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사 때 아이의 부모인 강 아무개 씨(26)와 서 아무개 씨(여·21)는 지난 2014년 11월 여수 신덕해변 인근 야산에 아이의 시신을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현장 검증 당시 이들은 숨진 아이가 들어있는 검은색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려 가방을 바닷물에 담그고 물에 가라앉는지 등을 확인하는가 하면 결국 야산 인근에 유기하는 모습을 재연했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 프로파일링 등을 동원해 진술의 신빙성과 심리상태를 분석했지만 부부의 확실한 진술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게 됐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앞으로의 공소 유지에 장애물이 될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 송치 이후 사건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친모인 서 씨가 새로운 자백을 한 것. 서 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이가 사망한 후 유기했다고 했지만,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훼손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는 경찰에 사건을 처음 신고했던 이들의 진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또 서 씨는 훼손한 시신을 바다에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시신의 흔적이 없어질 정도로 잔인하게 훼손한 데다가 경찰조사 당시 유기한 장소도 제대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신이 발견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검찰은 이 부부의 혐의 일부를 변경했다. 서 씨의 혐의 가운데 시신 유기는 사체 훼손으로, 강 씨의 경우 폭행치사에서 학대치사로 변경됐다. 폭행치사는 상해에 이르게 했을 때에만 적용되지만 학대치사는 사람이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 적용될 수 있으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지난 3월 아이의 부모인 강 씨와 서 씨가 피고인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증인들이 법정에 출석해 이들의 범행을 증언했다. 대부분의 증인들이 피고인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고, 그동안 피고인에게서 나타났던 폭력성에 대해 증언했다. 증인들은 피고인 강 씨가 평소 사망한 아이 이외의 다른 자녀들도 실내와 실외를 가리지 않고 상습적으로 폭행했다고 밝혔다. 애초 경찰에 이들의 범행을 신고했던 인물들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 역시 피고인이 본인의 아들을 매트에 던지고 장롱에 가두기도 하는 등의 행태를 알게 돼 경찰에 신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증인들은 “평소 피고가 술에 취하면 ‘살기 싫은 이유가 하나 있는데 둘째 아들을 죽인 것’이라며 ‘막내를 그 애로 둔갑시키면 걸릴 일은 없는데 잠잘 때마다 꿈에 나타나서 괴롭다’라고 말을 했었고, 허언증이 심해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또 증인들에 따르면 피고인 강 씨는 평소에 칼을 소지하고 다녔으며, 화가 날 때마다 이 칼을 꺼냈다. 아들이 사망한 후에도 이 칼을 이용해 훼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가 사망한 이후 강 씨는 ‘칼이 없어지면 큰일난다’며 칼이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했는데 칼이 남아있는 유일한 범행의 증거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인이 강 씨가 칼을 소지하고 있는 것을 싫어해 칼을 버렸고 이후 칼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강 씨는 증인들의 증언을 전면 부인했다. 증인들이 강 씨가 아이를 때린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에 대해서도 강 씨는 “아이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해서 귀여워했다”고 반박했다. 또 남들을 공격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칼에 대해 낚시 갈 때 가지고 가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 씨에게 살인 혐의가 적용되지 않자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살인죄와 학대치사죄는 형량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또 경찰이 검찰에 송치할 때 살인 혐의 의견을 냈었지만 이때에도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지인들이 제보를 할 때 살인에 대해 파악은 했지만 진술을 듣지 못해 검찰에 바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진술 확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보통 아동 폭행을 했으면 빨리 병원에 데려가든지 신고를 해야 하는데 그런 반성의 기미가 없이 무려 2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살인죄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강 씨는 끝까지 범행은 물론 아이가 죽었다는 것 자체를 부정했다”고 말했다.
검찰 측은 “살인 혐의로 기소하면 무죄가 나올까봐 강 씨에게 살인 혐의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했다”면서 “앞으로 공소장을 얼마든지 변경할 생각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무죄가 선고될 경우에 대비해 주위적 공소사실에 살인 혐의를 적용하고, 이에 추가로 예비적 공소사실에 학대치사 혐의를 넣으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11년 울산에서 계모가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아동학대 사건이 있었다. 이 때 계모에게 주위적 공소사실로 살인 혐의가, 예비적 공소사실로 상해치사 혐의가 적용됐다. 당시 검찰은 피고인 계모가 살인을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피해자 의붓딸의 사망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공판 대응팀을 꾸려 해외 판례 분석, 법의학자 증언 등을 통해 항소심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유죄 판결을 끌어내 계모에게는 징역 18년형이 선고됐다.
한편 재판은 유례없이 민감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재판부는 공판 시작 때마다 예민한 사안이지만 비공개가 아닌 공개재판으로 진행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찰 측이 비공개 심리를 요청했지만 헌법에서 재판을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재판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추후 항소 사유가 될 수 있다. 또 비공개 심리로 진행할 경우 증인 신문의 증거능력이 사라질 수 있어 공개로 진행한다”며 “언론에서는 잔인한 범행 방법에 대해서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재판부에 이번 사건이 공개되면 모방범죄를 양산하거나 사회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명분으로 비공개 심리를 요청했었다.
또한 재판부는 피고인 등 모두가 참석한 공판에서 방청하는 이들의 신원을 일일이 물어봤고 대답하게 했다. 이에 방청석에 앉아있는 일부 시민들은 “피고인뿐만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다수 앞에서 소속과 이름을 말할 것을 판사가 강요하니 무섭기도 하고 기분 나빴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재판부는 방청석에서 재판 내용 일부를 기록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증인 신문을 멈추고 기록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앞으로 예정된 공판에 피고인들과 알고 지냈던 증인들과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관 등이 더 나올 것으로 보인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