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열풍에 전자제품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전자상가 등에서는 때 아닌 ‘그래픽카드’ 대란이 나타나고 있다.
9일 비트코인 정보제공업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1비트코인당 거래가격은 2826.54달러(약 317만원)를 기록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1월 1일 거래 가격이 997.69달러(약 112만원)였으니 5개월여 만에 3배가량 오른 것이다. 지난달 초만 해도 1500달러 선에서 거래됐으나 한 달 새 1300달러 가까이 폭등했다.
비트코인은 지난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가상화폐다. 비트코인은 기존 화폐와 달리 정부나 중앙은행,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간 거래 방식을 통해 빠르고 안전하게 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또 비트코인은 유통량이 한정돼 있는 것이 특징인데 설계 당시부터 총 발생량이 2100만 비트코인으로 정해져 있다.
아울러 비트코인은 거래를 통해 다른 사람으로 사들일 수도 있지만, 직접 ‘채굴(mining)’ 작업에 참여해 얻을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채굴은 컴퓨터를 이용해 특정 네트워크에서 암호화된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자화폐를 하나씩 획득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과거 개인 컴퓨터로도 충분히 ‘채굴’ 가능했던 비트코인 발행 초기와는 달리 최근엔 문제 난이도가 급격히 어려워져 고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한 것은 물론 수십 대의 컴퓨터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투자자들이 직접 채굴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직접 발굴한 전자화폐를 팔아 차익을 남기기 위해서다. 전자화폐는 기존 화폐와 달리 특정 프로그램과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발행 가능하고, 손쉽게 거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투자자산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 사이에선 채굴에 필요한 고성능 컴퓨터나 그래픽카드를 구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가상화폐 열풍에 전자제품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전자상가 등에서는 때 아닌 ‘그래픽카드’ 대란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일 찾은 용산 전자상가에서 만난 상인 조성훈 씨(30)는 “현재 물량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다”며 “(물량이) 나오는 순간 사람들이 다 사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픽카드) 비싼 게 한 개당 35만원 가량인데 보통 채굴을 위해선 4~5개를 같이 작업해야 한다. 그 비용만 해도 돈 수백만원은 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 김 아무개 씨도 “그래픽카드가 해외에서 들어오는 순간 박스째 팔려나간다”며 “구입문의는 끊이지 않는데 정작 우리도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찌감치 사재기를 해놓고 대량으로 판매하는 업자들도 많다”며 “이쯤 되면 채굴을 해 돈을 버는 것보다 채굴 관련 부품 팔아서 돈을 버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채굴장을 만들어 투자자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기업형 채굴’도 늘고 있다. 비용은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인력을 모아 공동으로 채굴하거나 가정용 전기보다 값싼 산업용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공장 등을 임차해 채굴을 하는 것이다. 9일 한 전자화폐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현재 각 지역마다 참여자를 모집, 공장을 계약해 채굴장 운영을 계획 중이다. 이들은 창고 건물에 기숙사와 사무실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다른 유사 커뮤니티에서도 지난달 전자화폐 가치가 급등한 이후 ‘채굴장’ 투자자를 모집하는 글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채굴장 참여 계획을 밝힌 한 투자자는 “현재 전자화폐 시장이 주식과 다름없이 과열된 상태에서 투기로 이어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매우 좋은 투자처로 생각하는 만큼 직접 채굴을 통해 (전자화폐를) 보유하는 게 유리할 것이라 생각해 아예 채굴장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박’을 기대하며 전자화폐에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특히 투자자들은 이미 급등한 비트코인에 투자하기보다 유사코인 투자를 내세우는 사기 방식에 현혹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 4월 서울 강남경찰서는 ‘케이코인’ 발행업체 킹홀딩스 회장 등 일당 5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홍콩 회사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케이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전 세계로 진출시킬 것이라며 투자자들을 모았다. 이들이 판매한 가상화폐 금액만 180억원에 이른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통상 가상화폐를 내세운 사기는 다단계 수법으로 이뤄진다. 자신들이 발생한 전자화폐에 투자하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투자자를 모집해올 경우 성과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에 국내 한 비트코인 거래소 관계자는 “가상화폐는 비트코인처럼 소스코드가 공개돼야 하는데 유사코인은 공개된 게 없다”며 “특정 발행 주체가 있고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말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