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는 기대작이다. 봉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데다 지난 5월 열린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받기도 했다. 12일 대한극장의 3개관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취재하기 위해 취재진과 영화계 관계자들 1000여 명이나 몰렸다. 사전 신청이 되어 있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사회장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29일 개봉을 앞두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를 약 보름 먼저 보는 메리트를 누리기 위함이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옥자>는 문제작이다. 동영상 사업을 기반으로 하는 넷플릭스의 투자작인 만큼 넷플릭스는 오는 29일 자신들의 플랫폼을 통해 전세계 9000만 명의 가입자들에게 동시에 <옥자>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옥자’ 홍보 스틸 컷.
극장주들은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현재 한국 개봉 시스템에선 통상 극장 개봉 이후 3주 정도의 텀을 두고 IPTV 등을 통한 VOD 서비스가 시작된다. 극장과 VOD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유예 기간도 갖는다. IPTV에서 ‘극장 동시 상영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서비스되는 영화들은 여전히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다.
하지만 <옥자>는 상황이 다르다. 넷플릭스는 29일 극장과 온라인을 통해 시작부터 동시 서비스를 한다는 입장이다. 네 가족이 영화관에서 <옥자>를 보려면 최소 3만 원 이상을 써야 한다. 티켓 예매 후 극장까지 가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고, 식사를 겸하거나 팝콘 등을 산다면 5만 원이 넘는 지출을 할 수도 있다.
반면 집에서 넷플릭스에 가입해 <옥자>를 보면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현재 넷플릭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에 가입하면 ‘한 달 간 무료 이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입하는 것만으로 봉 감독의 신작을 공짜로 볼 수 있다는 게 어찌 매력적이 않을 수 있나. 게다가 한 달이 지난 후에는 화질 별로 한 달에 9500원~1만 4500원을 지불하면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모든 영상을 볼 수 있다.
분명 경제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옥자>는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해 집에서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영화는 극장에서 즐겨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영화를 보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영화관과 안방을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디테일한 영상과 사운드 등을 만끽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아가야 한다는 소신족(族)이 적지 않다.
대중에게는 ‘선택’의 문제지만 극장주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다. <옥자>로 인해 넷플릭스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집에서도 영화를 볼 만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순간 극장으로 향하는 대중의 발길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옥자>는 칸국제영화제 기간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지난달 11일 칸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는 “2018년부터 경쟁부문 초청작은 ‘프랑스 극장에서 상영되는 작품에 한한다’는 새 규정을 적용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경쟁부문 진출작 중 <옥자>와 노아 바움백 감독의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 등 넷플릭스의 투자작을 겨냥한 발표였다.
‘옥자’ 홍보 스틸 컷.
조직위원회가 두 영화를 경쟁부문 진출작으로 공개한 직후 프랑스극장협회(FNCF)는 이에 반발하는 성명을 냈다.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콘텐츠’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그들은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작품을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칸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올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프랑스극장협회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 조직위원회는 화해를 시도했다. 두 영화를 프랑스 극장에서 상영하자고 제안했지만 넷플릭스는 이를 거절했다. 영화의 중심지이자 극장주들의 힘이 막강한 프랑스에서는 보통 극장 상영을 마친 후 3년이 지나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즉각적인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대중이 가까이서 빠르게 영화를 접하는 것을 사업의 목적으로 삼는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제안이었던 탓이다.
칸국제영화제가 끝난 후 이제 공은 한국으로 넘어왔다. 프랑스극장협회가 그랬듯 CGV와 롯데시네마 등이 “<옥자>의 극장, 온라인 동시 상영은 영화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결국 <옥자>는 대한극장을 비롯해 서울극장, 청주 SFX 시네마, 인천애관극장, 대구 만경관, 전주시네마타운, 부산 영화의전당 등 7개 극장, 약 1만 석 규모의 티켓에 대한 예매를 우선 시작했다. 이후 동시 상영을 받아들이는 극장을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예매를 늘려가겠다는 복안이다. 13일 현재 약 100여 개의 중소 극장들과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으나 국내 극장의 90% 점유율을 차지하는 CGV, 롯데, 메가박스 등과는 아직 접점을 찾지 못했다.
멀티플렉스의 결정이 대중의 ‘볼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 멀티플렉스가 쉽게 물러설 수 없다는 옹호 논리도 만만치 않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정착시키며 불과 10여 년 전까지 해외 시장을 선도하던 DVD 렌털 시장을 붕괴시킨 장본인”이라며 “국내에서는 아직 영향력이 미미한 편이지만 <옥자>를 통해 뿌리를 내린다면 향후 영화를 극장이 아닌 집에서 본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다. 결국 극장주들은 <옥자> 자체의 흥행이 아니라, 그 이후의 상황을 우려해 상영관을 내주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