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손녀 패티 허스트 쇼는 19세 때 게릴라에 납치돼 세뇌당한 적이 있다. 오른쪽은 현재의 패티. | ||
정작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은 이후에 일어났다. 50일 동안 장롱 안에 갇혀 고문당하고 세뇌당한 그녀는 자신을 납치한 단체에 가입해 테러리스트로 활약하는 깜짝 놀랄 변신을 시도했다. 더구나 그녀는 납치 1년 뒤에 총을 손에 들고 은행털이에 가담했다가 붙잡혀 22개월 동안 징역을 살았다.
출소 후 패티는 다시 허스트 가문으로 돌아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과거에 겪은 일로 인해 집안에서도 적지 않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허스트 가문의 재산을 함부로 상속받을 수도, 쓸 수도 없게 된 것. 그것은 나머지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대리인들이 이렇게 유산을 꽉 묶어둔 이유는 두 가지다. 행여나 자식들이 그룹을 말아먹을지도 모른다고 염려한 데다 돈을 노리는 테러리스트들이 후손들을 납치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 때 사면조치로 법적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난 패티는 그러나 할아버지가 정한 상속의 법칙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한 입장이다. 허스트 가문의 정식 일원이지만 막대한 유산에 대한 권한은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것.
이에 최근 패티는 자신의 자매들과 함께 5조원이 넘는 가문의 유산을 놓고 법적 공방에 돌입했다. 할아버지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남긴 유산을 자기 손에 넣기 위해 손녀들이 모두 힘을 합해 법정싸움에 돌입한 것이다.
허스트 가문의 기업들은 한 시간당 약 5억7천만원의 돈을 번다. 1년에 약 5조원을 벌고 있는 셈이다. 허스트 제국은 미디어와 부동산재벌이다. 1백 개가 넘는 TV 방송국과 인터넷 케이블 회사들, 잡지, 그리고 부동산, 신문을 합친 회사들이 그것이다. 오프라 윈프리의
허스트 가문의 상속 문제가 복잡하게 된 것은 제국의 창시자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때문이었다. 1951년에 죽은 그는 5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을 도통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죽을 때 13명의 재산 관리인을 고용해서 그들의 승인을 받아야만 유산에 손을 댈 수 있게 했다. 재산 처분을 결정하는 이사회에는 13명의 재산관리인과 5명의 자식들도 들어 있었지만 서로 견제하는 사이여서 숫자가 달리는 자식들 입장에서는 처분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특히 패티가 테러단체에 납치당한 다음부터 13명의 관리인들은 아예 상속자들의 유산액수조차도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테러리스트들이 다시 패티처럼 다른 가족들을 납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일이다.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13명의 관리인으로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는지 만약 자식이 자신의 유언에 도전하는 행동을 하면 가문에서 아예 내쫓겠다는 조항도 유언장에 넣었다.
현재 허스트 제국의 상속권을 갖고 있는 후손은 61명이다. 몇몇 사람이 할아버지가 세운 회사에 몸담고 있지만 경영 전면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외부인들이 운영하는 것을 지켜 보아야만 했다. 현재 CEO인 프랭크 베넥은 24년 동안 경영 전면에 나서서 한때 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여섯 배나 키워 냈기 때문에 더더구나 후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할아버지의 위세에 대한 ‘반역’의 기운은 지난 1997년부터 일기 시작했다. 윌리엄 랜돌프의 손자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2세가 그 주체였다. 한마디로 ‘손자의 난’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로스엔젤레스 대법원에다가 유산의 내역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하고 허스트 제국의 경영권에 가문의 사람들이 더 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조처를 취해 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허스트 코퍼레이션의 고위직 인사들이 1년에 1백80억여원의 보너스를 챙기는 등 마음대로 회사를 운영한다면서 그들을 배임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허스트 2세는 회사측을 향해 주식 배당금을 훨씬 늘릴 것과 신규투자 규모를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약 이 같은 허스트 2세의 요구가 이루어진다면 허스트 가문의 사람들은 지금의 약 세 배가 넘는 부를 일시에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사람들은 허스트 손자의 반란이 어느 정도까지는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후손들의 발을 꽁꽁 묶어 왔던 ‘자신의 지시를 거역하는 후손에게는 상속권 자체를 박탈하라’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유언은 캘리포니아주의 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기 때문이다.
이에 용기를 얻은 패티와 자매들인 빅토리아와 캐서린도 행동을 취했다. ‘손자의 난’에 이어 ‘손녀의 난’도 일어난 것.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던 태도를 버리고 허스트 2세의 재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패티는 자신과 자매들이 유산 상속의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고 13인의 재산관리인에게 도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무척 궁금해 한다고 한다. 그녀 역시 허스트 가문의 재산을 외부인인 13인의 관리인이 좌지우지하는데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허스트 2세에 이어 패티도 소송전에 합류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할 것”이리고 말한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