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두 달 안에 SK증권을 매각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비슷한 규모의 중소형 증권사들도 매물로 나와 있지만 수년째 매각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 7월부터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 매각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진전된 게 없다. LS그룹의 이베스트투자증권이나 골든브릿지그룹의 골든브릿지증권도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와 있지만 2년 넘게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LS그룹은 아프로서비스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이베스트투자증권 매각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지난 13일 아프로서비스그룹이 돌연 인수를 포기했다.
지난 5월 금융위원회(금융위)가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방안 시행을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해 금융권 일부에서는 향후 분위기는 달라질 것이라고 관측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인 증권사는 만기 1년 이내 어음 발행, 매매, 중개, 인수 등 단기금융업무를 할 수 있다. 자기자본 8조 원이 넘으면 투자자로부터 예탁받은 자금을 통합 운용해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종합투자계좌업무도 할 수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 자기자본 4조 원이 넘는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 5곳이다. 아직 자기자본 8조 원이 넘는 증권사는 없어 M&A를 통해 자본 확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밖에 신한금융투자, 메리츠종금증권, 하나금융투자, 대신증권 등도 초대형 IB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어 향후 증권사 M&A에 나설 후보군으로 꼽힌다.
지난 8일 SK는 SK증권을 공개 매각하겠다고 공시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하지만 후보로 꼽힌 증권사들은 하나같이 “현재로서는 증권사 M&A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일부 증권사는 M&A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자본 확충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유상증자를 할 수도 있고 자기주식을 매도하는 방법도 있어서 꼭 M&A를 할 필요는 없다”며 “M&A를 하면 기존 업무와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 나중에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몇 년 전 시장에 나왔던 우리투자증권, 현대증권 등 대형 증권사와 비교하면 현재 매물로 나온 중소형 증권사는 경쟁력도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눈에 띄는 차별화 전략도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도 증권사 M&A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증권업 M&A는 수익성과 성장성 측면의 일부 개선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지만 안정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효과는 미흡하다”며 “소유 구조의 변화만 있는 M&A는 증권사업 수익성과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 한계를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증권사가 M&A에 나서지 않는다면 신규 증권업 진출을 노리는 금융지주사에서 인수를 시도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DGB금융지주와 JB금융지주다. DGB금융은 공공연하게 증권업 진출 의지를 밝혀 왔고 JB금융은 2015년 LIG투자증권(현 케이프증권) 인수전에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현재 매물로 나온 증권사 인수는 검토한 바가 없다고 전했다. DGB금융 관계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증권업 진출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지 급하게 증권사를 인수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증권업계 추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현재 매물로 나와 있는 증권사 인수는 검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하이투자증권 연내 매각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SK증권으로 인해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업계에서는 SK그룹이 공개 매각 발표 전 PEF 운용사를 중심으로 원매자를 물색했다는 소문이 돈다. 하지만 SK㈜ 관계자는 “투명한 매각을 위해 공개 매각을 하고 있으며 사전 접촉이나 매각 시도는 전혀 없었다”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고의적으로 지연한 건 아니며 어디에 매각할지도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전했다.
한편 SK증권이 매물로 나오자 기존에 매물로 나온 증권사들의 매각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하이투자증권은 연내 매각을 목표로 지난달 희망퇴직을 단행하면서 매각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매각가가 문제다. 하이투자증권의 매각가는 5000억 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반면 SK증권은 현재 주가와 SK㈜가 보유한 주식을 단순 계산해서 약 576억 원이다.
업계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덧붙여도 SK증권의 매각가가 1000억 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하이투자증권의 자산(지난 1분기 기준 5조 9414억 원)이 SK증권(4조 389억 원)보다 많은 걸 감안해도 SK증권의 매각가가 비교적 저렴하다는 평가를 받아 SK증권에 더 눈길이 간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의 예상 매각가는 3000억 원, 골든브릿지증권은 2300억 원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하이투자증권 판매자인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연내 매각하겠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고 현재도 잠재적 투자자와 논의 중”이라며 “그렇지만 내부 분위기나 앞으로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