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8일 오후 인천문학구장에서 프로야구 삼성-SK 경기 9회말에 김성근 감독 경질에 항의하던 한 관중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보안요원들에게 제압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된다. 가끔은 일부 관중의 도를 넘은 열정이 경기를 망칠 때가 있다. 주변 관중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물론, 경기 자체의 흐름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는 선수들의 투지와 긴장감에 찬물을 끼얹는다. 6월 11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벌어진 한 관중의 추태가 그랬다.
# 역전패의 시발점이 된 한 관중의 ‘지붕 난입’
황당한 사건이었다. 한화와 삼성이 한창 팽팽하고 흥미진진한 승부를 이어가던 참이었다. 2-3으로 뒤지던 한화가 6회 경기를 4-3으로 뒤집었다. 한화는 8회 세 번째 투수 권혁을 마운드에 올려 승리를 지키려고 했다. 그런데 1사 후 삼성 조동찬 타석에서 갑자기 경기가 중단됐다. 권혁이 초구를 막 던지고 조동찬이 그 타구를 걷어내 파울이 된 뒤였다. 야구장이 웅성웅성했다. 한 자리에 모인 심판진이 야구장 위 특정 지점을 가리키며 안전요원을 호출했다.
위험천만한 장면이었다. 이글스파크 3층 관중석에 있던 한 팬이 난간을 넘어 2층 중앙석 지붕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그 위에 떨어져 있는 파울볼을 줍기 위해 출입이 금지된 관중석 지붕 위까지 올라간 것이다. 한눈에도 술에 취한 상태라 당장 추락이 걱정되는 절체절명의 상황. 결국 야구장 경호 인력이 급히 투입돼 이 관중을 안전하게 끌어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퇴장을 지시한 뒤 업무 방해로 경찰에 인계했다.
문제는 그 후였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경기가 중단된 오후 7시 44분부터 46분 사이에 경기 흐름이 미세하게 뒤바뀌었다. 야구는 흐름이 좌우하는 스포츠다. 아주 작은 요소 하나가 원인이 돼 순식간에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수두룩하다. 특히 예민한 포지션인 투수들은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다. 타자들이 투구 직전에 일부러 타임을 요청하고 타석을 벗어나는 것도 투수들의 투구 타이밍이나 심리를 미세하게 흔들기 위한 작전의 일부다.
권혁은 경기가 재개된 직후 조동찬과 김정혁에게 연속 중전 안타를 허용했다. 김헌곤 타석에서도 제구가 흔들려 몸에 맞는 볼을 내줬다. 그렇게 1사 만루가 됐다. 꽉 채워진 베이스를 등 뒤에 두고 마운드에 오른 심수창은 결국 이지영에게 희생플라이를 맞고 동점을 허용했다. 그 다음에는 박해민의 외야 플라이성 타구를 한화 외야수 장민석이 시야에서 놓치면서 역전 2타점 3루타로 만들어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관중은 이날 경기에 직접 뛰지 않았다. 공은 권혁과 심수창이 던졌고, 실책성 플레이는 장민석이 했다. 그러나 야구 외적인 요소가 팽팽하던 흐름을 흔들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야구공을 너무 갖고 싶었던 한 관중이 생각 없는 행동 하나로 자신이 응원하던 팀에 악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 어린이팬의 열정(?)에 날아간 이승엽의 타점
승부가 뒤집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관중 때문에 타점을 도둑맞은 선수도 있다. ‘국민 타자’로 유명한 삼성 이승엽이다. 지난해 9월 4일 잠실 두산전에서였다. 당시 이승엽은 한일 통산 600홈런과 KBO 리그 사상 첫 통산 1400타점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시점이었다. 특히 600홈런은 메이저리그에서 단 여덟 명, 일본에서 단 두 명의 타자만 이뤄냈던 대기록이다. 이 때문에 삼성 구단도 통산 596호 홈런부터는 매번 이승엽의 홈런볼을 줍는 관중에게 다양한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열기도 뜨거웠다. 이 경기는 이승엽이 600홈런 고지까지 홈런 단 두 개만을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이승엽의 타구가 외야로 날아갈 때마다 엄청난 함성이 야구장을 메웠다. 이날 잠실구장 관중은 1만 9009명. 왼손 타자인 이승엽이 가장 홈런을 많이 날리는 오른쪽 외야석은 일찌감치 인파가 집중적으로 몰렸다.
이승엽은 팀이 0-3으로 뒤진 4회 1사 1루서 외야 우중간으로 큼직한 타구를 날렸다. 홈런을 예상한 관중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을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힘이 실리지 못했다. 아쉽게도 타구는 외야 펜스 바로 위에 설치된 노란색 안전봉 바로 아래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때 글러브를 낀 손 하나가 그라운드 안쪽으로 쑥 들어와 이승엽의 타구를 낚아챘다. 홈런 볼을 잡으러 왔던 한 어린 팬이 공을 잡고 싶은 마음에 실수를 한 것이다. 구장 안전요원들이 이 어린이 팬에게 향했다. 야구장 방해 행위 규정은 이 경우 관중 퇴장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라는 정상이 참작돼 좌석을 이동하도록 했다.
야구규칙에 따르면, ‘관중이 경기장 안으로 몸을 내밀거나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인 플레이의 공에 닿았을 경우’에는 볼 데드가 된다. 이에 따라 이승엽의 타구는 인정 2루타가 됐다. 정상적인 플레이가 진행됐다면 1루 주자 구자욱이 충분히 홈으로 들어올 수 있을 만한 타구. 홈런은 아니었다 해도 이승엽이 통산 1396번째 타점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쉽게도 타점은 날아가고, 삼성은 1사 2·3루 기회를 이어가야 했다. 이승엽은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린이 팬의 실수라는 얘기에 이내 “괜찮다”는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 김현수의 안전을 위협한 맥주캔
파울볼을 잡으려다 실수를 범한 어린이 팬의 사연은 차라리 귀엽다. 일부러 선수를 노리고 위험한 물건을 던지는 행위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볼티모어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외야수 김현수가 바로 지난해 관중의 비매너 때문에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였다.
10월 5일(한국시간) 로저스 센터에서 열린 토론토와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였다. 2-2로 맞선 7회말 2사 후 토론토 멜빈 업튼 주니어가 왼쪽 펜스 근처로 타구를 날렸다. 좌익수인 김현수가 공을 잡으려고 달려가 손을 뻗는 순간 그 옆으로 맥주 캔이 날아들었다. 다행히 캔은 김현수 옆을 지나 그라운드에 떨어졌고, 김현수는 동요 없이 공을 잡았다. 그러나 무사히 아웃을 시킨 뒤에는 놀란 가슴을 감추지 못한 채 한동안 관중석을 쳐다봤다.
오히려 김현수보다 팀 동료인 중견수 애덤 존스가 더 화를 냈다. 맥주 캔이 날아든 방향을 확인한 존스는 관중석을 향해 검지를 들고 소리치며 강한 항의의 뜻을 표현했다. 벅 쇼월터 볼티모어 감독도 심판진에게 걸어 나와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경찰이 투입돼 ‘범인’을 색출했고, 주변 관중들의 도움을 받아 용의자 켄 페이건을 특정했다. 페이건은 “나는 맥주를 컵에 따라 마셨다”고 부인했지만, 목격자가 너무 많았다. 다음 날 현지 언론들도 “어차피 관중이 방해했다는 점이 인정되면, 김현수가 그 공을 떨어트렸어도 아웃으로 인정된다. 정말 무의미하고 바보 같은 행위였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김현수는 경기 후 현장 인터뷰에서 “정말 놀랐다”고 분개하면서도 “나도 항의를 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존스가 팬을 향해 소리쳤다. 이런 동료가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존스 역시 “팬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건 좋지만, 선수를 향해 맥주 캔을 던지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며 “그 관중이 꼭 처벌받길 원한다”고 다시 한 번 화를 냈다. 존스는 나중에 지역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사실 그 관중이 나와 김현수를 향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것도 들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홈 구단인 토론토도 책임을 통감했다. 볼티모어를 꺾고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한 뒤 “남은 포스트시즌 기간 맥주 캔 판매를 금지한다”는 새 안전 규정을 마련했다. “맥주는 반드시 플라스틱 컵에 따라서 마셔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문제의 관중 페이건 역시 신속하게 기소됐다. 6월 29일 열리는 선고공판에서 상해 혐의로 5000만 달러 미만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전망이다.
# 선수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가 문제
사실 선수의 안전을 위협하는 오물 투척 문제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다. 2011년 6월 4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KIA전에선 9회말 수비에서 펜스플레이를 하던 KIA 외야수 이종범을 향해 맥주 캔이 날아온 적이 있다. 다행히 이종범이 맥주 캔을 피하면서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일로 외야의 관중과 설전을 벌이던 이종범이 도리어 경고를 받았다. 결국 누가 맥주 캔을 던졌는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1997년 6월 29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해태 김응용 감독의 그 유명한 ‘참외 사건’도 생각해보면 아찔한 해프닝이다. 김 감독은 당시 해태 투수 강태원이 보크를 선언 당하자 홈 플레이트 근처까지 나가 주심에게 항의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3루 쪽 관중석에서 날아온 참외에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았다. 흥분한 해태 팬이 심판을 향해 투척한 참외에 애꿎은 김 감독이 피해를 봤다. 참외가 터져서 파편처럼 튀어 나가는 모습에 많은 관중이 웃어 버렸지만, 참외가 아닌 다른 물건이었다는 가정을 해본다면 그야말로 아찔하기만 하다.
지난해 마산구장에서도 난감한 장면은 이어졌다. 4월 8일 NC-한화전이었다. 7회초 한화 공격 2사 1·2루 정근우 타석에서 2구째를 앞두고 맥주가 담겨 있는 페트병이 타자 배트박스 바로 앞까지 날아들었다. 정근우가 화들짝 놀라 타석에서 물러섰다. 다행히 다친 선수는 없었지만 경기가 잠시 중단됐고, 맥주 페트병을 투척한 관중은 경찰서로 연행됐다.
그 관중은 “정근우를 향해 페트병을 던진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마산구장 3루 꼭대기 조명탑 전구가 깨지는 바람에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자신의 아내가 유리 파편에 맞았다는 것이다. 남편이 목소리를 높이며 불만을 표현했지만 관중들의 응원 소리가 커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결국 “항의의 표시로 그라운드에 페트병을 투척했다”는 변명을 했다. 예상 가능하듯 이 관중은 과도한 음주 상태였다. 불과 일주일 전 경기 도중 취객이 그라운드로 난입하는 소동을 겪었던 NC는 즉각 구단 수뇌부가 나서 사과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스티브 바트만 사건 아시나요? 타구에 손 한번 댔다 컵스팬 공적으로… 야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관중 방해 해프닝은 2003년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일어났다. 시카고 컵스와 플로리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 그 이름도 유명한 ‘스티브 바트만 사건’이다. 컵스는 지난해 108년 묵은 월드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었지만, 당시만 해도 여전히 ‘염소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 마침내 절호의 기회가 왔고,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서면서 대망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향한 꿈에 부풀기 시작했다. 6차전 역시 컵스의 페이스였다. 8회 1사 후까지 3-0으로 앞섰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주 사소해 보이던 불씨 하나가 큰 불로 번지기 시작했다. 1사 2루 상황에서 플로리다 루이스 카스티요가 외야 왼쪽으로 큼직한 파울 타구를 날렸다. 컵스 좌익수 모이세스 알루가 그 타구를 잡기 위해 달려갔고, 펜스를 타고 올라가 관중석 안쪽으로 팔을 뻗었다. 그러나 공이 알루의 글러브에 들어가기 직전에 한 관중이 타구를 손으로 건드렸다. 그가 바로 이제는 유명 인사가 된 스티브 바트만이다. 여러 명의 팬이 파울볼을 잡으려고 타구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하필이면 바트만의 손에 공이 맞고 튕겨져 나간 것이다. 타구를 잡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알루는 크게 분노하며 펄쩍펄쩍 뛰었지만, 심판진은 ‘공이 이미 관중석 안쪽으로 들어갔고, 타구를 분명히 잡았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판단해 관중 방해가 아닌 단순 파울을 선언했다. 컵스는 그렇게 투아웃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경기는 1사 2루 상황에서 속개됐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흐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플로리다 타선의 맹공이 시작됐다. 만루에서는 컵스 유격수 알렉스 곤잘레스의 어이없는 실책까지 겹쳤다. 플로리다는 그 회에만 무려 8점을 뽑아 역전승했다. 컵스는 끝내 7차전에서도 패해 월드시리즈행 티켓을 놓쳤다. 그러자 컵스 팬들의 분노가 바트만을 향했다. 이미 그 경기 TV 중계 화면에 반복적으로 바트만의 얼굴이 노출되면서 팬들이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맥주 캔을 던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바트만은 보안 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변장을 한 채 야구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엔 시카고 일부 언론이 바트만의 신상 정보를 노출했다. 전국 각지에서 협박이 날아들었다. 바트만이 친구를 통해 컵스와 컵스 팬들에게 보내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트만 파울볼’을 주운 한 팬은 경매에 내놓아 10만 달러의 수익을 얻었고, 그 공을 산 팬은 다른 팬들이 보는 앞에서 폭파시키는 세리머니를 했다. 바트만으로서는 타구에 손 한 번 잘못 댔다가 너무 과한 사회적 처벌을 받은 셈이 됐다. 해프닝 그 자체의 파장은 물론 그 후의 과정까지 모두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와 반대로 뉴욕 양키스는 포스트시즌에서 한 관중의 ‘도움’을 톡톡히 받은 적이 있다. 1996년 양키스와 볼티모어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에서였다. 당시 양키스 신인이었던 데릭 지터는 8회 오른쪽 펜스 바로 앞까지 날아가는 큼직한 타구를 날렸다. 볼티모어 우익수 토니 타라스코가 팔을 높이 뻗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당시 11살이던 한 어린이 팬이 글러브를 뻗어 타라스코보다 먼저 공을 낚아챘다. 아웃이 될 뻔했던 타구는 어린이팬의 ‘활약’에 힘입어 홈런이 됐고, 양키스는 그 경기에서 승리한 것은 물론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를 연이어 제패했다. 양키스 팬들은 그 ‘홈런’이 양키스의 행운을 불러온 하늘의 계시였다고 믿는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