기지에 보관 중이라는 사실이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서에서 빠지고 ‘사드 장비가 한국에 전개됐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서술됐다는 것이 청와대가 발끈하는 이유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오찬을 하며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 반입을 거론하자 한 장관이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한 것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 청와대 반응이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사실 있기는 하다. 발사대 6기가 있어야 완편된 1개 포대를 이루는데 청와대가 국내 반입된 사드 발사대 개수를 모르고 있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그러나 군 통수권자에 대한 보고에서 발사대 모두가 반입된 사실을 빼먹은 책임은 국방부 측이 어떤 구실을 대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공직 사회의 보고 체계는 향후 관련 근거를 반드시 남긴다는 점에서 모두 문서로 이뤄지는데 이 문서에 이런 내용이 빠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사드 발사대 개수를 보고서에서 빠뜨린 것은 실무진으로, 내 지시에 따른 것은 아니다. 실무자들은 표현 속에 포함됐다고 봐서 숫자 표기를 안 했다는 것(으로 본다)”이라고 설명했다. 한 장관은 또 오찬 발언에 대해서는 “뉘앙스 차이라든지 이런 데서 그런 차이점이 있다고 얘기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말해 모르쇠로 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상의 오해라는 입장을 내놨다.
국방부의 고질적인 관행이 드러났다는 비판도 있다. 국방부가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사드 발사대 개수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군 당국이 보인 비밀주의의 병폐가 그대로 이어진 것이라는 의견이다. 지난 정권에서 군 당국은 국민적 관심이 쏠린 국방 현안에 관해 군사 보안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드에 관해서도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고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계획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청와대는 군사 보안을 이유로 국방 현안에 관해 함구하는 군 당국의 습관을 고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인 만큼,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 여야 공방 확산, 사드 배치에 영향?
민주당은 이번 파문을 국기 문란으로 받아들인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사드 배치 과정 전반에 대한 청문회 개최와 국회 비준 동의안 처리 등 실질적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심재권)는 6월 1일 오전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이번 파문을 ‘은폐 보고’로 규정,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라인 핵심 인사인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을 증인으로 하는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맞서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대여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청와대와 국방부의 ‘진실 공방’을 파헤치기 위해 당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든다고 1일 밝혔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은 “(문재인 정부가) 인사 실패에 이어 국정 난맥상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사드 문제가 대두했다“며 ”청와대 안보실과 국방부가 진실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고 국민은 아연실색한다. 코미디를 하고 있다고 본다. 안보 자해를 하지 않기를 경고한다”고 했다.
이처럼 사드 논란이 정쟁을 격화시킬 불씨로 번지면서 주한미군 사드 배치작업은 장애물을 만나게 됐다. 사드 배치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상황에서 보고 누락 파문이 터진 데다 정치권의 다툼으로까지 확전, 사드의 운명이 예측불허 상태로 바뀐 것이다.
사드는 6기의 발사대 완편 체제만 못 갖췄을 뿐 사실상 가동 상태였다. 주한미군은 지난 4월 26일 새벽 사드 부지에 발사대 2기와 사격통제 레이더, 교전통제소, 발전기 등 핵심 장비를 전격적으로 반입했고 다른 기지에 있는 발사대 4기를 빼면 사실상 모든 장비가 들어간 상태다. 이미 초기 작전운용 단계에도 들어섰다는 판단도 있다. 실제로 지난 14일에는 사드 레이더가 북한이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발사한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2형’도 탐지했다. 북한이 당장 남쪽으로 탄도미사일을 쏠 경우 사드는 이를 탐지·추적하고 요격 미사일을 쏴 격추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사드 배치 과정 전반에 관한 진상조사가 시작됨에 따라 일단 사드 배치작업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실상 중지될 전망이다. 경북 성주 골프장에 있는 사드 배치 부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국내 미군기지에 대기 중인 사드 발사대 4기도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주한미군 사드가 제 역할을 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1개 포대를 완성시킬 4기의 발이 묶이면 사드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요격미사일 8발을 장착한 발사대 1기가 미사일을 쏘고 재장전하는 데는 30분 정도 걸린다. 결국 발사대가 여러 기 있어야 요격미사일 여러 발을 한꺼번에 쏴 요격률을 높일 수 있다. 사드 부지 밖에 있는 발사대 4기를 반입, 완편 체제를 만들지 못하면 사드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보고 누락과 환경영향평가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조사를 지시한 만큼 환경영향평가가 주민 공청회 등까지 포함해 보다 철저하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사드 가동은 더 늦어진다. 한미 간 외교적 갈등 소지로 만들어질 가능성도 크다. 사드 배치 과정에 관한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쟁점이 될 수도 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