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한글공원에 ‘광화문 1번가’가 문을 열었다. 박정훈 기자
온라인 광화문 1번가는 5월 25일 개설돼 3주 만에 정책 제안이 6만여 건을 훌쩍 넘어서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접수되는 1년 민원 전체 건수가 10만여 건임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반응이다.
광화문 1번가 홈페이지에 가입한 국민인수위원 수는 3만 1043명(6월 13일 기준)이다. 온라인 사이트엔 3만 3933건, 문자로는 2만 1747건이 접수됐다. 국민인수위원회 관계자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2000건에서 3000건씩 접수되고 있다. 가장 많이 접수된 카테고리는 ‘일자리’ ‘행정’ ‘육아/교육’ 순”이라고 설명했다. 문자나 이메일로도 제안 아이디어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도 청년 일자리와 비정규직 문제 등 일자리에 관한 정책 제안을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제안자는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일자리를 마련해달라며 “엄마들을 위한 재교육기회도 많이 있어야 한다. 3D프린팅 같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제안자는 중장년층 일자리를 늘려달라면서 “노련함과 지혜가 넘쳐난다. 나이가 많은 것도 서러운데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세종로 공원에 마련된 오프라인 광화문 1번가 열기 또한 뜨겁다. 오프라인 창구에선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직접 국민의견을 경청하고 정책 제안에 대한 상담과 안내를 진행한다. 6월 14일까지 오프라인으로 접수된 정책 제안은 2500여 건이다. 오프라인 현장을 담당하는 행자부 관계자는 광화문 1번가에 대해 “국민과의 소통을 늘리기 위해서 도입된 시스템이다. 앞으로 10만 건 정도 예상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제안서를 들고 오는 민원인들의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서류를 100장에서 200장씩 들고 오는 분들도 있다. 정책 제안보다 사기사건, 재개발 문제 등 개인 민원이 가장 많다”고 했다. 실제 인터뷰를 하던 도중에도 각종 서류를 든 민원인이 찾아와 담당자는 잠시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빙의된 분이나 과대망상증 환자도 찾아왔다. 모든 일에 대해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대통령 피해 전가증’이라고 이름 붙였다. 정부에 피해를 봤다는 분들도 많이 있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하는 ‘일신 지존 선언증’ 분들도 찾아온다. 왔던 분이 주로 다시 온다. 경찰서장을 만나게 해달라는 분도 있어 해당 경찰서에 연결해 준적도 있다”고 했다.
제안자들은 흔치 않은 기회인 만큼 광화문 1번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국민인수위 관계자는 “국민이 인수위에 참여해 직접 정책을 제안하는 시스템을 보여주기 위해 교육 차원에서 자녀와 같이 오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직접 만들었다는 식초를 가져온 분도 있었다. 전통 음식을 국가사업에 반영해 달라는 취지였다. 또 다른 분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일종의 연판장처럼 개별 서명을 다 받아서 박스에 담아온 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인수위는 오프라인 민원을 전담하는 ‘현장팀’과 제안서를 검토하고 분류하는 ‘내근팀’으로 꾸려 일을 하고 있다. 현장팀엔 46명, 내근팀엔 16명의 공무원들이 소속돼 있다. 한 진행팀 공무원은 “50대 이상 고령층이 많이 방문한다. 교대로 2시간 상담을 진행하고 2시간 쉰다. 억울한 사연으로 2시간에서 3시간씩 얘기하다 가는 분들도 더러 있다”고 했다.
6월 15일 오프라인 현장에서 만난 김 아무개 양(17)은 “대입 제도를 개편해달라고 제안하려고 한다. 수시 제도가 대입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수시 제도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수능 또한 공부를 더 많이 시키는 특목고가 당연히 대입에서 유리하다. 대입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와는 별도로 국민인수위는 ‘열린 포럼’과 ‘국민 마이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13일엔 ‘청년’에 대한 주제로 ‘열린 포럼’을 진행했는데 젊은이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가득 찼다. 한 국민인수위 관계자는 “많을 땐 80명까지 온다”고 귀띔했다.
국민인수위는 7월 12일까지 온·오프라인 접수를 마무리한 뒤 50여 일 동안 제안 내용과 성격에 따라 각 부처로 할당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각 부처로 선별된 제안은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8월 말에 문 대통령이 직접 제안자를 만나 제안에 대해 논의한다. 국민인수위 관계자는 “8월 말 ‘대국민 보고대회’를 개최하고 우수 제안을 제출한 국민들과 전문가 등을 모시고 토론 등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면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 놀랐다. 업무량이 많이 매우 바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