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위원회 위원장 후보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거론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우리나라 금융정책을 총괄지휘하는 금융위원회(금융위)가 사실상 수장 없이 한 달 넘게 운영되는 중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여전히 업무를 수행하고는 있지만, 그는 50여 일 전에 이미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이러다보니 금융위 기능이 온전히 작동할 리 없고, 컨트롤타워가 없는 금융권 일선 현장에서도 업무 혼선이 빚어지는 중이다.
장관급인 금융위원장 인선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금융홀대론’마저 제기된다. 박근혜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마저 금융을 뒷전으로 미뤄놓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다.
이런 와중에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위원장을 지낸 김석동 전 위원장이 금융위 수장으로 거론되자 금융권이 들끓고 있다. 업무 경험 등을 고려할 때 적합한 인물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는 비난이 동시에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대책반장’ 혹은 ‘소방수’로 불릴 만큼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호평과 ‘관치금융의 화신’, ‘론스타 먹튀의 조연’이라는 비판을 함께 받는 인물이다.
김 전 위원장은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부(옛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2011~2013년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 금융정책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친 정책통으로 꼽힌다. 1993년 이후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신용카드 사태 등 국가경제 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맡아 금융 현안들을 성공적으로 돌파해냈다는 평을 얻었다.
특히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에 취임한 이후에는 저축은행 구조조정, 가계부채 안정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체계 개편 등 당면 문제들을 강한 추진력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해운 등 부실산업 구조조정, 13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 문제 등 금융당국이 직면한 현안들을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인물로 그가 거론되는 이유들이다. 그가 ‘관 역할론’을 강조한 만큼 문재인 정부의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 서민금융정책 활성화 등과도 코드가 맞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 정부와의 학연도 그의 기용설이 나오는 유력한 근거다. 금융권에 따르면 김 전 위원장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조정실장이 강력히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장 실장은 김 전 위원장과 경기고 동기동창이다. 여기에 김 전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중 후배기도 하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장하성 실장이 본인은 물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이번 정부의 경제 관료들이 대부분 교수 출신이어서 금융위원장은 공직자 출신이 적합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안다”면서 “금융위 관료들을 장악할 수 있는 최적임자로 김 전 위원장을 꼽았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이 실제로 금융위원장에 임명될지는 미지수다.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그가 ‘관치금융의 화신’이라 불릴 정도로 금융을 정책수단화한다는 평가가 부담이다. 실제로 김 전 위원장은 스스로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관치금융을 서슴없이 행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정치권과 금융권 노조, 시민단체들은 잇달아 성명을 발표하고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정치권에서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가 내정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의당도 브리핑을 통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한국노총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사무금융노동조합 등 노동계와 금융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도 일제히 김석동 위원장 선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김 전 금융위원장의 선임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로 론스타 먹튀 책임론이 꼽힌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1~2012년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그리고 2012년 1월 7일 론스타가 지배하던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했으며,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산 2003년에는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을 지냈다.
론스타 먹튀는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다시 매각하는 과정에서 5조 원에 가까운 이익을 실현하고 한국을 떠난 사건이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불투명한 인수 및 매각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거대 규모 국부 유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금융위원장 재직 당시 진행된 농협의 졸속 신경분리도 부적격 사유로 지목된다. 경제사업 활성화를 목표로 진행된 농협의 신경분리는 당초 2017년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농협법 개정을 통해 5년 앞당겨진 2012년 시행된 바 있다.
또 현대중공업 사외이사 재직 시 조선업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 한 번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는 것과 메가뱅크 등 대형합병의 추진자로서 금융위원장에 오르기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사자인 김 전 위원장은 ‘재등판’에 응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사외이사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면서 신변정리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사외이사인 김 전 위원장이 지난 14일 일신상의 사유로 중도 퇴임했다고 공시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16년 3월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로 선임돼 임기가 1년여가량 남아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이 최종 임명될 경우 그는 금융위원장직을 두 번 역임하는 최초의 인물이 된다. 금융권 또 다른 관계자는 “일단 현행법상 재임용이 금융위원장 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진보정권인 노무현 정부와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니만큼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