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전라북도 전주에 사는 고등학생 A 양(17)은 지난달 31일 저녁 친구들과 삼삼오오 PC방으로 향했습니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인터넷 검색이나 지난 방송을 다시보기위해서도 아닙니다. A 양과 친구들은 단지 오는 7월 1일과 2일 열리는 ‘프로듀스 101 시즌2’ 피날레 콘서트 티켓의 성공적인 예매를 위해서였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오후 8시 티켓 예매 사이트를 통해 오픈된 콘서트 티켓은 오픈과 동시에 표가 동났고 접속자 폭주로 서버 또한 순식간에 마비됐습니다. A양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허탈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A 양은 “인터넷 창에 시계창도 띄어 놓고 예매 창도 4~5개 씩 띄어놨지만 무용지물이었다”며 “같이 있던 친구들 중 그 누구도 예매를 성공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A 양이 놀란 건 이뿐만이 아닙니다. 티켓 판매가 완료된 후 30분도 안 돼 중고거래 사이트와 트위터에는 기존 티켓값(7만 7000원)보다 고가의 값으로 암표가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암표로 추정되는 값은 최소 20만원에서 최대 120만원 선.
A 씨는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고가에 팔겠다는 글에다가 ‘이게 무슨 짓이냐’, ‘팬심 이용하지 마라’ 등 글을 남기려 했는데 댓글들이 대부분 사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남기지도 못했다”며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A 양과 같은 일은 경험한 이들의 모습은 티켓 예매가 완료된 지난달 31일 밤부터 정보 교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트위터 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 21일 트위터에 ‘프로듀스 콘서트’를 검색해본 결과, 트위터 상에는 티켓을 양도하겠다는 글과 양도를 원한다는 글이 아직도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프로듀스 101 시즌2’. 사진=CJ E&M 제공
# 어떤 좌석이든 OK! 예매하는 데 걸리는 시간 단 1초
이처럼 콘서트 티켓이 판매 시작과 동시에 다 팔리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선 암표상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자동으로 접속해 결제 및 예매하는 시스템인 ‘매크로’를 사용한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이들은 “주변에서 예매에 성공한 사람이 없다”며 “매크로를 쓰는 전문 암표상들의 대량 매집이 의심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매크로는 마우스나 키보드로 여러 번 순서대로 해야 할 동작을 한 번의 클릭으로 자동 실행시키는 프로그램을 일컫습니다. 사용자가 키보드 입력값과 마우스 클릭 횟수 등을 사전에 입력하고 저장해 작업 시간을 단축하는 것인데요. 원래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도입된 프로그램이지만 현재는 티켓 예매 등에서 편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1초 안에 공연 날짜, 시간, 좌석, 결제 정보 등을 입력해 쉽게 좌석을 선점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국내 한 기업에서 DBA(데이터베이스관리자)로 근무하는 B 씨는 “쉽게 설명해서 예매 사이트를 보면 ‘예매하기’ 버튼 위치가 고정돼 있지 않나. 그 위치를 좌표로 잡고 마우스 위치를 정해주는 함수를 쓰는 방식”이라며 “말로 설명하면 어려울 수 있지만 숙지하면 누구든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매크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한 업자의 개인 블로그를 들어가봤습니다. 이 업자는 ‘좌석을 자동으로 선택해 티켓팅 속도를 올려주는 프로그램’, ‘티켓 구매 시 앞자리를 우선으로 인식하는 프로그램’, ‘암표 몇 배로 비싸게 구매하지 말고 프로그램 한번 사서 평생 티케팅 할 때 마다 사용 가능한 프로그램’이라며 판매 중인 매크로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의 종류도 ‘일반용’부터 ‘고급용’, ‘VIP용’까지 다양했습니다. 특히 ‘VIP용’의 경우, “어떤 좌석 색이든 좌석이 보이면 자동 선택해준다. 실패율 0%다”라고 홍보하며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가격도 그에 따라 달랐는데요. ‘일반용’은 10000원, ‘고급용’은 2만 5000원, ‘VIP용’은 3만 5000원에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이외에 다른 판매업자들과 접촉해본 결과, 매크로 프로그램은 2만~3만원에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 연습 통해 누구든 숙지 가능…‘대리 티케팅’도 기승
이들은 연습을 통해 충분히 매크로를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도 홍보합니다. 한 매크로 판매업자는 “구매하려는 티켓이 오픈되기 전 이미 오픈돼 있거나 상대적으로 예매가 수월한 공연 예매창을 통해 예행연습을 해볼 수 있다”며 “어디에 자리를 잡을지 어디가 사람들이 한 번에 안 가져가는 자리일지 좌석의 열, 알파벳, 번호 전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매크로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이를 이용한 ‘대리 티케팅’도 성행 중인데요. 이들은 주로 익명성이 보장된 모바일 메신저 랜덤채팅이나 트위터 등을 이용해 사람들과의 접촉을 시도합니다. 이들은 선입금을 받고 대리 티케팅을 한 뒤 사례금을 받는 방식으로 일대일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팬들은 매크로를 악용해 티케팅을 하는 것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지만 일부 팬들은 차라리 비싼 가격에 표를 구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 매크로 업자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매크로를 이용해 티켓을 높은 가격에 파는 행위는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에게는 재테크처럼 돈벌이 수단일 것이다. 나름대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얻은 결과를 활용하는 것인데…”
이 같이 매크로를 이용한 대리 티케팅은 유명 가수 콘서트 예매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기, 심지어 군대 공석 신청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악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이들을 처벌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현행법상 매크로는 예매 정보를 일일이 입력하는 수고를 덜어줄 뿐 불법 해킹 등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상의 경우 경범죄처벌법이 적용되긴 하지만 현장 거래에 한해서만 적용되고, 온라인 거래에 대한 제재 조항은 아예 없습니다. 일례로 지난해 8월 한 암표상이 매크로를 이용, 가수 샤이니 콘서트 티켓 320장을 매집해 팔다 티켓 예매처의 고발로 경찰에 붙잡혔지만 법적 근거가 미비해 결국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요.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공연 산업을 중심으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티켓 예매를 규제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특히 미국은 지난해 ‘온라인티켓판매법(Better Online Ticket Sales Act of 2016)’을 제정했는데요. 이에 따라 온라인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예매한 티켓을 재판매하는 행위는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제재 대상이 됩니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티켓을 구매하는 사람에게는 최대 1500달러(약 168만원)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단속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매크로 프로그램 등 통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대량 매입한 암표를 판매한 사람에게 60만 원의 벌금, 구류 또는 과태료 처분을 내리도록 하는 경범죄 처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밖에도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과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경우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밑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입니다.
의원들별로 발의한 내용과 벌금, 형량 등엔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정보통신망의 규칙을 우회해 부당이득을 취할 경우 처벌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법안이 통과돼 실행되면 매크로 프로그램을 악용해 실수요자들의 기회를 빼앗은 암표상들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콘서트 티켓 구매에 실패한 ‘프로듀스 101 시즌2’의 열렬한 팬 송 아무개 씨(29)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티켓 하나 구하려고 PC방을 거의 6년 만에 처음 가봤어요. 지금은 내가 응원하던 연습생이 떨어져서 콘서트 가고픈 마음은 사라졌지만 당시엔 기분이 너무 우울해서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누군가를 동경하는 마음을 이용해 정당하지 않은 수단으로 뒷주머니를 채우는 일이 강력한 단속을 통해 사라졌으면 합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