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극 부른 10대 자퇴생과 고교생
지난해 11월 24일 오후 6시쯤 B 양은 친구 4명과 함께 충남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에 위치한 같은 학교 친구의 자취방에서 술을 마셨다. 수능이 끝나고 옹기종기 모인 5명은 오후 9시쯤 취기를 느끼자 근처 코인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B 양은 이때쯤 취했다.
노래방에서 자리를 파한 뒤에도 B 양의 취기는 계속됐다. 오후 9시 40분쯤으로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집으로 갈 정신이 없었던 B 양은 노래방 1층 근처에서 비틀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10대 6명이 중형차 2대를 나눠 타고 노래방 앞으로 왔다.
하루 전 B 양과 술을 마시며 얼굴을 텄던 자퇴생 A 씨와 그의 친구들이었다. A 씨는 B 양을 알아본 지인에게서 “B 양이 취한 채 코인노래방 근처에서 비틀거리고 있다”는 걸 전해 들은 뒤 노래방 근처로 왔다. B 양이 어떻게 차를 탔는지는 진술이 엇갈린다. B 양은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진해서 타진 않았다”고 했다. A 씨의 측근은 “블랙박스에서 ‘야 탈래?’라는 피의자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A 씨는 친구가 운행하는 차 안에서 B 양을 몇 차례 추행한 뒤 중간에서 내렸다. B 양은 순식간에 취한 상태로 생판 모르는 남자 5명과 함께 차를 탄 신세가 됐다. 5명 가운데 3명은 예당저수지와 예산공설운동장 등을 돌며 B 양을 수차례 강간했다. 2명은 망을 보거나 추행을 했다고 알려졌다. 이튿날 오전 2시쯤까지 약 4시간가량 B 양은 차에서 당했다.
여고생 집단 강간 사건이 벌어진 충남 예산 예당저수지 전경. 사진출처=예산군청
B 양이 정신을 차린 곳은 친구의 자취방 근처 길가였다. 자신을 찾으러 온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 자취방으로 이동했다. B 양은 드문드문 기억나는 내용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B 양의 친구는 심증이 가는 예산 지역 또래 남자들에게 연락을 돌려 “너희가 한 거 다 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신고하겠다”며 B 양과 함께 있었는지를 떠봤다.
범인이 밝혀졌다. 가해자 가운데 1명이 사건 전부를 이야기했다. 무려 6명이었다. B 양과 친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들으려 사건 하루 뒤인 지난해 11월 25일 오후 늦게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의 한 공터에서 가해자 6명을 만났다. 가해자 6명은 B 양을 보자마자 “신고를 하지 말아 달라”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B 양은 6명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샅샅이 말하라”고 외쳤다. 6명이 지난 밤에 있었던 일을 말했지만 B 양은 각각의 말이 앞뒤가 다른 걸 느꼈다. 바로 블랙박스를 요구했다. 몇 시간 뒤 블랙박스가 B 양의 손으로 들어왔다.
블랙박스는 충격이었다. 일부가 잘려 있었지만 여러 흔적이 들렸다. 6명이 블랙박스를 주기 전 주장했던 내용과 다른 부분이 나왔다. 갔던 곳도 달랐고 축소해서 말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취한 상태에서 대답을 등 떼밀리면 “으… 응”이라고 말하는 자신에게 끊임 없이 “좋았어?”, “다음에 또 해도 돼?”라고 묻는 남자의 목소리에 B 양을 치를 떨었다.
6명은 사태가 심각해지는 걸 느꼈다. B 양이 화장실 간 사이 6명은 B 양의 친구에게 “어떻게 해줘야 신고를 하지 않겠냐? 합의금 500만 원을 주고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며 B 양을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B 양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탓이다.
집을 나온 상태였고 신고해서 자신이 사는 홍성까지 소문이 퍼지면 ‘왜 술을 마셔서 그럴 상황을 만들었냐. 당할 짓 했네’라고 돌아올 따가운 시선이 두려웠다. B 양은 부부싸움 중 집안 집기를 집어 던지는 아빠에게 “그만 하라”고 했다가 심하게 구타를 당해 사건 일어나기 일주일 전쯤부터 예산의 친구 자취방에서 머무는 상태였다. 아빠와 불화 때문에 안 좋아진 가족 관계가 더욱 악화되리라는 생각뿐이었다. 무릎 꿇은 6명에게 각각 따귀를 날린 B 양은 결국 합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6명은 합의금을 내놓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며 지난 1월까지 버텼다. B 양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돈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과의 약속을 우습게 본 가해자가 혐오스러웠다. 6명은 게다가 “부모님 모시고 합의서를 쓰자”고 했다. B 양은 그것조차 한 발 양보했다. 부모에게 알릴 수 없었던 B 양은 자신의 친오빠에게 “합의서를 작성하는데 도와달라”고 말했다. 오빠는 이 사실을 부모에게 바로 알렸다. B 양의 부모는 그 즉시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 “합의 원치 않는다…강력하게 처벌해 달라”는 딸 몰래 합의금 받아 챙긴 부모
지난 1월 17일 오전 B 양의 엄마는 충남 홍성경찰서에 6명을 고소했다. 홍성경찰서는 간략하게 1차를 마친 뒤 사건 발생지 관할인 예산경찰서로 사건을 이첩했다. 예산경찰서는 지난 2월 21일 강간을 모의하고 주도한 혐의로 A 씨를 포함 자퇴생 2명과 고교생 2명 등 총 4명을 구속했고 망을 보거나 강간을 방조한 혐의로 자퇴생 1명과 고교생 1명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피의자 6명은 4000만 원을 만들어 와 합의금으로 B 양 부모에게 제시했다. 부모는 이 돈을 받았다.
지난 2월 27일 이 사건은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으로 송치됐다. B 양은 검찰에서 추가 조사를 받던 가운데 부모가 몰래 합의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 전까지 부모에게 “가해자 부모가 찾아와서 백날 울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써달라고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B 양은 “절대 합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앞서 밝힌 바 있었다.
B 양은 합의를 원치 않았다. 사건 직후 가해자들의 500만 원 합의를 수락했던 건 합의금을 받고 사건을 무마해주겠다는 의도가 아니었다. 합의금과 무관하게 부모에게 강간당한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관계가 더 악화되리라 생각해서 신고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따귀를 때린 뒤 혼자 모든 걸 감내하려던 찰나 그쪽에서 그냥 제시한 500만 원을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검찰 조사를 받던 B 양은 “합의서를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담당 검사에게 밝혔다. 하지만 합의서는 취소되지 않았다. 합의금을 다시 가해자 쪽에 되돌려줘야 했는데 부모가 합의금을 그새 다 써버렸던 탓이다. 부모를 신고할 순 없었다. 합의서는 온전히 법정까지 올라갔다.
아빠는 또 다시 B 양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가해자 1명의 아빠가 계속 찾아오자 B 양의 아빠는 B 양에게 가해자 아빠를 만나도록 했다. 만남에서 B 양의 눈앞에는 종이 뭉치가 펼쳐졌다. 탄원서와 처벌불원서였다. B 양은 서명할 수 없었다. “가해자를 감형해 달라”는 종이 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싫었다. B 양의 아빠는 계속 B 양에게 탄원서 등을 쓰라고 종용했다. B 양은 끝까지 버텼다. 그날 이후 B 양은 아빠와 인연을 끊었다.
# “냄새 나는 X, 걸레, 공용주차장” 계속 되는 2차 피해에 고통 받는 피해자
지난 3월 B 양은 대학생이 됐다. 상처는 쉬 사라지지 않았다. 이상한 이야기가 돌았던 탓이다. “제 발로 차에 탔다. 돈 주면 신고 안 한다고 협박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던 6월 B 양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검찰 쪽 구형 결과였다. 가해자 전원에게 징역 3년에서 8년 구형이 떨어졌다. 검찰은 A 씨 등 강간에 적극 가담한 3명에게 5년에서 8년 징역을, 방조한 2명도 각각 3년에서 5년 징역을 구형했다. 6월 22일 1심 1심 판결이 있을 예정이다. 자신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기분이었다.
B 양은 글을 하나 남겼다. 지난 9일 B 양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8년 잘 썩다 와라. 조만간 면회 갈게. 인생은 실전”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을 본 A 씨의 친구들은 가해자를 옹호하고 B 양을 에둘러 비난하기 시작했다. 교묘했다. 누구라고 특정하지 않았지만 주위 사람이 보면 다 알 수 있는 식으로 적었다. 인근 학교 학생과 졸업생, 지역 고교 자퇴생 등 A 씨의 측근들은 똘똘 뭉쳤다.
B 양은 소위 말하는 조리돌림을 당했다. A 씨의 한 친구가 B 양을 암시하는 글을 쓰자 “X나 패”, “입을 뜯어야 해”, “미친 X라이 년”, “죽이고 싶다”, “머리통 깬다”, “냄새 나는 년들”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한 여자는 “요새 뭐만 하면 신고당한다. 누군가가 개념 없는 말을 내뱉어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글을 썼다. 이에 항의하는 B 양에게 그는 “왈왈! 난 걸레만 보면 짖는 개. 술 먹고 거기 간수 잘 하고. 네 거기 거쳐간 놈이 몇 인데 강간이라니 웃고 간다. 공용주차장 함께 즐겨요”라고 답했다.
B 양과 그의 친구들은 조롱 글을 올린 몇몇 사람에게 따져 물었다. A 씨를 옹호하던 한 여자의 답변에 B 양은 할 말을 잃었다. “잘못한 사람은 질타만 받아야 된다는 법 있나? 잘못한 사람을 질타하는 사람도 있으면 감싸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도 있다. 죄인도 인권이 있는 건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아는 이야기다. 몇 년 동안 정이 있고 친했던 사람 말을 더 믿고 이해해 줘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오빠들인지 내가 다 아니까 감싸주는 거다.”
취재하며 만났던 B 양은 취재가 끝나갈 무렵 한마디를 던졌다. “제가 집 나왔던 여고생이었다는 것도 써주세요. 아빠랑 연을 끊은 이야기도요. 제 모든 상황 역시 객관적으로 낱낱이 써야 해요.” 왜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일부만 쓰면 걔네들 또 그럴 거거든요. 기자에게 쪼르르 달려가 ‘자기 유리한 이야기만 했다’고. 다 써주세요. 그래야 사람들이 제대로 판단하죠.”
예산 지역 고교생 복수 이상을 취재한 결과 B 양과 비슷하게 집단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최소 4명 이상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강간당한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 가해자들은 고교생과 자퇴생 등으로 뭉친 이 지역 10대 집단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기관 위탁 등 제동장치 필요” 계속되는 부모의 합의금 가로채기 2004년 밀양과 2014년 한 광역시, 2016년 예산에서 벌어진 고교생 집단 강간 사건의 공통점은 바로 부모의 합의금 가로 채기다. 모두 부모가 합의금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의 심신 회복 목적으로 사용돼야 했지만 제동 장치는 없었다. 피해자의 의사에 맞게 합의금이 사용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미국의 쿠건법이 힌트가 될 수 있다. <정치하지 마라>의 저자 임형찬 작가는 “쿠건법에 따라 아동 연기자는 성년이 될 때까지 변호사 등 부모 외 따로 ‘후견인’이 지명된다. 아동 연기자가 벌어들인 수입 중 일부만 부모에게 귀속되고 나머지는 성년이 될 때까지 위탁 관리된다”며 “이 법이 힌트가 될 수 있다. 미성년자의 성폭력 사건은 사후 관리 문제가 크다. 합의금 혹은 피해배상금을 전액 부모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당부분을 기관에 위탁해서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건법(Coogan Act : California Child Actor‘s Bill)은 1921년 찰리 채플린 감독 영화 <더 키드>에 출연한 아역 배우 재키 쿠건의 이름을 딴 법이다. 당시 4살이었던 쿠건은 일약 스타가 돼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부모의 갈등과 낭비로 모두 탕진됐다. 1939년 미국에서 쿠건법이 제정됐다. 아역 배우의 수입은 신탁 관리 아래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된다. 부모는 자녀의 양육권만 가진다. 자녀의 수입을 임의대로 사용할 수 없다. 미성년 자녀의 근로소득도 독립된 개인의 수입으로 간주된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