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여민1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법무부는 6월 8일 오전 9시 36분 전격적으로 인사 내용을 발표했다. 사전에 전혀 공지가 없었다. 법무부와 검찰의 주요 간부들조차 알지 못했을 정도로 깜짝 인사였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장관과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이다. BH(청와대)가 주도했고 법무부는 발표만 맡은 인사로 보인다”면서 “어느 정도 예측은 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인사 발표 후 ‘가짜 뉴스’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현 정권의 개혁 의지가 남다르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과거 중요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처리 등으로 문제가 제기됐던 검사들을 전보하는 인사”라며 문책성 인사임을 숨기지 않았다. 현 정권이 지난 정부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검사들을 향해 사실상 ‘조직을 떠나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그중에서도 이번 인사에선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고위급 검사들이 타깃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법조계와 친문진영에선 이른바 ‘우병우 리스트’가 공공연하게 돌았고, 이들이 인적 청산 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말이 나왔다. 이는 지난해 11월 국회 대정부 긴급현안질문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밝힌 ‘우병우 사단’ 12명 실명과 거의 일치한다.
당시 명단에는 7일 면직 징계를 받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김수남 전 검찰총장, ‘돈봉투 사건’에 연루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김주현 전 대검 차장이 포함됐다. 또 8일 인사 조치를 당한 검사(윤갑근 김진모 정점식 전현준 유상범 노승권)들도 이름이 올랐다. 박영선 의원이 밝힌 우병우 사단 12명 중 10명이 좌천되거나 검찰을 떠난 것이다. 남은 검사는 김기동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과 이동열 서울중앙지검 3차장뿐이다.
이번 인사가 갑작스레 이뤄지긴 했지만 그 면면을 놓고선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법무부는 윤갑근 대구고검장, 김진모 남부지검장, 전현준 대구지검장,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 냈다. 검사장급 인사들을 한꺼번에 연구위원 자리에 인사 조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앞서의 검사는 “검사장급이 잠시 쉬어가는 자리다. 보통 기수 중 한 명 정도가 임명됐다 다른 자리로 옮겨가곤 했는데, 이렇게 네 명을 보내는 것은 나가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귀띔했다. 이들 4명은 인사가 발표된 후 모두 사직서를 제출했다.
윤 고검장의 경우 지난해 우병우 전 수석 관련 수사를 맡았지만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우 전 수석은 당시 검찰에서 조사 받던 중 팔짱을 낀 채 웃기도 해 ‘황제 소환’ 논란을 빚었다. 윤 고검장과 우 전 수석은 사법연수원 19기 동기로 평소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역시 우 전 수석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김진모 남부지검장은 세월호 수사 때 외압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던 인물이다. 전현준 대구지검장(20기)은 이명박 정부 때 광우병 사태를 보도한 <PD수첩> 건,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20기)은 지난해 4월 총선 사범 수사 때 민주당 쪽 인사를 무더기 기소한 건이 발목을 잡았을 것이란 추측이다. 핵심 보직인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에서 서울고검 검사로 발령 난 정수봉 검사는 지난 2014년 정윤회 문건 수사를 맡은 바 있다.
이번 인사 후 검찰은 숨을 죽이는 모양새다. 비검찰 출신의 조국 민정수석 카드, 돈봉투 사건 감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발탁 때 조직 내부에서 불만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총장이 비어있는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단행한 인사였다. 특정 검사들을 솎아내려 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들로 검찰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현 정권이 검찰이라는 집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대할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인사다. 그런데 검찰이 의외로 조용하다”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에 인사 조치된 검사들의 경우 어느 정도 예상이 됐었다. 그들에 대한 동정론도 있긴 하지만 검찰을 정치화시킨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게 대부분 검사들의 생각이다. 우리가 문제를 삼는 건 방법과 절차다. 이런 식은 검찰을 마치 범죄 집단처럼 보고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그래도 당분간은 지켜볼 수밖에 없다. 바싹 엎드려 있어야 한다. 검찰을 바꾸겠다는 청와대의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권 초 지지율 80%가 넘는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일이다. 이때 잘 못 하다간 같이 찍혀서 나갈 수밖에 없다.”
현 정권에 다소 불만을 갖고 있던 검찰로서는 불의의 일격을 당한 셈이 됐다. 이는 문 대통령의 노림수와 맞닿아 있다. 검찰 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핵심 과제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검찰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펴낼 정도로 검찰 개혁에 관심이 많았고, 대선 기간에도 여러 차례 관련 공약을 발표했다. 친문 진영에선 이를 위해 ‘노무현 사례’를 여러 차례 복기했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추진하려다 실패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았다는 얘기다. 친문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을 믿다 발등을 찍혔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 친문 의원은 “돈봉투 감찰 결과를 봐라. 기회를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결국은 제 식구 감싸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정권 차원에서 검찰 조직 전반을 바꾸는 작업을 밀어붙이겠다는 방침”이라고 귀띔했다. 문 대통령 검찰 개혁 공약에 참여했던 한 법조인 역시 “검찰과 싸우겠다는 게 아니다. 검찰을 살리려는 것이다. 아마 묵묵히 일하는 많은 검사들이 여기에 동조할 것이다. 일부 정치검사들을 도려내고, 구태의 관행들을 뿌리 뽑겠다는 게 문 대통령 생각”이라고 전했다.
특히 여권 핵심부 주변에선 정권 초 검찰 내부의 이상 기류에 대해 ‘발끈’하는 모습도 감지된다. 이번 기습 인사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뒤를 따른다. 검찰 일각에서 현 정권 실세로 통하는 현직 의원 2~3명과 청와대에 입성한 일부 참모에 대한 비리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얘기가 친문 내에서 돌았던 것이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검찰에서 정보를 다루는 한 직원이 특정 언론에 청와대 한 참모의 여자 문제를 흘려줬다는 제보를 받았다”라면서 “검찰의 조직적 저항 움직임까진 아니겠지만 개혁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차원으로 보고, 조기에 진압해야 한다는 주문을 (청와대에) 했다”라고 했다.
실제로 친문 의원들 사이에선 “궁지에 몰린 검찰이 수사를 핑계로 반격하는 게 아니냐”라는 우려가 공공연히 나돌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인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검찰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과 함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들끓던 검찰 내부가 일단은 백기투항 모드로 바뀐 것도 이런 까닭이다. 친문계의 한 핵심 인사는 “검찰 내부에 불만이 누적되면 누가 총장이 되더라도 개혁을 할 수 없다. 거센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혹시나 모를 ‘쿠데타 모의’의 싹을 사전에 잘라 버린 것이다. 앞으로 더 파격적인 인적 청산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