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팀 감독 후보, 허정무의 진심은?
“오늘은 기자들 전화 안 받으려 했는데 이 기자 전화는 외면 못하겠네.” 허정무 부총재의 목소리는 경쾌했고 아주 밝았다. 목적이 분명한 전화였기 때문에 간단히 안부 인사만 나누고 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어떻게 되는 겁니까?
“허허, 뭐가 어떻게 돼요. 나도 모르는 일인데.”
―협회에서 (대표팀 감독직) 제안이 들어오면 맡으실 건가요?
“지금 대표팀은 절체절명의 위기예요. 축구계 전체가 다 도와야 한다고. 그런 상황에서 감독직 제안이 오는 걸 피하면 안 되는 거죠. 피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건 나 외의 다른 감독한테 그 제안이 가도 마찬가지예요. 한국 축구를 위해 희생을 각오하고 맡아야 해요. 난 그런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받아들이려 합니다.”
―즉 제안이 오면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죠?
“내가 말했잖아요. 어떤 선택을 하던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한다고. 비난과 비판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봐요. 오히려 도전을 즐겨야 하죠. 만약 협회에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성심성의껏 도우려 합니다.”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축구대표팀 감독 제안이 들어오면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죠. 누가 맡아서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사명감, 책임감을 갖고 대표팀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해요. 한국 축구라는 큰 틀에서 생각하고 싶네요.”
―일부에선 남은 2경기보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젊은 지도자를 영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여기서 젊고 안 젊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올인할 수 있는 지도자가 누구냐는 겁니다. 2경기 성적에 따라 본선 진출을 할 수도 있는데 그걸 버리고 그 다음의 한국 축구를 위한다고? 그건 좀 납득하기 어렵네요.”
―현재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정신력이나 책임감 부족에 대한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기하는 걸 보면 그런 면도 눈에 띄어요. 안타깝죠.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고.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허정무 부총재와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그는 “내가 자꾸 말을 이어가면 이상한 오해만 쌓일 수 있으니까 여기서 그만 멈추는 게 맞다”며 왜곡되지 않는 기사를 부탁하기도 했다.
허 부총재가 대표팀 차기 감독 후보로 급부상한 데에는 이용수 축구협회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 이용수 부회장은 15일 기술위원장직에서 물러나며 “개인적으로 차기 사령탑은 지금 상황에서 국내 지도자가 맡아야 한다. 다음 감독은 앞으로 치를 최종예선 2경기를 포함해 러시아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 책임질 수 있게끔 역할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여기까진 일반적인 내용이다. 기술위원장으로서 한국대표팀을 위한 진심어린 조언으로 받아들일 만했다.
문제는 다음의 내용이었다. 이 부회장은 다시 개인 의견임을 강조하며 “차기 감독에게 위기관리 능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치열한 경험을 해 본 감독이 어려움에 빠진 대표팀을 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이 부회장의 이 발언으로 축구계와 미디어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 조건에 충족할 만한 인물은 허정무 부총재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는 신태용 U-20 월드컵 대표팀 전 감독, 최용수 전 장쑤 쑤닝 감독은 월드컵 최종 예선을 이끈 경험이 없다. 이 부회장의 조건으론 모두 자격 미달이다. 여론은 두 가지였다. 기술위원장에서 물러나는 이용수 부회장이 감독 선임을 두고 미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의견과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는 사람이 하는 말 치곤 선을 넘었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은 모두 허정무 부총재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흥미로운 것은 허 부총재도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 인터뷰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허 부총재는 “축구협회로부터 공식 제안이 들어오면 피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 허정무는 이미 차기 감독으로 내정됐다?
슈틸리케 감독이 2015년 1월 아시안컵 준우승을 거두고 그해 8월 동아시안컵 대회 우승과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 8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할 때만 해도 그의 별명은 ‘갓틸리케’였다. 그러나 이후 기대 이하의 경기력과 실망스런 성적이 이어지면서 여론은 차갑게 돌아섰고 ‘갓틸리케’는 ‘수틸리케’로 변모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축구계에선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 여론이 확산됐었다. 그때 협회는 절치부심 끝에 슈틸리케 감독을 재신임하며 새 출발을 다짐했지만 지난 카타르 원정 경기를 통해 급기야 곪았던 부분이 터지고 만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축구인 A 씨는 처음 슈틸리케 감독 경질 여론이 불거졌을 때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허정무 부총재에게 SOS를 친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협회에선 이미 슈틸리케 감독으로 대표팀을 끌고 가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그때 허 부총재에게 감독직을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걸 튼 사람이 축구 고위 관계자였다. 강하게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대표팀 분위기 전환을 고민하던 이용수 부회장이 마지막 카드로 내민 게 정해성 전 감독을 수석코치로 발탁한 것이었다.”
A 씨는 이용수 부회장이 당시 허정무 부총재를 찾은 데에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허정무 부총재가 차기 감독으로 선임되는데 부정적인 여론도 있지만 대표팀 현실을 직시한 축구인이라면 지금 상황에서 허 부총재 외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란과 우즈베키스탄과의 2경기에서 승점을 챙겨야 본선 진출이 가능한 상황에서 이걸 해낼 지도자는 월드컵 무대를 경험한 허 부총재다. 이걸 알기 때문에 이용수 부회장이 기술위원장직에서 물러나며 월드컵 예선전을 경험한 지도자라고 가이드라인을 미리 밝힌 것이다.”
일부에서는 허정무 감독 + 정해성 코치 조합에 대한 기대가 나오고 있다.
축구인 B 씨는 좀 더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허정무 부총재가 5년간 현장에서 물러나 있었다는 걸 단점으로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전 남아공 월드컵 때처럼 허정무 감독과 정해성 코치 조합이 다시 나오는 것도 하나의 카드가 될 것이다. 허정무-정해성 조합은 바늘과 실의 관계이다. 정 코치도 허 부총재가 대표팀을 맡는다면 수석코치 자리를 마다할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마평에 오르는 신태용, 최용수 전 감독은 어떨까. B 씨의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신태용 감독은 내년 23세 이하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맡을 거라는 얘기가 있다. 지금까지 감독 자리에 주로 ‘소방수’로 투입된 이력을 갖고 있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다투는 2경기를 맡는 건 신 감독도 꽤 부담스러울 것이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8강 진출에 실패하며 비난 여론이 높았는데 말 그대로 ‘독이 든 성배’를 들이마실 만큼 신 감독의 머리가 나쁘진 않다.”
신태용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계획을 묻는 질문에 “주지도 않는 자리를 놓고 미리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여유를 갖고 쉬면서 일이 닥치면 그때 생각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최용수 전 감독은 FC 서울을 이끌 때 선수들을 장악했던 ‘형님 리더십’을 높이 평가받지만 중국에서 성적 부진으로 하차했고, 대표팀 지도자 경험이 전무하다는 게 단점으로 거론된다.
다시 축구인 A 씨의 얘기.
“남은 두 경기에는 상대팀이 긴장할 만한 리더가 나와야 한다. 듣도 보도 못한 감독이 아닌 이름만 들어도 긴장할 수 있는 리더여야 한다. 대표팀 선수들에게 끌려가는 게 아니라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현재 언론마다 ‘1+1’ ‘1+2’ 조합을 내세우며 다양한 시나리오를 양산해내고 있다. 허정무+정해성, 허정무+정해성+신태용, 허정무+신태용+최용수 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과연?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끼리끼리에 일침…원팀 압박 메시지” 기성용 발언 진짜 이유는? 지난 1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축구대표팀의 기성용은 작심한 듯 “축구라는 게 잘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2경기가 더 남았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앞으로 남은 2경기는 선수들이 헤쳐 나가야 한다. 선수들이 얼마나 잘해야 하는지 다시 반성하고 되돌아봐야 한다”며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물론 감독 경질에 대한 얘기도 전했지만 기자의 귀에는 주장 기성용의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그 무렵 대표팀에 출전했던 한 선수의 측근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대표팀이 원팀보다는 친한 선수들끼리 몰려다니는 분위기라고 들었다. 끼리끼리 문화가 형성되다 보니 미묘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고, 이런 일들이 대표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기성용의 발언은 이전처럼 원팀으로 뭉치지 못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축구하지 않는 일부 선수들을 향한 얘기일 수도 있다.” 결혼 후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기성용은 28세의 나이임에도 고참급에 속한다. 결혼 후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이며 모범적인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기성용은 오랜 대표팀 경험을 통해 태극마크의 소중함을 배우고 절감하며 성장했다. 대표팀이 소집될 때마다 주장 완장을 차고 선수들을 이끌었던 그는 대표팀에서 박지성, 이영표으로부터 책임감, 사명감을 배웠다. 그러나 일부 후배들 중에는 기성용과 다른 생각을 갖고 대표팀에 들어오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이전에는 몸이 아파도 참고 뛰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요즘 애들은 조금만 아파도 경기 당일 못 뛰겠다고 드러눕는다고 한다. 뼈가 부러지지 않는 한 베스트 11에 뽑히면 그대로 뛰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몸을 아끼려는지 주저 없이 경기에서 빼달라고 요구한다고 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선배들로선 당황할 수가 없다.” 결과가 안 좋으면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들리기 마련이다. 축구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이란과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선 더 이상 사명감, 책임감이란 진부한 단어가 등장하지 않아야 한다. 끼리끼리가 아닌 하나로 뭉쳐야 한다. 그래야 러시아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