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인천공항을 방문해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국회사진취재단
김포공항을 포함해 전국 14개의 공항을 관리하고 있는 한국공항공사가 지난 4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성일환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좋은 일자리 만들기 TF팀의 주축이 돼 협력사 직원 4154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 공공비정규직노조 서울경기지부는 인천공항공사가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한 지난달부터 사측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이에 한국공항공사는 계약관계, 해당 분야 업무 특성 및 근로형태 등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얼마 안 돼 노사 간의 잡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노조는 정규직 전환 입장뿐만 아니라 불합리를 막기 위해 노사 간 공동추진 협의기구를 제안했지만 이에 대한 어떤 답변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공사 내부에서는 성 사장이 독단적으로 TF팀을 구성해서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실무진들의 불만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감사원의 감사 결과 한국공항공사는 지난해 청소, 카트 수거 용역계약을 위해 예정가격을 제기하면서 당시 기준으로 시중노임단가보다 30만 원 낮은 기본급을 제시하는 등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 등을 위반했음이 드러나 주의요구를 받았다.
정규직 전환에 있어서 노사 간의 협의가 전제되지 않는 것은 인천공항공사도 마찬가지였다. 인천공항공사는 정규직 전환을 위한 TF팀을 만들고 나서 앞으로 계속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가 처음 제안한 것은 정규직 전환 방안을 위한 공동연구였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에서 TF팀을 만들고 난 뒤 노조는 제대로 된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을 위한 대책회의를 만들었고 여기에는 조합원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 임원들과 자문단이 포함돼 있다”며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는 성실한 노사 간 대화, 당사자인 비정규직 대표의 참여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사 측에서 노조의 제안을 배제한 채 7억 원 규모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연구용역 입찰 공고를 냈다. 노조 측 대책회의에서는 비용을 절감하고 정보 공유를 통해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공동연구를 제안했지만 이에 대한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공사 측이 발주한 연구용역의 주요 내용은 인천공항 운영 및 관리 업무 기능과 직무별 현황 진단, 정규직 전환 방향 및 중장기 조직발전 방안, 직고용을 통한 정규직 전환 세부 실행방안,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 세부 실행방안 등 현장 노동자들의 고용, 업무, 임금 등 핵심 사안이 포함돼 있다.
이에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단독으로 입찰 공고를 낸 것은 맞지만 이미 네 번에 걸쳐 협력사 노조 등과 면담을 진행했고 계속해서 정규직 전환 대상자와 협력을 할 것”이라며 “7월 말까지 실행 계획을 수립해 연구용역을 통해 검토하고 8월 이후에는 정규직화 실행을 시작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제 시작을 하는 단계인데 벌써부터 일방적으로 입찰을 진행하고 있어 노사간 소통이 안 되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또 다른 노조원들은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백인 상황이라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정책 추진이 더디다고 들었다”며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다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공사 내에서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이미 공사의 계획대로 정규직 전환된 폭발물 처리반 직원들은 얼마 전에 이미 정규직으로 전환이 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앞으로 있을 정규직 전환과는 무관해진 상태. 이들은 정규직으로 우선전환이 됐지만 절차와 연봉에 문제가 제기돼 왔다. 폭발물 협력업체 직원 중 14명은 공개경쟁방식으로 정규직으로 채용됐고 나머지 네 명은 탈락해 실직자가 됐다. 이들은 인적성 검사와 토론 면접 등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합격해 정규직이 전환된 이들은 앞으로 고졸 신입 4~5년차 직위가 받는 연봉을 받게 돼 비용절감을 위한 정규직화라는 비난도 거세졌다.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시기는 문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한 이후였다. 그러나 이는 문 대통령의 발언과는 무관하게 인천공항에서 애초 갖고 있던 정규직 전환 계획을 시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많은 비정규직이 양산됐던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2014년 인력운영구조 개선방안 연구용역을 실시해 대테러 상황통제, 폭발물처리 분야 79명을 직고용하기로 한 바 있다.
인천공항은 “보안역량 강화를 위해 유관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과 경험이 검증된 인재의 채용을 장려하고자 공개채용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라 해명했지만 전국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에서는 “돋보이는 직군을 먼저 정규직 전환해 언론 보도로 이어지게 한 것은 생색내기로 보인다”며 “정상적인 정규직 전환 절차가 아니라 공채로 진행한 것도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개 사측과 노조는 정규직 전환 방식에 대해 입장 차를 갖고 있다. 사측에서는 자회사를 만들어 고용하거나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노조 측은 기존 공사 정규직과 같은 직제로 직접 고용하는 방식을 요구한다. 이번 경우 정규직과 같은 직제로 고용하는 방법이었지만 공개경쟁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편 문 대통령의 인천공항공사 방문을 계기로 각계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을 갈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자체와 국립대병원 등 공공부문에 소속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책 기조에 맞춰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