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당을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됐고 미국 측도 미간을 찌푸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문 교수가 문 대통령 특보라는 위치에 있으므로 그의 발언을 단순한 ‘개인 생각’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것이 미국은 물론, 대다수 전문가들 시각이다. 문 특보도 문제가 된 발언을 하면서 수차례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했다. 특히 한미정상회담을 10여 일 앞둔 시점에서 이번 발언이 나오면서 파장을 키웠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문 특보 개인적 견해일 뿐”이란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문 대통령이 적극 진화에 나섰지만 문재인 정부 대외정책의 첫 시험대인 한미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세월 동안 동맹을 맺어온 한미 두 나라 간에 새로운 엇박자 소재가 나타난 것 아니냐는 걱정이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수석 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 특보 발언 복기해보니
미국을 방문했던 문 특보는 6월 16일(현지시간)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 동아시아재단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워싱턴DC에서 ‘한미 신행정부 출범과 한미동맹’을 주제로 공동 주최를 한 세미나에서 기조연설 및 문답을 통해 이같이 얘기한 것이다.
문 특보는 북핵 문제와 관련, “문 대통령이 두 가지를 제안했다”면서 “첫째는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한다면 미국과 논의를 통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문 대통령이 염두에 두는 것은 한반도에 있는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를 축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면서 “문 대통령의 또 다른 제안은 북한의 비핵화를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 연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특보 발언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시 우리 정부의 대북조치를 처음으로 구체화해서 제시한 것이었다. 더욱이 한미 합동군사 훈련 중단 등은 북한이 끊임없이 요구해온 것이기에 문 특보의 발언은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문 특보는 6월 19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한반도 위기-한미동맹의 의미’ 세미나에서 다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국에서 한미군사훈련 축소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협상이라는 건 주고받는 것이다. 양자가 협상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면서도 “나는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언하는 사람”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학자적 소신을 재확인하면서도 외교·안보 차원의 확대해석에는 선을 그은 셈이다.
자신의 발언이 문재인 정부의 기조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한 듯 문 특보는 “교수로서 개인 생각일 뿐, 문재인 정부의 생각은 아니다”라고 강조했고, 한 질문자가 ‘Special Advisor’(특보)라고 호칭하자 “특보가 아닌 교수로 불러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21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도 “학자로서 얘기했을 뿐 이게 큰 문제가 되나”라고 언급, 논란의 확산에 대해 크게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 문재인 대통령 직접 진화 나서
청와대는 현 정부 첫 외교안보 시험대인 29~30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특보 발언 사태가 터지자 여진을 막기 위해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등 적극 진화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문 특보 발언과 관련,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며, 연합훈련 축소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은 미국 <CBS> ‘디스 모닝’과의 인터뷰에서 ‘문 특보의 언급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보도를 통해 봤지만, 문 특보는 상근 특보가 아니며 학자로서 자유로운 활동을 하면서 필요할 때 제가 자문을 구하는 관계”라며 발언 의미를 축소시켰다. ‘대선 당시 한미연합훈련 축소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안다’고 묻자 “선거 과정에서 한미군사훈련의 축소 혹은 조정을 말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인 지난 4월 2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북핵동결이 검증된다면 한미 간 군사훈련을 조정하거나 축소하는 등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도 핵에 지출한 비용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는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문 특보는 핵·미사일에 대한 동결에 대한 보상 개념으로 군사훈련 축소 등을 말한 것이고, 대통령은 완전한 핵폐기를 전제로 한 절차상 과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문 특보 발언과 같은 뜻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전했다.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에 앞서 청와대는 계속해서 “문 특보의 개인 의견”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불끄기에 진력했다.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18일 기자들과 만나 “문정인 특보가 특보라는 지위는 있지만, 개인 자격의 방문이다. 청와대의 공식입장이 아니다. (청와대와) 조율이 된 것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튿날인 19일에도 “(문정인 특보에게) 한·미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을 엄중하게 말씀드렸다”고도 덧붙였다.
# 문 특보 발언, 노림수 있었을까
“미스터 문(문정인)이 워싱턴에 다녀간 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은 한국 (문재인) 정부가 햇볕정책 3단계 정부임을 선포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문 특보 방미 기간 중 그를 비공개로 접촉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연 결정 등 한미 현안을 논의한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지난 21일자에 게재된 <동아일보> 단독 인터뷰에서 최근 워싱턴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3단계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다음으로 햇볕정책을 이어받았다는 의미다.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문 특보 발언처럼 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이미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은 있다. 문제는 집권 후 외교안보 정책을 조언하는 분이 워싱턴에서, 그것도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했다는 데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언급, 미국 측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드러냈다.
그는 또 ‘문 특보는 특보가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이 발언을 했다고 한다’는 질문에 대해서도 “워싱턴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다. 문 특보는 윌슨센터 기조연설 전에 내가 조율한 비공개 세미나에서 미국 측 전문가들과 여러 논쟁적인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그 자리에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를 배석시켜 ‘내 발언을 제대로 적고 있나’며 일일이 지휘(instruction)했다. 자신의 발언과 반응을 한국 외교부를 거쳐 문 대통령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개인 자격 발언으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 현지에서는 문 특보 발언이 한국 정부의 계산된 발언일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특보를 통해 민감한 현안을 미리 흘려 미국 내 여론을 살펴보려 했다는 얘기다. 한 전직 외교관은 “외교는 정치와 다르다. 철저하게 계산된 플레이를 해야 한다. 뭔가 떠보고 간을 보는 행위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쏟아지는 우려의 목소리
야권은 물론, 상당수 외교 안보 및 군사전문가들도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발언”이라며 문 특보 발언이 경솔했다고 입을 모은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쯤 되면 문 특보는 외교·안보의 폭탄이나 마찬가지”라고 했고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의 의중을 공개해 한미 이견을 노출시켰다. 외교 협상의 ABC도 찾을 수 없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고 비판했다.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충격 발언”,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 뒤 “좌충우돌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압박했고, 김세연 바른정당 사무총장은 “지금 이 순간 흐뭇하게 웃고 있을 김정은을 떠올려보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김영우 바른정당 의원은 “문 특보는 김정은의 외교·안보 특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 국제정치학 교수는 “북한은 이미 무기화된 핵을 갖고 있는 것이 확실시된다. 무기화된 핵을 가진 나라가 핵을 포기한 사례는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저히 낮아진 상황에서는 문 특보의 조건 제시가 가능하지만 지금은 핵·미사일 위협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한반도 전략자산 전개와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북한의 핵 동결 보상으로 쓰는 것은 카드를 몽땅 다 써버리고 빈손으로 앉아 기다리는 형국”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또 “문재인 정부가 자주외교를 강조하지만 한반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인 미국의 입장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분명하며 우리로서는 이로울 게 결코 없다”고 진단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