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6·13 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후보들의 발걸음이 빨라진 모습이다. 추 대표와 박 의원은 유력한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이다. 문재인 정부의 여풍 시대에 걸맞게 지방선거 여풍 전성시대의 문을 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지난 5·9 대선 전후로 이들의 희비는 시나브로 엇갈린다.
박영선 의원과 문재인 대통령. 박은숙 기자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까지만 해도 이들은 반대편 전장의 선봉에 섰다. 공정한 경선 관리 등의 중책을 안았던 추 대표는 명시적으로 특정 후보 지지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사활을 걸었다. 추 대표는 지난해 8·27 전당대회에서 친문(친문재인)계 주류의 전폭적 지원으로 민주당 계열 역사상 첫 TK 여성 당수가 됐다. 추 대표는 대선 기간 ‘포용국가위원회’ 조직을 직접 구상하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성경륭 한림대 교수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이정우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등이 합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추 대표는 대선 직후 안규백 사무총장 경질에 이어 당 인사추천권을 놓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갈등설에 휩싸였다. 또한 김민석 민주연구원장의 정무수석 추천설로 한 차례 홍역을 앓았다. 돌고 돌아 김 원장은 민주당 싱크탱크로 자리를 옮겼지만, 당내 갈등의 불씨는 현재진행형이다. 집권 초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로 당·청 갈등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당 안팎에선 추 대표의 처신을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민주당 초선 의원은 “이 시기에 당·청 갈등은 최악이라고 본다”고 직격했다.
박 의원은 대선 경선 때 문 대통령 경쟁자였던 안희정 충남도지사 캠프에 합류, 멘토단장을 맡으며 친문 패권주의를 온몸으로 막는 데 앞장섰다. 지난 4월 3일 문 대통령이 대선 경선에서 57%의 득표율로, 민주당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탈당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문(비문재인) 연대의 마지막 퍼즐은 박 의원이 쥐고 있었다.
그러나 불발됐다. 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최명길·이언주 의원 등만이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김종인·정운찬·홍석현’으로 이어지는 비문 연대는 즉각 소멸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대선 본선에서 패권주의 프레임에 걸리지 않았던 이유는 박 의원의 선대위 합류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 그랬다. 민주당 경선 직후 정치권 관심은 박 의원에게 쏠렸다. 박 의원 탈당은 당 원심력의 화약고였다. 박 의원은 대선 경선 직후 문재인 캠프 측이 제안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직을 거절했다. 즉각 당내 비문계인 변재일 의원과 동반 탈당설에 휩싸였다. 문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 논란을 ‘양념’에 비유하자, 박 의원은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것과 같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장고를 거듭한 그는 19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 하루 전인 지난 4월 16일 문재인 선대위에 극적으로 합류했다.
이후 박 의원은 비문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의 기동민 의원을 문 대통령의 대선 기간 수행실장으로 추천했다. 기 의원은 대선 경선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안희정 충남도지사’를 거쳐 문재인 선대위에 합류했다. 박 의원 추천을 받은 문 대통령 측에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기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수행실장직을 제안했다. 민주당 수도권 의원은 이와 관련해 “기 의원의 문재인 선대위 합류는 박 의원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의도 안팎에선 “박 의원이 친문계 좌장이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때 친문계의 정적이었던 박 의원이 문재인 선대위의 핵심으로 격상해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은숙 기자
차세대 여성 리더의 선두주자인 추 대표와 박 의원의 당내 위상은 19대 대선 하루 전인 5월 8일 문 대통령의 마지막 유세현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문 대통령의 오른쪽에는 추 대표와 박 의원이 나란히 있었다. 잠시 뒤 문 대통령은 오른손에 박 의원, 왼손에 추 대표를 각각 잡고 유세 인사를 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유세 시절 “우리에게는 추미애와 정동영도 있다”며 미래 경쟁 구도를 만든 것이 오버랩될 정도였다. 사실상 포스트 대선 주도권 경쟁의 복선인 셈이다.
일각에선 ‘임종석-박영선-기동민’ 라인이 향후 민주당 권력구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대선을 거치면서 민주당 내부 권력구도는 대전환기를 맞았다. 이른바 ‘새판 짜기’다. 극심했던 ‘친문 vs 비문’ 갈등의 경계는 상당 부분 허물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당내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은 약진 중이다. 임 실장을 비롯해 조국 민정수석과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등도 86그룹이다.
당 내부 권력구도도 마찬가지다. 우원식 원내대표를 시작으로,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 강훈식 원내대변인 등 운동권 그룹의 신구 조화를 꾀했다. 86그룹의 선두주자인 우상호·송영길 의원은 ‘자의 반 타의 반’ 정부 입각 대상자에 올랐다. 내년 8월 추 대표 임기 종료 후 치러지는 차기 당 대표 경선은 ‘86그룹의 잔치’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강기정·오영식·진성준 전 의원 등이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세대교체는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 구상한 플랜과 무관치 않다. 범진보진영의 세대교체를 통한 시대교체로 ‘집권 10년 플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몸담았던 한 보좌관은 “단순히 정권교체를 넘어 시대교체는 문 대통령의 사명과 같다”고 말했다.
86그룹 중 상당수는 박 의원과 친분이 깊다. 박 의원이 차기 서울시장 출마로 굳힐 경우 ‘박영선·86그룹’ 간 연대 가능성도 제기된다. 친문계 중 ‘문재인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당내 권력구도가 범비문계로 기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대선 직후 첫 당내 경선에서 비문인 우 원내대표가 친문인 홍영표 의원을 꺾고 원내 사령탑에 올랐다. 서울시장 열차를 타려는 박 의원과 여의도 복귀를 고심 중인 박원순 시장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지점이다.
86그룹이 신주류로 부상할 경우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인 추 대표는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이미 문 대통령과 추 대표 간 이상 징후는 포착된 상태다. 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당·청 간 핫라인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취임 한 달간 문 대통령이 추 대표에게 전화를 건 것은 이낙연 국무총리 인선 발표 10분 전, 단 한 번뿐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다음 날 국회를 방문, 야당 대표를 만나고 청와대로 야 5당 원내대표를 초청했지만 정작 당·청 회동은 오리무중이다. 추 대표는 최근 주변 인사들에게 당·청 간 소통 문제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 대표가 6월 5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고위당정청 회의에서 “협치 국회의 근간은 당·청의 긴밀한 협력 체계”라고 직설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반면 박 의원은 문 대통령 특사로 5월 말 같은 당 조승래 의원과 함께 에콰도르를 방문했다. 박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이번 특사와 관련해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문 대통령이 박 의원에 대한 신뢰가 적지 않다”며 “이번 특사단에 포함된 이유”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청와대 측과 ‘박영선·86그룹’간에 향후 권력구도와 관련해 모종의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를 겸했던 박 의원은 당시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놓고 당내 강경파에 뭇매를 맞았다. 상처를 받은 박 의원은 명분만 추구하던 정치 스탠스에서 ‘기브 앤 테이크’(대등한 거래)로 전환했다고 한다. 줄 땐 확실하게 주고, 받을 땐 받아낸다는 것이다. 특사직 수락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당 안팎의 시각이다.
‘추미애 vs 박영선’ 구도의 변수는 박원순 서울시장 행보다. ‘3선이냐, 여의도 귀환이냐’를 놓고 고심 중인 박 시장은 내년 초께 거취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86그룹 내부에서는 애초 3선 포기 의견이 많았다. 행정가 이미지가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정권교체 이후 3선 도전 가능성도 제기된다. 내부에서 개헌을 매개로 한 장기 집권 플랜을 가동한다면, 3선 도전 뒤 대선에 나서는 것도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박 시장과 가까운 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정치 셈법 자체가 변했다”며 “‘3선은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은 없다. 본인이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대선까지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3선 도전 여부에 따라 ‘추미애 vs 박영선’ 구도는 출렁일 것으로 전망된다. 1차 분수령은 내년 초다.
윤지상 언론인
“당·청 갈등 진원지 될라” 민주연구원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을 바라보는 당내 시선은 복잡하다. 2008년 민주정책연구원으로 출범한 민주연구원은 올해로 출범 9년째를 맞았다.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1995년 출범했다. 민주연구원이 13년이나 늦게 출발한 셈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당 내부에선 “당 싱크탱크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 적지 않다. 다만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김민석 카드’를 민주연구원장으로 밀어붙이자, 우려도 한층 커진 상황이다. 특히 비문(비문재인)계 의원들은 향후 민주연구원 위상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민주연구원은 정치자금법상 민주당 국고보조금의 30%가 의무 배정된다. 당 산하 기구 중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셈이다. 일각에선 민주연구원의 위상이 커지면 추 대표의 일방통행이 가속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추 대표는 대선 기간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당시 ‘김민석 합류’를 놓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면충돌한 바 있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당 인사추천권을 고리로 ‘김민석 정무수석 인선안’을 추천했으나, 청와대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 대표가 5월 11일 국회를 찾은 임 실장을 예방조차 외면할 정도로 갈등이 악화됐다. 추 대표와 임 실장 측은 “불화설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당 안팎에선 당·청 갈등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비문계 한 관계자는 “민주연구원을 여의도연구원을 능가하는 조직으로 구축해야 한다”면서도 “당·청 갈등의 진원지로 전락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 내부에선 추 대표가 당·청 갈등의 핵심이었던 ‘김민석 카드’를 끝내 민주연구원으로 밀어 넣은 직후 적지 않은 불만이 제기됐다. 김 원장은 2002년 대선 때 민주당을 탈당,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대선 후보를 전격 지지한 뒤 한동안 정치적 사생아로 지냈다. 김 원장이 당 싱크탱크를 지렛대 삼아 원내 복귀를 꾀할 것이란 전망도 비문계의 복잡한 심경에 한몫한다. 주류 측 일각에서도 ‘추미애·김민석’ 관계를 우려스럽게 본다. 친문(친문재인)계와 비문계 간 경계가 희석된 상황에서 파열음의 진앙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범주류 한 의원은 “추 대표 입장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든 당·청 갈등은 국정동력을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