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은 이날 SK와 홈경기에 4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그리고 팀이 1-0으로 앞선 1회말 1사 2루서 SK 선발 문승원을 상대로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깨끗한 안타를 만들어 냈다. 그 순간 야구장은 엄청난 환호로 뒤덮였다. 김태균이 85경기 연속 출루를 달성하면서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을 넘어서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고비도 있었다. 지난해 9월 13일 대구 삼성전에선 출루하지 못한 채로 정규이닝을 마쳤다가 9회말 스코어가 동점이 되면서 연장 10회 극적으로 안타를 추가했다. 또 지난 5월 24일 광주 KIA전에선 팽팽한 긴장감 속에 들어선 9회 마지막 타석에서 상대 투수 홍건희가 몸에 맞는 볼을 던져 행운의 77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했다. 그 외에도 엄청난 육체적·심리적 압박감을 이겨내면서 값진 출루 행진을 이어왔다. 그 결과 마침내 메이저리그 기록까지 넘어서는 ‘출루’의 대명사로 우뚝 섰다. 프로 2년차였던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일본 지바롯데에서 뛴 2년 제외) 13시즌 연속 출루율 4할 이상을 기록했던 타자다웠다.
# 김태균이 이치로와 윌리엄스를 넘어서기까지
김태균은 지난해 8월 7일 대전 NC전에서 1루를 밟은 뒤 시즌이 끝날 때까지 46경기에서 매 경기 출루에 성공했다. 그 기록은 올 시즌이 시작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결국 4월 18일 대전 LG전에서 60경기 연속 출루 고지를 밟으면서 KBO 리그 국내 타자 최다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기록은 현대 박종호가 2000년 5월 3일부터 7월 13일까지 기록한 59경기 연속 출루였다.
이어 나흘 후인 4월 22일 수원 kt전에서는 64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해 롯데 전 외국인 타자 펠릭스 호세가 보유하고 있던 KBO 리그 최다 연속경기 출루 기록을 넘어섰다. 호세는 2001년 6월 17일 마산 현대전부터 그해 마지막 경기까지 62경기 연속 출루를 한 뒤 KBO리그를 떠났고, 5년 후 롯데에 재입단해 2006시즌 개막전에서 다시 출루하면서 기록을 한 경기 더 늘린 케이스다.
김태균이 85경기 연속 출루를 달성하면서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을 넘어서는 순간이다. 연합뉴스
김태균의 출루 행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5월 15일 고척 넥센전에서는 70경기째 연속 출루해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가 1994년 5월 21일부터 8월 26일까지 오릭스 유니폼을 입고 세웠던 일본 프로야구 최다 연속 경기 출루 기록도 제쳤다. 이치로라는 상징적인 존재까지 넘어선 김태균은 동시에 윌리엄스의 기록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윌리엄스는 보스턴 소속이던 1949년 7월 1일 필라델피아전부터 9월 27일 워싱턴전까지 84경기 연속 출루해 메이저리그 최다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을 무려 68년째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태균은 이 기록마저 파죽지세로 넘어섰다. 물론 리그의 역사나 수준이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고, 공식적으로 상이 주어지는 기록도 아니다. 그러나 김태균이 한국·미국·일본 프로야구 최장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을 보유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 김태균 기록은 왜 아시아 기록이 아닐까
사실 김태균이 호세의 기록을 넘어 이치로의 기록에 도전하던 시점에 작은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태균이 일본 프로야구 기록을 넘어서면 자연스럽게 ‘아시아 기록’이 새로 작성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KBO가 대만 프로야구 기록까지 샅샅이 뒤진 결과 이미 아시아에서 100경기 넘게 연속 출루한 선수가 나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만 프로야구의 오랜 간판스타인 린즈셩(중신 브라더스)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대만 국가대표팀에서 단골로 4번 타자를 맡아오면서 웬만한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이미 이름을 알린 타자다. 바로 그 린즈셩이 대만 프로야구에서 2015년 6월 20일부터 2016년 6월 14일까지 무려 109경기 동안 연속 출루를 해냈다. 대만 프로야구가 아무리 한국·미국·일본보다 한참 아래 수준의 리그라고 해도 109경기 연속 출루는 역시 엄청난 대기록이다. 결국 KBO는 “린즈셩의 기록이 아시아 기록”이라는 해석을 내렸다. 사실상 전 세계 프로야구를 통틀어 최장 기록인 셈이다.
김태균은 윌리엄스의 84경기 출루 기록을 넘어선 뒤 “올 시즌 전 경기 출루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항상 개인보다는 팀의 목표를 앞세운 그였기에 이례적인 의사 표현이었다. 그 희망이 이뤄졌다면 린즈셩의 기록은 넘어서고도 남았을 터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태균의 연속 경기 출루 행진은 이틀 뒤 ‘86’에서 마감됐다. 6월 4일 대전 SK전에서 4타수 무안타로 물러서면서 길고도 치열했던 도전에 아쉬운 마침표를 찍었다.
# 출루의 역사를 썼던 팀들
김태균이 외에도 그동안 수많은 팀과 선수들이 출루에 관련한 여러 기록을 남겨왔다. 롯데와 삼성은 팀 연속 이닝 출루 기록을 보유한 팀이다. 롯데는 2014년 6월, 삼성은 2015년 5월에 한 차례씩 무려 36이닝 동안 끊이지 않고 출루한 경험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31이닝 연속 출루가 최다 기록. SK가 2005년 4월, 두산이 2013년 5월에 한 차례씩 해냈다.
팀 최다 연속 타자 출루 기록은 1군에서 다섯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NC가 갖고 있다. 2014년 5월 29일 대전 한화전 4회에 무려 12명의 타자가 연속 출루했다. 그것도 투아웃 이후에 나온 연속 출루라 더 놀라웠다. 2사 후 박민우가 우월 3루타를 때려낸 뒤 이종욱-나성범이 안타, 이호준이 볼넷, 에릭 테임즈가 만루 홈런을 각각 기록했다. 이후 모창민의 2루타, 권희동의 볼넷, 손시헌의 안타, 이태원과 박민우의 연속 볼넷이 이어졌고 다시 이종욱의 적시타와 나성범의 몸에 맞는 볼까지 나왔다. 상대팀인 한화에게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닝이었다. 결국 이호준이 2루수 땅볼로 아웃되면서 기나긴 4회가 끝났다. NC는 12타자 연속 출루로 한 이닝에 9점을 뽑았고, 결국 15-7로 승리했다.
그 다음으로는 11타자가 연속 출루한 사례가 6번 나왔다. 삼성이 무려 4회(1983년 6월, 1988년 5월, 1989년 4월, 2016년 5월)나 해냈고, 현대(2002년 8월)와 NC(2016년 9월)가 각각 한 번씩 기록했다. 경기 개시 후 첫 타자부터 가장 많은 타자가 연속으로 출루한 팀은 쌍방울이다. 1991년 8월 25일 전주 태평양전에서 1회말 1번 타자를 시작으로 10명이 차례로 출루에 성공하면서 27년째 깨지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경기 개시 후 9명의 타자가 연속 출루한 MBC(1984년 6월 8일 대구 삼성전)와 현대(2005년 5월 29일 수원 KIA전)는 그 뒤를 이었다.
# 출루의 역사를 썼던 타자들
김태균은 연속 경기 출루 기록 이전에도 이미 값진 출루 기록을 하나 남겼다. 지난해 KBO 리그 사상 최초로 300출루를 돌파하면서 총 310회 출루로 역대 한 시즌 최다 출루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지금은 밀워키에서 뛰고 있는 NC 전 외국인 타자 테임즈가 2015년에 기록한 296출루 기록을 1년 만에 갈아 치웠다. 테임즈 다음으로는 현대 심정수(2003년)와 삼성 최형우(2016년)가 287출루로 뒤를 잇고 있다. 삼성 이승엽이 1999년 281출루에 성공해 이 부문 5위에 올라 있다. 모두 쟁쟁한 타자들이다.
한 시즌 최고 출루율 기록을 갖고 있는 펠릭스 호세. 연합뉴스
그러나 역대 한 시즌 최고 출루율 기록은 여전히 김태균도 넘지 못했다. 롯데 외국인 타자 펠릭스 호세가 2001년 기록한 출루율 0.503이다. 5할대 출루율은 KBO 리그 역사상 단 두 번 나왔는데, 호세 이외에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MBC 백인천(0.502)의 기록이 전부다. 출전 경기수와 출전 타석수에서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김태균의 개인 한 시즌 최다 출루율은 지난해 기록한 0.475였다.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이 출루한 선수는 지금 넥센 유니폼을 입고 있는 김태완이다. 한화 시절이던 2010년 4월 9일 사직 롯데전에서 무려 여덟 번이나 타석에 나서 전 타석 출루했다. 홈런 2개를 포함한 안타 4개, 볼넷 3개, 몸에 맞는 볼 1개를 기록하면서 역대 한 경기 최다 출루 기록을 ‘8’로 늘렸다.
그 게임은 오후 6시 30분에 시작돼 무려 5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경기로도 유명하다. 경기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정확하게 자정에 나왔다. 스코어는 무려 15-14. 승리팀은 한화였다. 김태완 외에도 롯데 외국인 타자였던 카림 가르시아 역시 이날 무려 7안타(안타 6개, 홈런 1개)를 때려내면서 한 경기 최다 안타 기록과 함께 한 경기 7출루까지 달성했다. 한 경기에서 7번 출루한 선수는 가르시아 외에 2008년 이택근(4월 24일 광주 KIA전), 2013년 김태균(4월 28일 문학 SK전), 2014년 롯데 정훈(5월 31일 잠실 두산전)까지 총 4명이다.
연속 타석 출루 기록은 세 명이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NC 소속인 이호준이 SK 시절이던 2003년 8월 17일 문학 KIA전부터 8월 19일 대구 삼성전 더블헤더 2경기까지 무려 13타석 연속 출루 기록을 남겼다. 한화 외국인 타자 제이콥 크루즈(2007년 4월 18일 잠실 LG전부터 22일 문학 SK전)와 정훈(2004년 5월 31일부터 6월 1일 잠실 두산전)도 13타석 연속 출루를 이어간 타자들이다. 그 다음으로는 해태 장성호(2000년 6월), SK 박재홍(2004년 10월~2005년 4월), 롯데 이대호(2007년 5월~6월), LG 조인성(2010년 7월)이 12타석 연속 출루해 뒤를 이었다. 11타석 연속 출루한 타자는 더 많다. 현대 심정수가 2003년 4월과 2003년 9월에 두 차례나 해냈다. 삼미 김우근(1985년 6월), 롯데 김용철(1986년 8월), 삼성 김재걸(1995년 7월), 두산 타이론 우즈(2000년 4월~5월), NC 나성범(2016년 5월), 삼성 최형우(2016년 8월·현 KIA)가 그 주인공들이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출루의 그림자 잔루…집까지 못 들어간 ‘갈매기’ 그렇게 많았어? 출루가 ‘빛’이라면 잔루는 ‘그림자’다. 아무리 출루를 많이 해도, 득점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한화 김태균은 KBO 리그 사상 최다 출루(310출루) 기록을 세운 지난해, 한 시즌 최다 잔루(164개) 기록도 동시에 세웠다. 물론 남들보다 자주 출루했으니 잔루 역시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53%에 달하는 잔루의 비율이 안타깝다. 김태균이 300번 넘게 루상에 나갔지만, 후속타가 터지지 않아 홈으로 들어오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의미다. 김태균의 소속팀 한화의 현실을 반영하는 상반된 기록이다. 롯데는 지난해 무려 1181개의 잔루를 남겨 역대 한 시즌 최다 잔루 기록을 다시 썼다. 한 시즌 동안 144경기를 치렀으니, 경기 평균 8개 이상의 잔루가 나온 셈이다. 롯데가 시즌이 끝난 뒤 이대호라는 ‘해결사’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4년 150억 원을 쏟아 부은 이유가 확실히 있다. 2015년의 한화 역시 잔루 1150개를 남겨 2016년 롯데의 뒤를 잇는 불명예 기록을 갖고 있다. 한화 역시 그해 경기 평균 8개에 육박하는 잔루를 기록하면서 힘겨운 시즌을 보냈다. 역대 가장 많은 잔루를 남긴 경기는 2002년 10월 13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렸던 KIA와 LG의 경기다. 역대 최악의 난타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연장 13회 접전 끝에 17-16으로 KIA가 이겼는데, 이 경기에서 출루하고도 홈으로 들어오지 못한 주자가 무려 33명에 달했다. 양 팀을 합쳐 18명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던 혈전이었다. NC와 LG는 심지어 정규시즌도 아닌 포스트시즌에서 이 기록에 타이를 이뤘다. 지난해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LG가 연장 11회 2-1 끝내기 승리를 거두는 동안, 두 팀은 무려 33개(LG 19개, NC 14개)의 잔루를 기록해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잔루 기록을 다시 썼다. LG의 잔루 19개 역시 포스트시즌 사상 한 팀 한 경기 최다 잔루 기록이었다. 21명의 주자가 나가고도 단 두 명만 홈으로 들어온 셈이다. 투수들의 제구 난조로 인한 4사구 역시 역대 포스트시즌 가운데 가장 많이(25개) 쏟아진 경기라 더 졸전이었다. 2001년 9월 22일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한화의 경기도 16-16 무승부로 종료될 때까지 무려 32개의 잔루가 기록됐다. 당시 존재했던 경기 시간제한에 걸려 연장 14회에서 게임이 끝났지만, 만약 경기가 계속 진행됐더라면 어떤 새 기록이 나왔을지 알 수 없다. 2010년 5월 19일 잠실 두산-한화전도 마찬가지다. 연장 11회까지 양 팀이 17-15 혈투를 펼치면서 총 32명의 주자를 베이스에 그대로 남겨뒀다. 한 팀이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은 잔루를 기록한 게임은 2008년 9월 3일 잠실 두산-한화전이었다. 연장 횟수나 경기 시간제한이 없는 ‘무제한 끝장 승부’가 존재하던 시즌이었다. 두산은 한화와 연장 18회를 치르면서 잔루 21개를 남기는 신기록을 세웠다. 두산의 전신 OB가 1996년 8월 15일 대구 삼성전에서 기록한 20잔루를 18년 만에 넘어섰다. 반대로 1996년 8월 2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삼성의 맞대결은 양 팀이 도합 2개의 잔루를 기록해 역대 한 경기 최소 잔루로 남아 있다. 당시 스코어는 1-1이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