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히드마틴의 F-35 라이트닝 II. 일요신문 DB
차세대 전투기(FX) 3차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무기도입 사업으로 꼽힌다. 총 8조 3000억 원의 예산으로, 고성능 전투기 60대를 도입하고 향후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위해 핵심 기술을 이전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주요 장비와 기술을 국산화하고 부족한 기술과 핵심 기술은 절충교역 등으로 확보하기 위해 공군과 국내 방산업체는 물론, 각 정부부처까지 협력해 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현재 이 사업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FX 3차 사업 하나로 인해 향후 공군의 전력 증강 계획 자체가 통째로 흔들리게 된 탓이다. 현재 감사원의 조사 대상이 됐고, 동시에 사업 과정에서도 불거졌던 논란이 또 다시 수면 위로 오르면서 사업의 핵심 관계자들이 입길에 오르고 있다.
# 손바닥 뒤집듯 바뀐 결정
FX 3차 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사업 절차에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최종 결정 과정에서 큰 잡음이 나온다. 단독 후보로 최종 결정을 앞둔 전투기 기종이 비정상적으로 한순간에 뒤바뀌어서다. FX 3차 사업은 국내 무기 도입 사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이라는 기록과 함께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앞서 이 사업은 해외 주요 무기업체의 3파전이었다. 주요 대상은 첨단 스텔스 기술을 앞세운 록히드마틴의 ‘F-35A’, FX 1차 사업에서 도입한 F-15K와 호환성에서 강점을 보인 보잉의 ‘F-15SE’, 2011년 NATO의 리비아 공습에서 97%에 가까운 타격 성공률을 보인 에어버스(구 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이다.
당시 세계 각국의 군비 감축으로 하락세였던 세계 무기시장에서 조 단위의 예산을 투입하는 한국의 FX 3차 사업은 무기업체들에겐 ‘한줄기 빛’이었다. 국가 간 단일 무기구매로는 이 정도 규모의 거래는 없었다. FX 3차 사업 하나로 한국은 세계 무기 시장에서 ‘슈퍼 갑’이었다. 앞서의 3개 업체가 2012년 1월 30일, 사업 공고와 동시에 파격적인 조건이 적힌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각축전이 벌어진 건 이 때문이다.
첫 사업 공고 이후 결정까지 1년 8개월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유찰과 재공고가 나오는가 하면, 시험평가부터 절충교역, 가격협상까지 공개된 내용만으로도 횟수를 세기 벅찰 만큼 수많은 협상이 벌어졌다. 이 과정을 거쳐 방위사업청은 2013년 8월, FX 3차 사업 기종으로 미국 보잉의 F-15SE를 선정했다. F-15SE는 여러 차례 진행된 가격입찰에서 방사청이 제시한 8조 3000억 원의 가격조건을 경쟁 기종 가운데 유일하게 충족시켰다.
한 달 뒤인 같은 해 9월 24일,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방위사업추진위원장)의 주재로 방위사업추진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안건은 ‘F-15SE 차기 전투기 기종 선정안’이었다. 이 안건이 회의에서 가결되면 국방부와 청와대를 거쳐 본격적인 거래에 돌입하게 된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온다. 방추위는 F-15SE 선정안을 부결했다. 도입을 취소하고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린 것이다.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진행된 방위사업청의 선정 과정이 회의 2시간 30분 만에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이날 회의에서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당시 국방부장관)은 “차세대 전투기 기종 선정은 정무적으로 고려할 사안”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이후 이 발언에 대해 부인했지만, 2015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방추위 회의에 참석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김 전 실장이) 그런 취지로 발언을 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사진=박은숙 기자
이후 사업을 다시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 방산 전문가는 “방추위에서 부결됐다는 것은 전투기 선정 직전까지 했던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그만큼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게 정상이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로 FX 3차 사업은 규모에 걸맞게 군의 평가 항목만 100여 가지가 넘었다. 항목별로 구체적인 추가 항목이 30여 가지에 이르렀고, 절충교역을 위해 국방과학연구소, 국내 방산업체, 산업통상자원부와 항공우주연구원 등이 협력해 마련한 협상 방안은 410여 개에 달했다. 이 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만 새로운 전투기를 선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업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일반적으로 책임 기관인 방위사업청이 사업 진행을 맡았어야 했지만, 돌연 국방부가 TF를 꾸리고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이 팀장을 맡아 사업을 재검토했다. 그리고 단 6개월 만인 2014년 3월 24일, 방추위는 FX 3차 사업의 후보 기종을 F-35A로 변경했다. 경쟁은 사라졌고 분위기는 록히드 마틴과의 수의계약으로 흘러갔다.
결국 같은 해 9월, 군은 록히드마틴과 F-35A 도입 계약을 맺는다. 군요구성능(ROC), 사업추진전략, 기종 선정에 계약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당초 전투기 60대 도입이 목표였지만, F-35A의 가격이 비싼 탓에 40대로 대폭 축소됐다. 공군은 나머지 20대를 새로운 사업 계획을 짠 뒤 또 다시 사들여야 한다.
# 조사 대상은 따로 있다
감사원은 지난 4월 6일부터 최근까지 상당한 시간을 들여 앞서의 ‘석연치 않은’ F-35A 도입 계약 과정을 조사하고 있다. 특정 부분이 아니라 과정 전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는 20일 정도 진행되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감사원은 추가로 확인할 것이 있다며 5월 30일까지 기간을 연장했고, 2차 감사 연장도 검토 중이다.
이 가운데 “조사 대상은 따로 있다”는 지적이 군 안팎에서 나온다. 한순간에 결정을 뒤집었던 2013년 방추위의 F-15SE 선정안 부결 회의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 일부는 당시 “F-15SE가 성능이 부족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북한 핵시설 타격 등을 위해선 적의 레이더망을 피하는 ‘스텔스’ 기능이 핵심인데, F-15SE는 이 기능이 취약하다는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문제는 당시 회의에서 나온 이 ’스텔스 기능 취약’ 문제가 공군 예비역들의 주장에서 비롯됐다는 의혹이 나온다는 데 있다. 2013년 9월 회의를 앞두고 예비역 공군참모총장 15명은 청와대와 국방부, 국회에 ‘국가안보를 위한 진언’이라는 건의서를 보냈다. 건의서를 보면 이들은 “대통령님께서 국가안보차원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 주신다면, 국방예산 범위 내에서 사업간 예산을 조정해 스텔스 기능을 구비한 차기 전투기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라고 전했다. FX 사업 선정 기종은 반드시 스텔스 기능을 갖춘 기종이어야 한다는 조언이었는데, 이는 앞서의 방추위 관계자들이 F-15SE 부결 이유에 대한 설명과 일치한다. 이 기능을 갖춘 기종은 세 개의 전투기 중 록히드마틴의 F-35A가 유일했다.
여기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 201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방추위 부결 회의 당시, 예비역 장성들의 의견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군 관계자는 “전문가들과 군 현역 실무자들이 2년여간 평가와 협상을 벌여 결정한 사안에, 예비역 장성들의 의견을 반영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 사유를 빼면 F-15SE 부결 이유로 꼽을 만한 게 없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스텔스 기능이 필요하다는 내용은 사업 초기 단계서부터 다뤄지긴 했다. 다만 군은 스텔스 관련 군 요구성능(ROC)을 의도적으로 낮췄다. 업체 간 가격경쟁을 위해서였다. 첨단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A와 달리 다른 두 기종은 이 기능이 없거나 제한돼 있기도 했다. F-15SE가 단독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에는 낮아진 스텔스 관련 ROC도 포함된다”라며 “하지만 방추위 부결 이후 국방부가 사업을 다시 맡으면서 돌연 스텔스 관련 ROC의 수위가 올라간다. 낮췄던 기준을 스스로 다시 올린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방산 전문가는 “FX사업에서 방사청 등은 집행 기관에 불과하다. 감사 과정에서 잘못된 점이 나오더라도 절차상 실수거나, ‘퍼즐 조각’에 불과할 것”이라며 “최근 회의 참석자 일부가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방추위 회의를 주도했고, 부결을 이끌어 냈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당시 최종 결정 권한을 가졌던 김 실장에게서 실체적 진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F-35A 기준미달 논란…한국이 구매자인데 ’슈퍼갑‘에서 ‘을’로 문제는 짧은 시간에 선정된 것만이 아니다. F-35A는 FX 사업 초기 단계부터 ‘기준미달’이었다. 그런데도 군은 F-35A 도입을 결정했다. 실제로 F-35A는 최종 선정되는 순간까지도 개발이 진행 중인 전투기였다. 이 때문에 앞서 2012년 7월 시험평가 과정에서부터 F-35A에만 변칙 평가가 이뤄졌다. 록히드마틴은 개발 중인 전투기임을 감안,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실제 탑승 평가를 거부하고 시뮬레이터 탑승만을 허용했다. 방위사업청은 “원격계측이라도 하겠다”며 거부하면 0점 처리를 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록히드마틴은 이 역시 거부했다. 가격입찰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F-35A는 일반적인 구매형식이 아니라, 대외군사판매로 번역되는 FMS(Foreign Military Sales)형식이었다. FMS는 새로 개발하는 무기를 판매할 때 주로 쓰이는 방식으로, 대수만 확정해 놓고 금액은 개발 뒤에 결정해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구매국 정부 대신 미국 정부가 무기 제조업체와 협상하고, 구매국 정부는 여기서 합의된 가격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F-35A를 도입하면 대규모 예산을 들여 무기를 구매하는, ’슈퍼 갑’인 한국이 ‘을’의 입장에서 거래하는 셈이었다. F-35A 계약 이후인 2015년엔 국방부 내부는 물론, 국회와 정부까지 뒤흔든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미국이 돌연 우리나라 군이 요구했던 핵심기술 이전을 거부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이 역시 앞서의 FX 사업 초기 단계에서 예견이 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F-35A는 기술 이전 협상에서도 기준미달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 8월 FX 사업 초반, 록히드마틴을 제외한 두 개 업체는 우리나라 군이 요구에 따라 한국형 전투기 개발 관련 기술 51개 중 이전이 가능한 기술을 제시했다. 미국 보잉은 미국 정부 승인 거부 가능성에 대비해 해외 협력사 등에게서 기술을 구입해서라도 모두 이전하겠다고 약속했고, 에어버스는 기술 이전은 물론, 2조 원을 투자해 한국형 전투기를 공동개발 하겠다고 했다. 유일하게 록히드마틴만 21개 기술만 이전하겠다고 했다. 록히드마틴은 2014년 F-35A 도입 계약 당시 미국 정부 승인을 전제로 핵심기술 4건을 추가했지만, 그 직후 미국 정부가 기술 이전은 불가능하다고 우리나라에 통보했다. 4개 핵심 기술은 에이사 레이더, 적외선 탐지 추적장치, 전자광학 추적장치, 주파수 전자파 방해장비 등이다. 앞서의 방산 전문가는 “이 기술을 인체와 비교하면, 상대방의 동작과 공격을 감지할 수 있는 5개 감각기관과 같으며, 이를 통합하는 체계통합 컴퓨터는 뇌”라며 “한국형 전투기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이 기술 없이는 ‘깡통 비행기’를 들여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