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흡연 혐의를 받고 있는 중견연극배우 기주봉(왼쪽)과 정재진. MBC연예투데이 화면 캡처.
탑과 가인의 사건이 다소 잠잠해진 지난 13일 또 다시 연예인들의 대마 흡연 사건이 불거져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 ‘마약 사범’이라는 불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것은 나이 지긋한 중견 연극배우들이다. 연극배우이자 극단 대표인 정재진(64)과 연극배우 기주봉(62)이 그 주인공이다. 정재진은 영화 배우로도 활약해 <효자동이발사> <웰컴 투 동막골> 등에 출연했고, 기주봉 역시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등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왔다.
사건을 수사한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대에 따르면 이들은 각각 지난해 12월 중순과 말경 공통된 지인인 A 씨(62)로부터 대마초를 공급받아 흡연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가 먼저 경찰에 체포됐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A 씨가 “정재진 씨와 기주봉 씨를 모두 아는 사이로 그 사람들에게도 대마를 건네줬다”고 진술함에 따라 수사가 확대된 것이다.
1차 마약검사를 통해 정재진은 모발, 기주봉은 소변에서 대마초 흡연 양성 반응이 나온 상태다. 이들은 모두 대마초 흡연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특히 소변 검사로 대마 양성 반응이 나오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대마를 흡연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실제로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의 대마 흡연 혐의가 불거졌던 2011년 당시, 국과수 마약분석과 관계자가 직접 “대마를 흡연하였을 때 보통 소변검사로는 5~10일 정도 내에서 대마를 흡입했다면 양성 반응이 나오며, 상습 복용자의 경우는 더 길게 체내에 (마약 성분이) 잔류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기주봉의 경우는 경찰 수사에서 밝혀진 것은 현재로부터 약 7개월 전인 2016년 12월에 대마를 흡입하였다는 의혹인데,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한 번의 대마 흡연으로 7개월 동안 체내에 대마 성분이 잔류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국과수 관계자의 말처럼 소변 검사로 양성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마의 체내 잔류 기간이 대마를 흡입한 날로부터 약 10~15일이라면, 기주봉은 체포 직전에도 대마를 흡연했거나 상습 흡연자일 수도 있다.
다만 기주봉은 마약 사건에 연루된 것이 이번이 처음인 데다 “억울한 측면이 있으며 국과수 마약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이어가고 있어 보다 정확한 수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정재진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정재진은 이미 2009년에도 한 차례 ‘연예계 대마초 사건’에 연루됐었던 인물이다. 당시 배우 오광록을 필두로 정 씨를 비롯한 다수의 영화배우들과 인터넷 방송국 대표, 영화감독 등 10여 명의 연예계 인사가 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랐고, 이 가운데서도 정재진과 오광록 등 7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2009년 6월 초 대마 흡연 혐의로 구속된 인터넷방송국 대표 박 아무개 씨의 자백으로 덜미를 잡혔다. 연예계 행사나 유명인 전시회에 참석해 관련 업계 인맥을 늘려왔던 박 씨였기 때문에 박 씨 한 명을 검거하자 그 줄을 타고 유명인 마약사범들이 무더기로 끌려나오게 된 것이다.
이처럼 연예계 인맥이 상당하거나, 아예 직접적인 연예계 관계자가 마약 사범으로 검거될 경우 검경의 입장에서는 ‘노다지’가 될 수 있다. 붙잡힌 마약 사범과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관계자들은 전부 수사 선상에 오른다. 2009년 당시 경찰의 연예계 마약 내사에 기억하고 있던 한 연예계 관계자는 “TV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연예인뿐 아니라 연극판이든 클럽 나이트든 사건 관계자랑 스쳐 지나가기만이라도 했다면 최소 참고인으로라도 수사 대상이 됐다”라며 “그 외에는 클럽을 좋아하거나 밤놀이가 잦은 연예인들도 마약 복용을 의심해 사건과 관련 없더라도 마약 수사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연예계에서는 경찰의 이런 ‘토끼몰이 식’ 수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고 한다.
특히 연극계의 경우는 동기, 선후배들 사이가 돈독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그룹 활동이 많기 때문에 이런 그룹 사이에서 알음알음 대마가 오가는 일이 잦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2009년 한 차례 연예계와 연극계를 쓸고 지나간 마약 사태가 2년 뒤인 2011년에도 발생했는데 당시에는 먼저 체포된 배우 전창걸의 이름을 붙여 ‘전창걸 리스트’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리스트에 이름을 적힌 전 씨의 연극계 선후배들은 줄줄이 검경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으며 수사를 통해 이들 가운데 또 다른 마약사범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는 이번에 입건된 두 배우의 대마 흡연 빈도수와 그외 동종 업계 관계자들에게 마약을 권한 바가 있는지, A 씨 외에도 마약을 공급한 또 다른 인물이 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전 마약 공급책들이 대부분 돈을 받고 마약을 판매하는 데에 그쳤다면, 이번 사건에서 공급책으로 드러난 A 씨는 청탁을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당시 A 씨는 자신의 며느리를 정 씨가 제작하는 연극에 출연시켜달라고 부탁하면서 돈을 받지 않고 정재진과 기주봉에게 대마를 넘겼다.
한편 경찰은 탑, 가인, 정재진, 기주봉으로 이어지는 이번 대마 사건에 대해 면밀한 수사를 지속할 것을 밝히면서도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철성 경찰청장은 “연예인들의 마약 관련 문제에 대해 연예계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 생각은 없다”며 “드러난 부분에 대해서 조사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이전 의혹만으로 이뤄진 강도 높은 ‘토끼몰이 식’ 수사에서 연예인들의 인권 침해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를 의식한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