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이 확인한 ‘쿠팡 생활보안지침 추가 규정’ 문건에 따르면 업무 관련 대화 녹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불가피하게 녹음이 필요할 경우 쿠팡 리더십팀(CLT) 혹은 법무팀에 반드시 사전 서면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해고를 포함한 징계 사유가 될 수 있고, 회사가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명문화했다.
강병준 쿠팡 사태대책위원회 위원장이 5월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글공원 내 열린광장에 위치한 국민인수위원회의 ‘광화문1번가’에 쿠팡의 비정규직 대량 해직 사태 및 부당 노동행위에 대한 76인의 탄원서를 접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쿠팡이 금지한 업무 관련 대화의 정의가 다소 광범위한 것도 눈길을 끈다. 규정에 따르면 대면 미팅, 유선 미팅, 화상 미팅에 한하지 않고, 2인 이상 모든 업무 관련 대화를 포함한다. 사실상 회사에서 허가 없는 모든 녹음을 금지하고 있는 셈이다.
쿠팡 이외에 대다수 기업들이 업무기밀 유출을 우려해 이 같은 보안 규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규정을 새로 추가한 시점이 미묘하다. 최근 쿠팡과 배송직원 ‘쿠팡맨’ 간의 노사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회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쿠팡사태대책위원회 측은 최근 사측과 있었던 여러 녹취 파일을 공개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다른 동종 업체에 문의한 결과 녹음과 관련한 보안 규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선 최근 쿠팡 사태를 포함해 녹취 등으로 인해 회사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우려해 이 같은 규정이 신설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규정대로라면 회사 내에 부당한 처우를 받았거나 혹은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녹음을 해야 할 경우, 녹취 자료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
국내법상 당사자가 대화에 포함된 녹취는 불법이 아니다. 또한 회사 기밀과 관계없는 모든 직원에게 녹음을 금지한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규제라는 의견도 있다.
박선규 노무사는 “단순한 보안지침이라고 해도 징계와 같은 규정이 있다면 취업규칙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 혹은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며 “만약 그 규정으로 사내 처벌이 실제로 이뤄지면 이는 법원이나 국가인권위원회에 판단을 받아봐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쿠팡사태대책위원회와 함께 부당근로 문제를 제기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근로기준법상 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 입증 책임이 대부분 근로자에게 있어 자료 채증이 어려울 경우 녹취가 이용되기도 한다”며 “쿠팡이 내부규정을 변경하여 녹음 자체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IT기업 특성상 기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일반적인 보안 규칙일 뿐이다. 그 규정은 4월 중순에 추가됐기에 시점상 5월에 불거진 쿠팡맨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한편 쿠팡사태대책위원회는 회사 측이 차량 블랙박스에 녹음된 내용을 근거로 배송직원을 내부 징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차량 내 흡연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봉성창 비즈한국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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