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반적으로 ‘조각’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면 ‘조소’다. 조각은 깎고, 소조는 붙여서 입체 형상을 만드는 방법이다.
조소는 비우거나 채우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가장 잘 담아내는 예술 형식이다. 즉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것을 버리려는 욕구에서 조각이, 비어 있는 곳에다 무언가를 채우려는 욕구에서 소조가 시작됐다. 비단 조소뿐만 아니라 인간이 창조한 모든 예술은 이런 본능적 표현 욕구를 담고 있다.
좀 더 쉽게 풀어보자.
Woodman Montage Series: 130.3x130.3cm, 캔버스에 아크릴, 2016년.
얼굴에 무언가 묻으면 정상적인 생각과 감각이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지우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멋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다가 스파게티 소스가 옷에 묻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닦으려고 한다. 심지어 기분이 상하고 음식 맛을 잃기까지 한다. 왜 그럴까. 필요 없다고 여기는 곳에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애버려야 마음이 안정된다. 이를 ‘배제 본능’이라고 한다. 조각은 이런 본능을 반영한 예술 형식이다. 그래서 조각가들은 커다란 바위덩이를 보면서 작품을 구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낸다.
불국사를 창건했다는 김대성이 거대한 화강암 바위 안에 갇혀 있는 부처님을 발견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내 석굴암 본존불을 만들었다는 얘기나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속에 파묻혀 있던 형상을 꺼낸 것이 위대한 걸작 다비드 상이었다는 일화는 사실이 아닐지라도 설득력을 준다.
반대로 새로 장만한 집으로 이사하면 가장 먼저 빈 방에 가구나 물건을 어떻게 배치할지 구상하게 된다. 빈 곳에 무언가를 배치해야만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구축 본능’이라 하며, 소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구축 본능의 가장 완벽한 형태로는 이집트 피라미드가 꼽힌다.
권민정의 회화작업은 배제 본능에서 출발한다. 그는 우리 주변의 흔한 물건에서 이미지를 발견하는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조각가가 무심히 보이는 바위에서 형상을 찾아내듯 그는 나이테가 박힌 가공된 나무에서 사람의 다양한 포즈를 포착한다. 이렇게 채집한 형상을 엮어 다양한 인간 군상으로 표현한다.
Woodman Wearing Blue Jeans: 160x101.3x23cm, 혼합재료, 2009년.
나무의 자연 문양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발견한 형상들은 권민정 회화를 위한 이미지 조각들이다. 이것들은 그가 구상한 그림에서 주제가 되지만, 때에 따라서는 부제 혹은 일부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주제로 대접받는 그림은 조각에서처럼 배제 본능을 충실히 따른 결과로 얻은 이미지다. 이미지 파편들을 재구성해 회화로 완성하는 경우는 소조의 경우처럼 구축 본능을 따르고 있다. 결국 권민정의 회화는 인간의 상반된 본능에 의한 정서를 담아낸 형식의 결과다.
이런 작업 과정으로 그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예술은 자연 속에 이미 산재돼 있으며, 예술가의 임무는 그것을 발견하는 데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자연에서 채집한 이미지에 조화를 부여하는 일이 작품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