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전입이란 거주지는 옮기지 않고 주민등록법상 주소만 바꾸는 행위를 말합니다. 주로 자녀를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전입신고를 악용하는 것이죠. 최근 위장전입 경험에 대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혀 경험 없다’는 55.4%, ‘경험 있다’는 29.3%, ‘고려해봤으나 안 했다’는 10.9%, ‘잘 모름’은 4.4%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국민 10명 중 3명으로 일부 기득권층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만연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최근 법원행정처의 ‘주민등록법 위반 사범’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07~2016년 1518명이 재판을 받아 315명이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을 받았고 857명이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최근 10년간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매년 100명 넘게 형사 처벌을 받은 셈이죠.
인사청문회는 정치인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2000년 도입된 국회 인사청문회의 단골 메뉴는 늘 ‘위장 전입’이었습니다. 마치 후보자들의 기본 ‘스펙’처럼요. 너도나도 위장 전입을 한 사실이 드러나니 당시 여당을 중심으로 ‘위장전입, 그쯤이야’라는 분위기가 확산됐습니다. 그러니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 사이에서 위장 전입이 당연시되는 것도 그리 이상한 현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위장 전입이 당연시된다 하더라도 이는 어쨌거나 명백한 법 위반입니다. 그럼에도 불법을 감행하며 위장 전입을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 위장 전입의 목적은 대표적으로 ‘자녀교육’, ‘자산증식’, ‘기초생활 수급권자로 선정’, ‘선거구 주민 수 유지’ 등이며, 이 가운데 만연하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 전입입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 앞서 위장전입 사실을 먼저 알렸습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주장을 국민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박은숙 기자
대한민국 어머니의 교육열은 다른 그 어떤 나라보다 높기로 유명하죠.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도 한국 교육을 높게 평가하며 한국 엄마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했습니다. 1960년대 처음 등장한 ‘치맛바람’이란 용어는 유난히 높은 교육열을 보여주고 부모들의 헌신적인 희생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강 후보자도 흔한 대한민국 학부모입니다. 그는 자신의 장녀를 위해 불법을 감행했지만, 이는 비단 강 후보자 뿐만의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어머니들이 이미 자녀의 학업을 위해 위장 전입을 했으니까요.
교육을 위한 위장 전입은 보통 일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이뤄집니다. 특목고(특수목적고등학교)와 자사고(자립형 사립고)에 대한 인기는 1980년대 이후 꾸준하지만, 이 두 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가정 형편이 여유로운, 소위 ‘금수저’ 가정에서 가능합니다. 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학생인 경우, 높은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특목고나 자사고에 입학이 어려워 일반고로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입니다.
그런데 같은 일반고 중에서도 지역별로 명문대 합격률 등 입시 결과에 확연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강남권 고등학교와 강북권 고등학교가 그 단적인 예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8학군’. 대표적으로 경기고·중동고·서울고 등이 포함되는데, 이들은 특목고·자사고는 아니지만 매년 적어도 학생 10명씩은 서울대에 합격시키는 소위 ‘명문고’입니다. 특목고·자사고 부럽지 않게 학부모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죠. 때문에 특목고·자사고 진학이 어려운 학생의 학부모들은 이왕이면 자녀를 8학군으로 보내고 싶어 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되는 가정은 자립형사립고 또는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자녀를 진학시킵니다. 반면 일반고에 자녀를 진학시키는 경우, 조금 더 좋은 환경의 학교로 자녀를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기도 합니다. 사진은 자사고인 신일고등학교 일반전형 공개추첨현장. 2009.12.10 ⓒ연합뉴스
위장 전입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8학군 근처로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거주하는 지인의 주소지에 전입신고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학교 진학 예정인 자녀만 전입 신고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최근 위장 전입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자녀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전입신고를 해야 합니다. 비슷한 방법으로는 그곳에 있는 반지하 등 거래가가 저렴한 매물을 월·전세 또는 매매로 구매해 전입신고를 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물론 그곳에 실제 거주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주소지만 옮길 뿐입니다.
이후 주민센터 등에서 실거주 여부 확인을 위해 방문 절차를 거치는데, 실제로 그 집에 거주하는 것처럼 옷이나 물건 몇 가지를 갖다두고 말 그대로 ‘위장’하는 방법으로 그 절차를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게다가 주민센터 등 기관에서 현장조사 전에 친절히 전화로 통보까지 해준다고 하니 위장 전입 적발이 더 어렵겠죠? 또, 요즘엔 인터넷으로 전입신고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하니 정말 위장 전입 하기 쉬운 세상입니다.
우리는 위장 전입을 ‘부도덕’ ‘부패’라고 규정하며 손가락질해왔습니다. 하지만 뒤돌아선 자녀를 위해 위장 전입을 해온 우리의 슬픈 자화상. 잘못된 걸 알면서도 극단적인 교육열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일까요? 학부모들의 속사정이 궁금했습니다.
학부모들은 위장전입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기형적인 교육 정책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사진은 서울시교육청의 진학지도 설명을 듣고 있는 예비 고3 학부모. 2017.2.17 ⓒ연합뉴스
자녀의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위장 전입을 한 학부모 A 씨는 정부 정책에 그 비난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학부모 10명 중 9명은 위장 전입을 할 겁니다. 그런 입장에서 이번 후보자들의 청문회를 보며 웃음밖에 안 나왔습니다. 학교마다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위장 전입 없이 아이를 키우겠습니까. 만약 정부가 정책을 잘 만들고 기회가 균등한 학교를 만들어 줬더라면 위장 전입을 할 필요가 없었겠죠.”
B 씨도 위장 전입을 했습니다.
“입시정책이 너무 자주 바뀝니다. 누구를 위해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까요. 서울 고위계층 자녀들을 위해 그런 게 아닐까요. 지방에 있으면 교육에 있어서 불이익 당할까 봐 서울로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경기도 구리시만 해도 일반고들은 손을 놓은 것 같거든요.”
위장 전입을 하지 않은 C 씨도 위장 전입에는 공감했습니다.
“저는 위장 전입을 하지 않았지만, 학벌이나 인맥이 사회생활에 중요한 축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네요. 공직자로서의 자질문제를 논하다 보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지만, 능력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학부모들은 그렇게 할 것 같네요. 대입 전형에서 학생부종합전형 선발 인원을 늘려가고 있는데, 학부모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무언가의 방법을 더 찾아내야 하는 것이 그 현실입니다.”
자식을 둔 학부모들의 마음은 다 비슷합니다.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은 누가 만든 걸까요? 누가 경쟁의 장을 만들었을까요? 문제의 시작은 명문대 입학, 대학 서열화입니다. 대학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갈리니 고등학교도 자연스레 서열이 갈리는 셈이죠.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중·고교평준화를 위해 많은 시도를 했으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고교서열화는 MB 정부 들어서면서 정점을 찍었고 그 결과 지금의 기형적인 교육 양극화를 빚었습니다.
위장전입을 한 학부모를 무조건 비판하기 보다는 그 전에 정부의 교육철학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게 우리의 공동 책임 아닐까요. 사진은 대학수학능력시험날 학교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한 학부모. ⓒ연합뉴스
당시 MB 정부는 고교평준화에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너무 획일적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각 학교마다 교육과정 편성에 자율성을 갖고 다양한 교육을 실현하자는 것이 그 취지였습니다. 그렇게 MB 정부는 마이스터고, 자사고 등을 대폭 늘렸는데, 결과적으로는 지금의 고교서열화를 증폭시킨 것이나 다름없죠. ‘다양화’라는 명목으로 시도한 정책이 지금의 난제를 불러온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대두되자 19대 대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외고·자사고 폐지 또는 일반고 전환에 대한 내용을 담은 공약을 들고 나왔습니다. 물론, 강제로 고교 평준화를 시킨다 해서 경쟁이 완전하게 없어지는 건 아닐 겁니다. 대학 진학에 사활을 걸게 만드는 경쟁 압박이 완화될지도 미지수입니다.
교육을 위한 위장 전입의 본질적인 원인은 뭘까요? 위장 전입을 한 정치인들을 호되게 혼내기 전에 누가 교육에 불평등한 환경을 조성했고, 누가 그 전쟁에 학부모들을 내 던졌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이 불평등한 교육 철학 문제를 수수방관하면 ‘중학교 서열화’도 그리 먼 미래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