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6월 1일 오전의 일입니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주문을 합니다.
“지금 국면에서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고대 가야 역사의 연구와 복원 사업을 꼭 정책과제에 포함시켜 줬으면 한다”
문 대통령은 이어 우리 고대 가야사에 해단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습니다.
“우리 고대사는 삼국사를 중심으로 연구됐다. 삼국사 이전의 역대 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안 된 측면이 있다. 특히 가야사는 신라사에 겹쳐서 제대로 연구가 안 됐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가야사 연구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야사는 경남을 중심으로 경북까지 미친 역사로 생각하지만, 하실 그 보다 넓다...섬진강 주변 광양만과 순천만, 심지어 남원 일대까지 맞물린다. 금강 상류 유역까지도 유적들이 남아있다.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은 영호남 공동사업으로 두 지역의 벽을 허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의 중요성을 두고 뿌리 깊은 우리 정치사의 당면 과제인 ‘지역감정 해소 및 화합’과 연결 짓은 셈입니다.
문 대통령은 약 1500년 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리 가야사의 숨겨진 ‘비밀의 방’ 앞에서 노크를 시작한 셈입니다.
일단 우리 고대사의 한 대목인 가야에 대해 좀 알아보겠습니다.
가야는 우리 고대 삼한 중 하나인 변한에서 비롯된 여러 국가의 총칭입니다. 2~3세기 경 기원한 가야는 그 구성과 내용에 대해 여전히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가야는 중앙집권화 된 하나의 나라도 아니었고, 뚜렷하게 통일 된 정치적 단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연맹 수준의 제국(諸國-여러 나라)이었죠.
우리의 <삼국유사>에는 6개의 나라가, 일본의 <일본서기>에는 10개의 나라가,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24개 나라가 거론되기도 합니다.
역사 속에 거론된 가야의 다른 명칭만 해도 가량, 가라, 가락, 가기, 구야, 하라, 임나(任那) 등등 너무나 많습니다.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는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등 명칭은 훗날 고려시대에 호족들을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6세기 무렵 신라로 하나하나 통합되기 시작한 가야는 짧은 역사를 뒤로 한 채 서서히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집니다. 하지만 가야는 그 짧은 역사 속에서도 찬란했습니다.
‘철’을 어느 정도 다루느냐는 해당 문명의 수준과 깊이를 가늠하는 지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야는 ‘철의 왕국’이라 칭해질 만큼 철의 생산과 무역으로 군사적·경제적 번영을 이룬 곳이었습니다.
가야는 철을 화폐로 사용하기도 했고, 주변의 일본과 중국에 철을 대량으로 수출했습니다. 가야가 6세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배경도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 지역의 정세가 불안정하여 ‘수출 길’이 막혔기 때문이죠.
앞서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과 관련해 영호남 화합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지적은 합당합니다. 훗날 밝혀졌지만 가야는 전성기 시절 섬진강과 지리산을 주변으로 하는 지금의 전남과 전북지역까지 세를 뻗혔습니다. 특히 지난해 전북 남원 운봉고원 일대에서 가야의 제철유적 30여 곳이 조사됐고, 관련 유적이 확인됐습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지시는 또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사실 가야사 복원 사업은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러던 것이 노무현 정부 때 2단계 사업까지 진행됐죠. 한때 가야 수도였던 경남 김해를 신라의 경주 수준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구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예산 문제 탓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흐지부지 됐습니다. 문 대통령의 지시로 가야사 복원 사업이 재개된다면 앞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뜻을 계승하게 되는 셈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어쩌면 문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 주문 이면에는 일본을 겨냥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가야사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놓고 봐서도 참 예민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 때문이죠. 임나일본부설은 4~6세기에 걸쳐 일본이 한반도에 통치 기구를 세워 반도 남부 지방을 식민지로 삼았다는 일본 일부 학계의 주장입니다. 그 핵심지역이 바로 ‘가야’입니다.
사실 합리적 고증과 연구를 통해 도출된 가설이라기 보단 일본의 대 조선 침략과 식민지화를 뒷받침하고자 한 일종의 국수주의적 가설일 뿐입니다.
문제는 일본 내 우경화가 확산됨에 따라 임나일본부설이 일부 교과서에도 사실로서 게제되는 등 우리 ‘가야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때문에 우리 가야사를 제대로 조명하고 복원하는 것은 이 같은 일본의 그릇되고 국수주의적인 가설을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가야 복원사업...과연 일본의 아베 총리는 어떻게 생각할지 짐짓 궁금해지는 군요.
아무튼...문 대통령의 바람대로 1500년 간 단단히 잠겨 있는 가야의 ‘비밀의 문’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활짝 열릴까요?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