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원’을 자처하는 영화 ‘불한당’의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불한당’ 팸플릿과 영화 소품.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이들이 그토록 아쉬움을 토로하는 영화 <불한당>은 상반기 최대 기대작 가운데 하나로 지난 5월 17일 개봉했다. 범죄조직의 1인자를 꿈꾸는 재호(설경구 분)와 패기 넘치는 신입 현수(임시완 분)가 이끌어가는 <불한당>은 단순히 설경구, 임시완이라는 투톱 배우의 이름값으로만 눈길을 끈 것은 아니다. 숨 막히는 액션 사이에 이 두 배우가 보여주는 ‘퀴어 로맨스(동성애)’가 20~30대 여성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더 큰 관심을 낳았다. 여기에 지난달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도 상영돼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불한당>이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승승장구를 예상했던 <불한당>의 흥행가도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개봉 후 이틀 만의 일이었다. 변성현 감독이 자신의 트위터에 여성 혐오적인 글을 올렸으며 극우사이트인 일간베스트에서 사용하는 말을 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확산된 것. 특히 지난 19대 대선에서 변 감독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한 글까지 발견되면서 변 감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변 감독은 곧바로 공개 사과를 하고 트위터를 비공개로 전환했지만 이미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영화를 관람하지 말자”는 보이콧 분위기가 팽배한 상태였다. 이후에 변 감독의 일부 발언이 오해의 소지가 있어 왜곡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보이콧을 주장한 사람들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실제로 논란이 발생한 개봉 2주차부터 <불한당>의 관객 수는 꾸준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뒷심을 발휘해야 할 3주차 성적은 더욱 좋이 않았다. 결국 지난 6월 5일 기준 누적 관객 수는 91만 2738명으로 처참한 흥행 실패를 기록했다.
이에 이미 <불한당>을 관람했던 팬인 ‘불한당원’들이 재상영회를 통해 꺼진 불씨를 되살리는 데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재상영회에 참여할 인원을 모아 서울, 경기, 지방 주요 도시에서 상영관을 확보해 상영회를 개최하는 식이다. 보통 상영관 한 곳을 대관하는 데 최소 150명 이상의 관객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미 <불한당>을 수차례 관람했어도 재상영회를 위해 다시 돈을 모금한 팬들도 많다. 이들의 재상영회는 ‘불한당원의, 불한당원에 의한, 불한당원을 위한’ 이벤트인 만큼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팬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주가 돼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불한당원들의 단체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화와 관련된 각종 이벤트를 직접 꾸리고, 영화 관련 소품을 제작해 나눠주는가 하면, 배우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인 소규모 ‘GV(Guest Visit)’를 마련해 진행하기도 했다. 여기에 설경구 등 주연 배우들은 물론 조연 배우들까지 참여 의사를 밝혀 팬들의 사랑에 화답했다.
<불한당> 제작 관계자는 “1년이 넘도록 고생했던 작품이 개봉 초반에 구설수에 올라 극장에서 금방 내려가고 평점 테러를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만든 사람 입장에서 너무 속상하고 허무했다”라며 “하지만 이렇게 지금까지 영화를 좋아해 주시고 유례없는 팬덤의 사랑으로 생기는 여러 가지 이벤트들을 보면서 너무 뿌듯했다”고 말했다.
기존에도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팬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그에 보답한 영화들은 많았다. 2015년 개봉한 <무뢰한>의 팬덤 ‘무뢰한당’, 지난해 개봉한 <아수라>의 ‘아수리언’ 등의 경우다. 그러나 이번 <불한당>처럼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팬덤이 단체 행동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제작사는 물론 배우들 역시 이들의 행보를 눈여겨보고 직접 제작한 영화 관련 상품 등을 전달하거나 커뮤니티를 통해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6월 16일 현재 ‘불한당원’들 사이에서 총대들의 횡령, 대포통장 이용 등 문제가 불거져 논란을 낳았다. 디시인사이드 ‘영화 불한당 갤러리’ 캡처.
그러나 새로운 바람에는 늘 한두 가지 불순물이 끼이기 마련이다. 수백 명의 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른바 ‘총대’라는 진행자 서너 명을 끼고 수백만 원 상당의 돈이 오고가는 이벤트를 열다 보니 잡음도 많다. 최근 불한당원들 내에서는 재상영회를 추진했던 한 총대가 모금액 가운데 일부를 횡령한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당사자가 이를 인정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또 팬들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불한당> 제작진들이 팬들에게 건네주려 한 대본집과 시나리오 북을 일부 총대들이 독식하는 일이 발생해 논란을 일기도 했다. 분노한 불한당원들은 일부 범죄 혐의점이 있는 총대들을 고소할 의사까지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불한당원은 “아무래도 체계적으로 조직이 짜이지 않고 영화를 좋아하는 개인 팬들만이 모인 자리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다”라며 “안 그래도 노력에 비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팬들도 지쳐 있다가 겨우 힘을 내고 있는 마당에 불미스러운 일이 불거져 제작진들에게 더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