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미술의 핵심은 풍경에 있다. 자연을 주제 삼는 이런 그림을 ‘산수화’라고 불렀다. 이의 역사는 대략 2천여 년에 달한다. 장구한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화가들이 풍경을 그렸다. 주로 먹을 썼기 때문에 스치듯 보면 그 그림이 그 그림 같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백의 흰 종이와 먹의 검은 색이 공간을 구성하며 산과 강, 폭포, 구름, 나무와 바위 등을 그려냈다. 즉 그리지 않고 남긴 부분과 먹으로 채운 부분이 풍경을 연출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음과 양의 조화라고 불렀는데, 예부터 동양 사람들에게는 자연 이치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통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산수화에는 이 같은 생각이 담겨 있다. 단순하게 ‘보이는’ 자연 풍경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음과 양의 조화를 가지고 자연을 해석하려 했던 동양 사상을 담아낸 그림이었다.
박영학이 그려내는 산수풍경도 동양 사상의 자연 해석법을 따르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흔한 경치를 소재로 삼는다. 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산이 있고, 그 사이 언뜻언뜻 보이는 논과 밭, 길과 건물이 있는 보통 풍경이다.
사슴숲 1603: 181x339cm, 장지, 방해말(돌가루), 목탄, 2016년
밝은 색채가 빚어내는 싱싱함, 유려한 선의 리듬, 다양한 문양이 연출하는 장식미와 친숙한 현대 감각. 화려한 축제 한복판에 있는 듯한 유쾌하고도 소란스러운 느낌,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화려한 음율. 이런 것들이 이담의 그림이 선물하는 시각적 사치다. 눈이 즐거워지고 행복한 기운에 젖어들게 만든다. 그래서 미술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다가선다.
그의 회화에는 긍정적 사고를 심어주는 마술적 힘이 보인다. 많은 이들이 이담의 그림에서 행복한 기분을 느낀다고 말한다. 무엇 때문일까.
우선 색채의 힘이다. 그에게 색채는 무엇인가를 설명하거나 묘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순수한 색채는 그 자체로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밝고 화려한 색채는 우리를 능동적인 마음 상태로 이끌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다음으로 이담의 회화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음악적 요소다. 아동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재미있는 형상들이 빚어내는 축제적 음률이 그렇다. 그의 작업에서 음악성은 화면 구성의 핵심이자 이미지의 골격인 긍정의 힘을 결정짓는 요소다.
풍경 너머로 15-03: 200x122cm, 장지, 방해말(돌가루), 목탄, 2015년
회화에서 음악적 요소는 그림을 보는 재미와 함께 시청각적 공감각으로 감상의 입체적 효과를 끌어낸다. 이담도 음악적 요소로 포장한 다양한 형상과 구성으로 동화적 환상미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는 음악성을 회화적 언어로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음악적 요소를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담의 회화에서 보이는 음악적 요소는 행복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일상의 풍경, 사물, 자연, 동물이나 곤충에서 영감을 받아 창출해낸 형상과 이것들로 구성한 초현실적 화면에 음악적 요소를 보태 보는 이들에게 행복한 느낌을 준다. 그게 바로 긍정 메시지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