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호주 오픈 우승 세레머니를 펼치는 장하나. 연합뉴스
[일요신문]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가 술렁이고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태극낭자’ 중 한 명이 미국생활을 접고 국내 복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1년 남짓한 시간에 LPGA 통산 4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던 장하나(BC카드)다. 미국 무대에서 거머쥘 수 있는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마다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국내로 복귀했다. 아직 만 25세로 전성기 기량을 보일 젊은 선수가 LPGA 투어 카드를 반납하는 일은 이례적이기에 그의 행보에 많은 이목이 집중됐다.
지난 5월 22일 장하나는 소속사를 통해 복귀 의사를 밝혀 골프계 이슈로 떠올랐다. 다음 날인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내 복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장하나가 직접 밝힌 복귀 이유는 ‘행복’이었다. 그는 “세계 1위가 유일한 목표였다. 그리고 세계 1위에 오르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이동거리가 멀어 개인적 시간을 내기 힘든 LPGA 투어 활동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즌 중임에도 본격적인 복귀 선언을 앞두고 그는 국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 2월 호주 오픈 우승으로 LPGA에서 이번 시즌 가장 빨리 우승한 한국 선수가 됐다. 하지만 꾸준한 대회 참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 4월 초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도 불참했다. 대신 국내 대회인 롯데렌터카 여자오픈과, 삼천리 투게더 오픈에 2주 연속 참가했다. 5월 초 열린 LPGA 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일정을 소화한 이후에도 국내에서 휴식과 훈련을 병행했다.
장하나의 이 같은 결정에는 ‘효심’이 상당 부분 작용됐다. 그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70세를 바라보는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아버지 장창호씨는 다른 ‘골프대디’보다 비교적 고령임에도 가까이서 장하나를 챙겼다. 어머니 김연숙 씨는 딸이 세계적 골프선수로 성장하기까지 식당을 운영하며 지원했다. 장하나는 자신을 평생 뒷바라지해온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더 많은 돈과 명예를 뒤로했다.
장하나는 미국 무대 4승을 거둔 세계적 골퍼가 됐다. 하지만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LPGA 투어 3년차에 접어들면서 많이 적응이 됐고 성적도 냈다”며 “하지만 마음 한 편이 점점 허전해짐을 느꼈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 ‘가족이란 이름으로…’
그는 자신이 느낀 허전함의 원인이 ‘가족’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장하나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됐다. 항상 응원해주시는 아버지, 어머니, 친구들, 팬들 등 여러 사람이 떠올랐다”며 “이제는 부모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보다 더 즐거운 골프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건강 또한 그의 유턴에 크게 작용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딸과 남편 없이 1년에 300일 가까이 혼자서 지내며 생긴 외로움으로 우울증 약까지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하나는 “지난해 쉬는 기간 동안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어머니도 저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운전할 수 있는 나이가 됐으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맛집도 가고 건강도 찾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된다 하더라도 LPGA 재도전은 없다는 의견도 확실히 했다.
국내 일정 다수를 함께 하는 것으로 알려진 장하나 가족. 연합뉴스
장하나의 갑작스런 발표에 투어 동료들도 놀랐다. 장하나는 “지난해 일본 대회 때(11월)부터 복귀를 생각했다”면서도 “비밀스럽게 진행을 해왔기에 동료 선수들도 모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습을 도와주는 코치에겐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장하나의 스윙을 교정해주고 있는 김종필 프로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매니저도 아니고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에 장 프로의 결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서도 “어머니 건강에 대해서는 몇 번 이야기를 나눴다. 고민거리를 들어준 정도였다. 걱정이 많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 씨는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삼겹살로 유명한 이 식당은 주변에선 ‘골퍼 장하나 식당’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김 씨는 식당 운영으로 장하나를 뒷바라지했다. 맛집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차츰 식당을 확장해 현재는 상가 지하 1층의 반 이상을 식당이 차지할 정도다. 김 씨는 1년여 전부터 식당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쉬고 있다. 인근에 살던 집도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했다.
“하나가 3살 때부터 크는 걸 봤다”는 식당 주방장은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하나는 두 부부가 40세가 넘어서 가진 소중한 딸이다. 부부가 정성스레 딸을 키웠고 하나도 부모님께 잘하는 화목한 가족이다”라고 설명했다.
장하나 현수막이 걸려있던 식당. 사진출처=장하나 팬클럽 카페
장하나의 부모는 올해부터 딸의 많은 일정을 함께 소화하고 있다. 지난 5월 23일 복귀 기자회견에도 참석해 딸을 지켜봤고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함께한다.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이 열린 제주에도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 ‘챔피언’ 복귀로 KLPGA 판도 바뀔까
미국에서 정상급 성적을 내던 장하나의 복귀로 KLPGA 판도에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장하나는 미국 진출 이전 KLPGA 무대를 평정한 바 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통산 8승을 기록했다.
2015년 본격적으로 미국 무대에 도전한 장하나는 2년차부터 승수를 쌓아갔다. 지난해 2월 코츠 골프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경험한 그는 1년간 3회 우승을 달성했다. LPGA에서 활약하는 한국 골퍼 중 시즌 최다승 기록이었다. 올해 처음 참가하는 호주 오픈에서는 LPGA 통산 우승을 4회로 늘리며 승승장구했다. 그가 목표로 달려오던 세계 1위도 멀지 않아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우승 이후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에 그는 국내 복귀를 발표했다.
세계 최고 무대로 불리는 LPGA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그는 국내 무대에서도 상위권 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장하나의 장점 중 하나는 호쾌한 장타다. 올 시즌 장하나는 LPGA 투어에서 드라이빙 거리 평균 258.827야드(약 232미터)로 32위에 올라있다.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이 기록을 그대로 국내 무대에 적용한다면 지난 E1 채리티 오픈 우승을 차지한 이지현에 이은 5위 수준이다. 2일 시작된 롯데 칸타타 오픈에서도 장하나는 3언더파 69타로 선두와 3타차 공동 10위를 기록했다.
김종필 프로는 “장 프로는 최근 하루도 쉬지 않고 스윙 가다듬기에 열중하고 있다. 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큰 근육으로 스윙에 힘을 싣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워낙 실력 있는 선수인 만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하나 같은 훌륭한 선수가 국내 투어에 전념하게 됐다. 국내 골프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장하나는 특유의 밝고 당당한 성격으로 스타성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LPGA 투어에서도 비욘세 춤이나 골프채를 활용한 ‘검술 묘기’ 등 화려한 세리머니로도 화제를 모았다. 이에 LPGA 사무국에서는 공식 홈페이지에 남긴 작별인사에서도 “흥미로운 세리머니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겼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장하나는 2일 롯데 칸타타 오픈 1라운드 9번홀에서도 두 번째 샷을 치자마자 “자, 한 번만 가주자”라고 소리쳤다. 이후 공이 그린 위에 안착하자 깡충깡충 뛰며 기쁜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이번 시즌 KLPGA 무대에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KLPGA 사무국에서도 그의 복귀를 반겼다. KLPGA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선수 개인으로는 미국 도전이 중단돼 아쉽겠지만 KLPGA 입장에서는 호재로 볼 수 있다. 장하나는 2013년 KLPGA 대상, 상금왕, 다승왕 출신이다.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해 흥행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세계 1위 신지애도 행복 찾아 ‘투어 반납’ 누군가에게는 꿈일 수도 있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카드, 그렇기에 장하나의 투어카드 반납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장하나 이전에도 이 같은 결정을 내린 한국 골퍼가 있었다. 현재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에서 주로 활약 중인 신지애(스리본드)는 장하나에 앞서 지난 2014년 LPGA 투어 카드를 반납한 바 있다. 2008년까지 국내 무대를 평정했던 신지애는 2009년부터 미국 무대도 주름잡았다. 2010년에는 세계랭킹 1위에도 오르는 등 강력한 모습을 보이던 신지애는 2014년 돌연 LPGA 투어 카드를 반납했다. 당시 신지애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삶이 행복하지 않다”며 이후 일본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이동거리가 멀어 체력적으로도 어려움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지애는 지난 2013년 이전에 비해 승수가 줄어든 1승만을 거둬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LPGA 투어카드를 반납 이후 JLPGA 무대에서 지난해까지 10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이에 장하나의 복귀 후 국내 성적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상] |
장하나 연관 검색어 ‘가방 사건’…“그일 때문에 복귀하는 것 아니에요” 장하나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동료 프로골퍼 전인지와 ‘가방 사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지난해 3월 장하나의 아버지가 싱가포르 공항 에스컬레이터에서 놓친 가방에 전인지가 맞은 사건 때문에 생긴 검색어다. 당시 전인지는 가방에 맞아 생긴 허리 부상으로 대회 참가를 포기했다. 공교롭게도 전인지가 포기한 대회에서 장하나가 우승하며 사건은 더욱 화제가 됐다. 사건은 양측의 감정싸움으로 이어졌다. 장하나 측은 사과와 함께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고 전인지 측은 “충분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양 선수의 팬클럽 간에도 온라인 상에서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어지는 비난에 장하나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얻으며 2개월간 투어를 쉬기도 했다. 아버지를 향해 쏟아지는 질타에 특히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 또한 몸져누운 딸을 보며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두 선수가 얼굴을 붉히는 듯했던 사건은 지난해 6월 한 대회에서 같은 조에 두 선수가 편성돼며 일단락됐다. 장하나와 전인지는 대회 이전에 화해했음을 밝혔고 라운드 내내 서로를 응원했다. 마무리된 사건이지만 이 때문에 장하나가 국내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일부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에 장하나는 지난 5월 23일 국내 복귀 의사를 밝힌 기자회견에서 “힘들었지만 그것 때문에 복귀하는 건 아니다”라며 “마음고생은 했지만 다 훌훌 털어버렸고 전인지와도 웃으면서 다 화해했다”고 말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