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씨와 그의 장남 재국 씨가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 시공사 전경. 박은숙 기자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던 전두환 씨가 백기를 던진 것은 2013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 씨 장남 재국 씨는 9월 10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기자들 앞에서 추징금 완납을 약속했다. 재국 씨는 부동산과 미술품 매각 등이 포함된 자진납부 계획서를 검찰에 제출하며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을 모두 내겠다고 했다. ‘쇼’라는 반응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대국민사과문도 발표했다.
이는 전 씨 일가를 향한 추징금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같은 해 6월 국회는 공무원이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을 끝까지 환수할 수 있도록 추징 시효를 늘리고 그 대상을 가족 등 제3자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다. 이로써 전 씨 추징금 만료 시한은 2020년으로 연장됐고, 가족 등 제3자에 대해서도 미납금을 추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검찰도 전 씨 자택과 자녀 소유 회사 등을 압수 수색했고, 장남 재국 씨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실까지 밝혀냈다.
특히 처남 이창석 씨 구속은 버티던 전 씨를 무너트린 결정적 계기였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이 씨를 전 씨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하고 전격 구속했다. 그 직후 전 씨는 가족회의를 소집해 재국 씨의 검찰 출두 및 재산 매각을 통한 자진납부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재국 씨와 재용 씨가 갈등을 빚는 등 형제들 간 불협화음이 들려 화제를 모았다.
그렇다면 지금 전 씨에게 남아있는 추징금은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전 씨가 낸 추징금은 모두 1150억 원가량이다. 전 씨는 1997년 내란, 반란수괴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전 씨가 아직 1055억 원을 내지 않고 있는 셈이다. 재국 씨가 검찰에 출두할 당시엔 1672억 원의 추징금이 있었다. 전 씨 일가가 자진납부 계획을 밝힌 뒤에도 불과 522억 원만 거뒀다는 얘기다.
이는 전 씨 재산 중 미술품 등은 잘 팔렸지만 부동산 매각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 부동산은 전 씨 측 추산보다 낮은 시세로 형성돼 모두 팔린다 하더라도 추징금이 완납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전 씨의 추징금 완납은) 검찰도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 등이 변동이 생겼다. 전 씨가 냈던 계획서에 따라 재산을 모두 처분한다 하더라도 추징금을 다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근 전 씨가 펴낸 회고록 인세 수익을 국고로 환수하는 방안, 또 재만 씨가 유흥업소 여성에게 사준 고가의 시계를 추징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 법적 검토 중이다. 2013년 통과된 전두환 추징법에 따라 공무원이 아닌 가족 등 제3자의 재산도 환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범죄 수익인 것이 확인됐을 경우에 한해서다. 회고록 인세나 시계가 범죄 수익으로 발생했는지를 검찰이 규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검찰은 물론 여권 핵심부 주변에서는 전 씨 추징금을 보다 적극적인 수단으로 거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 친문 의원은 사석에서 기자와 만나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최우선 기치로 내걸었다. 군사 정권에서 맞서 싸웠던 사람들이 현 정권 주류 세력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 전 씨 추징금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다”면서 “이는 대통령 의지가 중요한데, 문 대통령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식으로든 조치들이 취해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 정권 실세들도 그동안 전 씨 추징금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 제기를 했었다. ‘청문회 스타’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5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만 씨 고가 시계 사건을 언급하며 “적폐 청산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글을 올렸다. 전병헌 정무수석은 2013년 민주당 원내대표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불법은닉 의혹 재산이 9334억 원에 달한다”며 추징금 징수를 촉구하기도 했다. 추징금 환수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의 수장 윤석열 지검장은 서울대 법대 학생이던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과 관련한 모의재판에 당시 대통령 전 씨에게 사형을 구형, 강원도로 도피했던 인물이다.
물론, 전 씨 측은 “2013년 자진납부 계획서를 냈다”는 입장이다. 추징금 완납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다 했다는 얘기다. 전 씨와 가깝게 지내는 한 사업가는 “내야 할 추징금보다 더 상회하는 수준에서 재산 목록을 작성,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도 추징금을 다 받을 수 있다고 언론에 자랑하듯 발표하지 않았나. 그걸 처리하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그런데 또 전 씨 재산이 문제가 되는 것은 여론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서 사정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 정권은 2013년 전 씨가 냈다는 자진납부 계획서 자체가 오류 투성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애초부터 껍데기나 다름없는 부동산도 포함돼 있다는 정황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적극적으로 추징금을 거두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제기된 상황이다. 지금과는 달리 더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 추징금을 모두 거둘 채비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 씨 추징금 전액을 거두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친문 진영에서는 전 씨 은닉 재산에 대한 추적을 재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압수목록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진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연희동 자택에 대해서까지도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현 정권의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추징금 완납이야말로 대표적인 적폐 청산이다. 이를 청와대 쪽에도 전달했다. 국민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전재만 연루 텐프로 문 닫은 이유? 대선 앞두고 단골 ‘뚝’ 전두환 씨 삼남 재만 씨로부터 고가의 시계를 선물받은 것으로 알려진 여성은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술집 A에서 일했다. A는 최고급 룸살롱, 속칭 ‘텐프로’다. A는 강남 텐프로 중에서도 최상위급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무하는 여성들 외모가 출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A에서 성인 남성 3명이 양주 한 병을 마신다고 했을 때 술값은 대략 400만 원 수준이다. 일반 직장인들은 엄두도 내기 힘든 가격이다. 사업가, 전문직, 대기업 임원, 정치권 인사 등 돈에 구애받지 않는 유력 인사들이 주로 드나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벌 일가 중에서도 단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재만 씨의 경우 한국에 올 때 가끔 들렀다고 한다. A의 한 전직 마담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하루 술값이 직장인 한 달 봉급보다 더 많다. 웬만큼 돈을 벌어선 오기 힘든 곳이다. 여기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업계 톱클래스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나 사업가가 주를 이루고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가끔 온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들도 있는데 대부분 접대를 받는 자리로 보였다”라고 귀띔했다. 그런데 A는 4월 말경부터 영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만 씨 시계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기 한 달 전 무렵이다. 앞서의 전직 마담은 “올해 들어 실적이 다소 부진했던 것으로 안다. 그러더니 아예 문을 닫았다. 업종을 변경하는 것인지,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전했다.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선 A의 영업 중단이 대선과 관련 있을 것이란 말도 돌아 관심을 모은다. 대선 기간, 그리고 새로운 정권 출범을 앞두고 이곳을 찾던 인사들이 발길을 끊어 가게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강남 일대에선 지난 대선 때 아예 문을 닫고 리모델링을 하는 고급 술집들이 서너 군데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텐프로의 한 마담은 “김영란법 이후 고급 룸살롱 실적이 떨어졌다. 그러다가 대선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다. 원래부터 정권 초엔 손님들이 몸을 사려서 그런지 장사가 잘 되지 않는 편이다. 기업 임원들이나 공무원 등은 물론 전문직들도 잘 오지 않는다. 이번 문재인 정부에선 특히 그런 경향이 있다. 이번 기회에 아예 가격을 낮춘 술집으로 변경하는 텐프로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A도 그렇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