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왼쪽)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일요신문DB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월 9일 ‘국헌문란 등 행위로 인한 부정수익의 국가귀속 및 피해자 권리구제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민 의원은 당시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권력의 사유화를 통해서 자신의 부를 취득하는 경우나 정경유착으로 축재한 사실들이 밝혀졌다. 국가가 국가권력을 사유화해 불법과 부정으로 축재한 재산을 귀속해야 한다”라고 취지를 밝혔다.
민 의원은 최태민-최순실 법안의 최초 제안자다. 법안은 국헌문란으로 취득한 재산을 국가로 귀속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수개월이 흐른 지금 민 의원이 발의한 최순실 특별법을 둘러싼 현실은 암담하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법안은 6월 7일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국회법상 ‘국헌문란 특별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 위해선 우선 법사위가 안건으로 상정해야 한다. 안건 상정 여부는 여야 간사들 협의로 결정된다. 법안은 발의된 뒤 통상 2~3개월이 지나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되지만 민 의원의 법안은 약 5개월이 지났는데도 ‘깜깜’ 무소식이다.
민병두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은 형사 특별법이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반대해서 상정이 안 됐다. 상임위를 거친 뒤 소위로 넘어가서 본격적으로 심의를 해야 하는데 난감하다. 초반부터 딱 막힌 느낌이다. 저쪽이 양보를 안 해주니 통과시킬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김진태 의원실에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민 의원은 3월 6일 ‘특정범죄의 부정수익 등 재산의 국가귀속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도 발의했다. 민병두 의원실의 다른 관계자는 “최순실 재산 환수를 목표로 한 법이다. 먼저 발의한 법안 처리 속도가 늦어서 다른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라고 밝혔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1월 17일 범죄수익은닉 규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백 의원은 제안이유서에서 “최순실 일가의 재산이 범죄수익 등으로 확인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몰수 등 환수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범인 이외의 자가 정황을 알지 못하고 몰수대상 재산을 취득한 때에도 그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안 내용이다. 최 씨 아버지 최태민 씨가 약 40년 전부터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형성한 재산을 환수하기 위한 개정법이다.
하지만 이 법안 역시 ‘스톱’ 상태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범죄수익은닉 규제법 개정안은 법사위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백혜련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법상 개정안은 상임위 회부된 뒤 45일 경과 뒤 처음으로 개회하는 위원회에 자동 상정된다. 하지만 3월 29일 열린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법사위 고유법안이 아닌 다른 상임위 법안만이 상정됐다. 우리 법안만 겨냥해 상정을 안 했다고 볼 수 없지만 법사위 야당 간사인 김진태 의원이 안건 상정에 매우 비협조적이어서 갈등이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국민의당은 지난해 11월 29일 ‘최순실법 3+1패키지’ 법안을 발의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민주헌정침해행위자의 부정축적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과 몰수 대상을 넓히고 소급 적용이 가능한 형사 몰수 관련 법안 3건이다. 법안은 민주헌정침해행위자들이 불법적으로 형성한 재산에 대한 환수를 골자로 하고 있다. 국회의장 소속의 부정축재조사위원회가 민주헌정침해자의 재산조사와 부정재산 여부를 결정하는 내용(제4조)이다. 형사 몰수 관련 법안엔 공무원범죄몰수법과 범죄수익은닉규제법상 몰수·추징 대상에 직권남용·강요·공무상 비밀이용 등의 추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채 의원이 발의한 민주헌정침해행위 관련 특별법 역시 원안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위법 논란이 나오는 까닭에서다. 남궁석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2월 23일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민주헌정침해행위 관련 특별법에 대해 “개별 조문을 살펴보면 ‘민주헌정침해행위’ 등 개념이 다소 광범위하고 부정재산 여부 등 조사에 관한 사항을 국회의 권한으로 할 경우 권력분립 원칙에 부합하지 않을 여지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남 위원은 공무원범죄몰수법에 대해서도 “사기, 공갈, 횡령, 배임 등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에 대하여 공무원범죄몰수특례법에 따라 필요적으로 몰수·추징하도록 하는 경우 도리어 피해자의 범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침해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의원들의 판단에 막강한 영향을 미쳐온 수석전문위원이 국민의당 ‘최순실법 3+1패키지’ 법안 중 2개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셈이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29일 대표발의한 ‘국정농단과 불법·부정축재 재산 진상조사 및 환수 등에 관한 특별법안‘도 마찬가지다. 남 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법안에서 사용하는 국정농단자라는 용어가 광범위하다. 법 시행 이전에 취득한 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헌법 취지에 비추어 엄격한 요건에 따라 가능하다. 민주헌정침해행위가 이러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정농단 진상조사법은 법사위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다. 추혜선 의원실 관계자는 “야당 간사가 협의를 해주지 않으면 통과가 어렵다. 개별 법안마다 소급효 금지 원칙 등 위헌 요소도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친일재산귀속특별법의 형식으로 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본회의를 통과한다고 해도 나중에 최순실 등 국정농단자들이 위헌소송 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국회부의장은 지난해 11월 23일 ‘대통령 등의 특정 중대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심 부의장은 “대통령과의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민간인 신분으로 국정운영에 관여하고 부패범죄를 저지른 미증유의 사태 앞에서 국회가 ‘최순실 특별법’을 추진한다”라고 강조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장본인들을 처벌하고 ‘제2의 최순실’의 등장을 방지하겠다는 것이 법안 취지였다.
그런데 법사위 전문위원은 우려를 드러냈다. 2월 21일 남 위원은 소위 회의에서 “대통령 등 외에 이들과 법률상·사실상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행한 범죄를 특정 중대범죄로 정의하고 있지만 명확성의 원칙에 반할 여지가 있고 적용 대상자의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4월 27일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우 전 수석의 최순실 게이트 묵인·방조 혐의 등을 특별검사가 수사하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비호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특검과 검찰은 우 전 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두 차례나 영장을 기각했다. 박 의원은 “검찰 수뇌부까지 뻗어있는 이른바 우병우 사단이 봐주기 수사·기소를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 특검을 임명해 우 수석에 대한 엄정한 수사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라며 법안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우병우 특검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 역시 난항이 예상된다. 법안은 자유한국당에 특검 추천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원내교섭단체 중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이 각각 특검 후보자 3명 중 1명을, 특검이 추천한 특검보 후보 8명 중 3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법안 내용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국당이 청문회 정국에서도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우병우 특검법에 협조할 리 없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박주민 의원실 관계자는 “자유한국당은 국정 농단에 책임이 있는 정당이다. 한국당에 특검후보자 추천 권한을 주지 않은 이유다. 우 전 수석도 국정 농단의 중요한 축이다. 한국당이 특검 후보자를 추천할 권리는 없다. 야당의 협조를 얻기 쉽지 않아 법안 처리가 좀 늦더라도 원안을 수정할 이유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