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이 급격한 인구 감소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을 짜느라 부심하고 있다. 사진은 덤벨 운동을 하는 도쿄의 노인들 사이에서 운동을 따라하는 어린 소녀의 모습. EPA/연합뉴스
올해 일본의 대졸 취업률은 97.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렇다고 마냥 부러워 할 일만은 아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일손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멈출 수 없는 인구격감의 시대, 그 막이 올랐다.
격변기에 돌입한 지금, 가만히 손 놓고 있다가는 승부에서 뒤처지고 만다. 일본 최고 기업으로 꼽히는 도요타자동차도 예외는 아니다. 날로 심각해지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2025년 도요타의 신차 판매대수는 내수시장에서 400만 대 수준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한창 잘나가던 경제호황기 90년대에는 800만 대였으니 그때의 반토막이 나는 셈이다. 이와 관련, 도요타는 다가올 ‘인구 8000만 명 시대’에 대비해 ‘J-리본(J-ReBORN)’이라는 계획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요약하자면, 내수시장 축소와 관계없이 현재의 판매 수준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도요타 간부는 “연간 판매가 150만 대 수준인 국내 판매량이 10년 후 130만 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창업 80년 만의 최대 개혁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경영진 모두 기합이 바짝 든 상태”라고 전했다. 구체적으로는 자동차나 렌터카 등 제각각이었던 ID정보를 통합해 편리성을 높이고, 젊은이들이 자동차를 구매하기 쉽도록 중고차 판매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도요타의 라이벌, 닛산자동차도 경쟁에 뒤지지 않으려고 뛰고 있다. 닛산자동차는 지난해 10월 대형 종합쇼핑몰 라라포트에 이례적으로 판매점을 출점했다. 지금까지 놓친 새로운 가족 층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또 올해부터는 수백억 엔의 규모를 투자해 기존점을 개장(改装)하고, 거점 지점을 만들 계획이다. 이처럼 꽤나 공격적인 자금 투입에 대해, 닛산 관계자는 “인구감소라는 위기를 타고 닛산은 도요타의 아성을 한꺼번에 깨뜨리려 한다”고 귀띔했다.
쇼핑몰 라라포트에 입점한 닛산자동차. 사진출처=닛산공식 트위터
한정된 파이를 어느 쪽이 취하느냐. 경쟁이 격화된 곳은 소매업계도 마찬가지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젊은이들의 왕성한 소비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가운데, 특히 슈퍼마켓과 편의점 간의 전쟁이 치열하다. 그동안 인구증가 사회에서는 대형 슈퍼마켓이 역 근처에 자리 잡고, 도심부에는 백화점이 위치했다. 휴일에는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쇼핑하는 주부의 모습이 당연했지만, 최근 인구감소 및 고령화로 이 구도가 크게 무너지고 있다.
노년층의 쇼핑은 대부분 도보 15분 내에서 이뤄지므로 일단 백화점 손님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차로 이동해야 하는 대형마트 역시 어려움을 겪기는 매한가지. 반면 주택 근처에 있는 편의점의 경우 신선식품과 냉동식품 취급을 늘리는 전략, 이른바 ‘미니 슈퍼마켓화’를 진행해 야금야금 시장을 뺏어왔다. 슈퍼마켓이 배달서비스 등으로 맞서고 있지만, 세븐일레븐과 로손, 패밀리마트 등 3강 편의점들은 자체 생산제품력도 워낙 뛰어나 히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승자’ 편의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경쟁자 드럭스토어가 참전했기 때문이다. 드럭스토어는 조제 영역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만큼, 식품이나 과자 부문에서 편의점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파격적인 ‘헐값’에 상품을 판다. 가령 음료와 과자 등 할인특가 상품을 매장 앞에 진열해 손님을 끌어 모으는 식이다. 그리고 냉동식품까지 점차 늘리는 ‘편의점화’로 단숨에 시장 파이를 점령해가고 있다.
편의점 로손 히트상품인 프리미엄 롤케이크.
말라붙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인구감소 시대에는 모든 기업이 업종을 떠나 수요가 있는 시장으로 몰려든다.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이미 철도회사인 JR규슈가 ‘도쿄에 호텔을 개업할 방침’을 세우는 등 기존 영역을 넘어선 비즈니스가 가속화”되고 있다. 또 다른 철도회사인 JR서일본도 미쓰비시중공업의 부동산 사업을 인수했으며, 도큐전철은 아시아의 주택개발에 진출해 주택 건설업자로 새롭게 도전한다.
아예 해외로 눈을 돌리는 기업도 많다. 덮밥 체인인 ‘스키야’를 운영하는 오가와 겐타로 사장은 “심각한 인구감소로 이제 내수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경영자도 종업원도 우수한 인재일수록 해외로 옮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스키야 역시 일본에서 축적한 기술과 서비스, 파워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일본은 출생자 수가 100만 명 밑으로 추락했다. 신생아 수가 100만 명이 안 되는 것은 관련 통계를 시작한 1899년 이후 117년 만에 처음이다. 게다가 예측 자료에 따르면 “50~60년 후에는 이조차도 거의 반토막이 나며, 100년 후 신생아 수는 약 32만 명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자연스레 기업의 ‘인재 획득’ 경쟁도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가시마건설의 요시미 요시카즈 사장은 “경험 많고 유능한 기능 근로자들이 퇴직하고 있지만, 입사하는 직원들은 되레 감소하는 추세라 기술과 노하우가 제대로 전승되지 못할까 우려된다”며 위기감을 감추지 않았다. 인구 감소로 구인난을 겪고 있는 데다 젊은 층이 건설업을 꺼려해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따라서 당사는 ‘근무방식 개혁’ 추진을 통해 ‘인재 모시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공사현장 주 2일 휴무를 비롯해 기능 근로자 처우 개선을 최우선으로 한다. 또 생산성 향상을 위해 AI와 사물인터넷(IoT)을 도입한 자동화 시공기술 개발도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인구감소 시대에 돌입함에 따라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쟁 형태도 생겨났다. 음료업계를 예로 들면 아사히, 기린, 산토리의 경우 상품개발 경쟁은 심화되는 한편, 업계 내에서는 ‘경쟁에서 공존’이라는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 중이다. 기린 관계자는 “특히 물류현장에서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라이벌인 아사히와 맥주를 공동수송하기로 했으며, 일본 코카콜라그룹과도 공동배송 및 공동구매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속도로 인구절벽에 부딪혔다. 이에 대해 <주간겐다이>는 “치열한 생존 경쟁이 막 시작됐다”며 “어떤 대기업이라도 살아남을 보증은 없다”고 경고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