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3월 북한 국방위원회 결정으로 전격 해임된 주상성 전 인민보안부장(가운데). 연합뉴스
사건이 발생한 때는 지난해 7월 말경이다. 주상성 전 인민보안부장(계급 대장. 인민보안부는 한국의 경찰에 해당)은 이 당시 쿠바에 주둔하는 북한 미사일부대의 부대장으로 주재하고 있었다. 리하일 전 전략미사일국장(계급 차수)의 후임자 자격이었다.
주 전 부장이 이끌던 쿠바 주둔 미사일부대는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비공식 해외 주둔 부대다. 1980년대 말 스커드미사일을 구축한 북한은 미국 목전에 있는 혈맹 쿠바와 협력해 이 부대를 구축했다. 창설 당시 이 부대 규모는 여단 급 정도였지만 2000년 대 초, 연대 급으로 축소됐다고 한다. 다만 그 기간 동안 북한의 미사일 기술도 발전했기 때문에 규모가 줄었다고 부대의 화력이 약해졌다고는 볼 수 없다.
애초 부대 창설 목적이 미국을 직접 겨냥한 것이기에, 유사시 양국 모두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원로 장성이 마지막을 보내는 휴양 보직이기도 하다. 전공이 포병이었던 주 전 부장에겐 여러모로 안성맞춤의 자리였다.
그런 주 전 부장이 지난해 7월 말 차량 한 대를 몰고 주둔 부대를 빠져나갔다. 주 전 부장이 망명을 시도한 이유에 대해선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다만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부대 내 부하 군관들과 여러모로 대립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대립 구도에서 주 전 부장은 최고 존엄에 반하는 말을 내뱉었고, 이것이 부대에서 문제가 돼 망명을 시도했다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부대 내 대립 구도의 구체적인 내용 및 성격과 주 전 부장이 행한 최고 존엄 도전 행위가 뭔지는 아직 명확치 않다. 그의 망명 목적지는 미국으로 추정된다.
북한 당국은 주 전 부장의 도주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곧바로 보위부 소속 요원들을 쿠바로 급파했다. 북한과 오랜 기간 혈맹 관계를 유지해 온 쿠바 당국 안보기관 역시 주 전 부장의 체포에 적극 협력했다. 양국의 안보 관련 요원들은 도주한 그를 추적했다.
주 전 부장이 체포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팔십을 훌쩍 넘은 원로 군관이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노병을 잡기란 여간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 전 부장은 8월 중순경 도주 15일 만에 체포됐다. 의외로 그의 도주 거리는 멀지 않았다. 그는 쿠바 아바나 시 외곽지역에서 붙잡혔다.
여기서 주 전 부장의 망명시도와 관련해 몇 가지 살펴볼 부분이 있다. 일단 주 전 부장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그는 군 원로격 장성이면서도 김일성 시대 때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이 아니었다. 포병 전문가였던 그를 중앙무대로 발탁한 이는 김정일이었다. 3군단 군단장을 거친 주 전 부장은 2004년 인민보안부(당시는 인민보안성. 인민보안성은 2010년 국방위원회 직속 인민보안부로 격상됐지만 김정은 시대 들어 다시 인민보안성으로 격하됐다)의 책임자로 올라섰다. 그는 김정일 시대 오랜 기간 북한의 경찰기관 책임자로 복무하며 권력의 한 축을 담당했다.
주 전 부장은 초기에는 김정일 시대 최고위급 권력자였던 리제강, 리용철 등 조직지도부 핵심 권력자들과도 사실 가까운 사이였다. 이를 토대로 승진의 발판을 마련한 케이스였다. 김정일이 뇌졸중 후유증으로 주요 안보기관들을 행정부 부장 장성택이 관할하면서 그는 자연스레 장성택과 친분을 쌓아갔다.
김정일 시대가 저물고 김정은 시대가 시작될 즈음 주 전 부장은 중앙무대서 갑작스레 사라졌다. 2011년 4월 그는 7년간 자리를 지켜왔던 인민보안부장직에서 해임됐다. 당시 국내외에선 그의 충격적인 해임을 두고 이런저런 추측이 나돌았다. 그 중 유력한 해임 사유는 중국과의 관계 탓이었다. 그 시기 인민보안부 소속 경비대원이 중국 민간인을 사살했고, 중국 측에서 그 책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북한 내부에선 김일성의 생가 사립문 한 쪽이 도난을 당했는데 그 책임을 주 전 부장이 졌다는 설도 나돈다.
그의 퇴장과 관련해 여러 이유가 나돌았지만, 결국 장성택 라인과 가까웠던 그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도적으로 솎아내졌다는 것이 더 타당한 설명일 것이다. 주 전 부장은 자리서 물러난 뒤 평안남도 대동군 보안서 서장으로 강등되는 치욕을 겪는다. 당연히 김정은에 대해선 좋은 감정이 있을 리 없다.
지난 2009년 11월 평양의 한 과수농장을 시찰 중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옆에 주상성 당시 인민보안부장(원안)이 보좌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일이 사망한 뒤 주 전 부장은 중앙무대에서 벗어나 쿠바의 주둔 부대장으로 인사조치됐다. 그 상황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망명을 시도하다 비참한 말로를 맞은 셈이다.
주 전 부장은 당시 국제적 상황 역시 염두에 뒀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미국 오바마 정부는 이란과 쿠바 등 친북 정권들에 대한 회유정책을 꾀하고 있었다. 지난해 미국과 쿠바는 양국 관계 정상화 이후 급속히 가까워진 상황이었고, 쿠바 내부도 큰 변화를 맞이했다. 반면 북한은 태영호 전 북한 영국주재 영사가 남한으로 귀순하고, 해외 주재원들이 잇따라 잠적하거나 망명에 나섰던 시기였다. 주상성 역시 그 물결에 따랐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 시기 주 전 부장이 미국 망명에 성공했다면, 북한으로서는 비상사태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미국이 직접 주 전 부장의 망명에 개입했는지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 입장에서 주상성은 아주 매력적인 카드다. 그는 북한 군부와 정권 내부의 민감한 정보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섭대상 1순위이자 거물급에 해당한다.
북한 당국이 그의 체포를 위해 서둘러 요원들을 파견한 것도 주 전 부장의 무게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북한 내부에서는 이 당시 “지금 태영호가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주상성이다”라는 반응이 잇따랐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주상성 전 보안부장을 체포한 후 10월경 북한으로 그를 인계했다는 후문이다. 북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2017년 초까지 처형 등 처분은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