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SBS 8뉴스>에 경고 조처를 내린 바 있다. 해양수산부가 뒤늦게 세월호를 인양한 것이 당시 유력 대선 주자였던 문재인 대통령 측과 거래를 한 것이라는 의혹을 보도한 것에 대한 주의 조치였다. 뉴스에서는 해수부 소속 공무원 발언이 보도됐지만 해수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 측에서 강하게 반발했고, SBS는 지난 달 17일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보도를 한 취재기자 등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사실을 보도했을 경우에도 비난이 빗발쳤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민정수석으로 거론됐던 지난달 초, 조 수석 모친이 소유한 학교법인이 고액 세금을 체납했다는 보도도 이에 해당한다. 이에 ‘조국 민정수석 모친의 경우 체납액이 작아 취재 의도가 악의적이며 다른 국회의원들의 체납도 취재하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지난달 12일에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부친이 운영하는 사학법인이 24억 상당의 체납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에 나 의원에게 불똥이 튀었다는 해석과 함께 나 의원 부친이 법인부담금을 이미 납부했다는 반론보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 지지자와 진보언론 간의 갈등구도가 형성되기도 했다. 진보성향을 표방하는 한 매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대통령 영부인의 호칭을 ‘김정숙 씨’로 썼고, 또 다른 진보언론에 소속된 한 기자가 개인 소셜미디어에 ‘덤벼라 문빠’라는 제목의 사진을 게재했다는 게 이유였다. 독자들은 신문을 절독하겠다는 공분을 표현했고, 이에 언론사가 지면을 통해 사과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네티즌이 개발한 ‘언론감시 DB’ 캡처.
이후 언론 보도 내용뿐 아니라 보도를 한 취재기자에 대한 대응이 온라인상에서 확산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딴지일보에서 운영되고 있는 자유게시판에서 ‘악질 언론 감시 DB를 구축하자’는 의견이 처음으로 제시됐고, 많은 네티즌들이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가칭 ‘대한민국 네티즌 연대 언론감시 프로젝트’라는 이번 제안은 문 대통령을 지키고 언론을 감시한다는 의미를 내세우며 웹디자이너 등 자원봉사자와 후원 등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후원 의지를 드러냈다.
이 네티즌은 언론을 감시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대안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악의적인 내용이 담긴 기사에 평점을 매겨 ‘이달의 기레기’나 ‘쓰레기 언론사’ 등을 공론화하고 최악의 기사와 기자를 정해 시상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또 ‘기자들의 문장력과 어휘 사용 등에 대해 공격을 하자’며 ‘악질적인 기사를 썼다고 욕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오타나 싸구려 문장에 대한 기자 자질 공격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기자들이 대부분’이라며 기자를 공격하는 패턴을 다양화하자고 제안도 있었다. 이목을 끄는 것은 기자를 오프라인에서 보면 실시간으로 언제 어디서 봤다고 소식을 전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능을 담은 시스템의 제작기간을 한 달로 정했고, 추후 다른 대형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게시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현재 언론감시DB 내에는 매체와 기자 이름을 기록하는 ‘언론지도’ 페이지와 특정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감시DB보기’ 페이지가 개발되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 2009년부터 지난 5월까지 작성된 기사 몇 건이 등록돼 있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기사가 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보도로 한정돼 있지만, 향후 정치권뿐만 아니라 문화, 사회 일반의 보도에도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네티즌으로 구성된 시민들이 기자와 기사를 평가하는 움직임은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다. 이봉우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담당 활동가는 대선정국 이후 시민들의 언론을 수용하는 의식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 활동가는 “SNS 등으로 이전보다 언론 보도를 접할 수 있는 접근성이 높아졌고 최근 인사청문회의 경우에도 시민들이 각종 자료를 통해 공직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이 다양해졌다”면서 “시민들이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언론사는 좀 더 치밀한 팩트체킹을 해야 하며 취재 근거에 대해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유창선 사회평론가는 시민들이 언론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되는 부분을 짚었다. 유 평론가는 “최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판적인 기사가 나오면 언론사나 방송국 게시판뿐만 아니라 SNS에도 항의와 비판 글이 많이 쏟아지고 있다”며 “이는 정권교체에 반하는 현상으로 박 전 대통령 때도 보도를 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위축됐었는데 정권 교체 이후에는 자유롭게 보도하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전보다 더 다수의 기자들이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자기검열까지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 사회평론가는 이어 “문 대통령 열성 지지층이 집단적, 조직적으로 기자들을 공격하는 행동이 심해지면 오히려 문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상황이 조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형 커뮤니티에는 기자보다 더 정확하게 팩트를 추구하는 전문가들이 많다”며 “앞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기사를 쓰면 양질의 저널리즘이 실현될 수 있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자유로운 취재가 이뤄져야 할 시기에 언론 탄압을 느끼고 있다. 이미 관리 대상에 이름을 올리고 신상이 노출된 기자들이 있는데 앞으로 문재인 정부에 필요한 비판 보도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며 불만을 내비쳤다. 또 한 통신사 소속 기자는 “기자가 독자들의 ‘좋아요’를 받으려고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다”면서 “기자를 감시하는 시스템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도구로 악용돼서는 안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