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싶다- ‘비밀친구와 살인 시나리오 - 인천 여아 살해 사건의 진실’ 편’ 캡처.
김 아무개 양(17)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A 양(당시 8세)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 목을 졸라 숨지게 하고, 시신을 훼손해 아파트 옥상 물탱크 주변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종량제 봉투에 담긴 채로 발견된 A 양의 시신은 경찰들이 차마 부모에게 보여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참혹한 상태였다고 한다.
김 양이 시신을 훼손한 방법이 전문적이었고, 아무리 8세 아동이라고는 해도 보통 체격의 10대 여학생에 불과한 김 양이 시신을 혼자 힘으로 유기했다고 보기 어려워 공범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당초 김 양의 부모가 공범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경찰은 “사건 당시 김 양의 집에는 부모가 없었다”라며 증거상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공범은 의외의 장소에서 튀어나왔다. 사건 당일까지 김 양이 트위터와 카카오톡 등 스마트폰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던 상대가 드러난 것이다. 공범으로 지목된 재수생 박 아무개 양(19)은 사건이 발생한 3월 29일 오후 1시~3시 사이 김 양과 지속적으로 연락했다. 김 양은 A 양을 유괴하기 전 박 양에게 “사냥 나간다”고 말했다. A 양을 자신의 집으로 유괴했을 때는 박 양에게 “잡아왔다” “지금 목에 전선 감아놨어”라는 문자를 보냈다.
박 양은 이에 대한 답장으로 “살아있어?” “CCTV 확인했어?”라며 범행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더해 박 양은 “(A 양의) 손가락 예뻐?”라는 문자를 보내며 자신에게 손가락을 달라는 끔찍한 요구를 했다.
김 양은 박 양의 부탁대로 A 양의 손가락과 신체 일부를 절단해 종이봉투에 넣은 뒤 이날 오후 5시 44분께 서울에서 박 양을 만나 “선물”이라며 건넸다. 이들은 같은 날 오후 8시 30분까지 A 양의 시신이 든 봉투를 든 채 신촌, 홍대 등지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다니는 등 태연한 행동을 했다. 박 양은 김 양과 헤어진 뒤에도 이 봉투를 그대로 든 채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10일 범행방조 및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된 공범 박 양은 자신이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까지는 인정하면서도 “당시 상황이 실제가 아니라 김 양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고 반박했다. 여기서 박 양이 언급한 ‘거짓말’은 이들이 SNS에서 즐기던 ‘역할극’에서의 역할 놀이를 이야기한 것이다.
김 양이 ‘마피아 커뮤니티’에서 활동할 당시 사용하던 캐릭터의 트위터 계정. 김 양은 이 계정에서 ‘상사’ 역할을 하고 있는 박 양에게 이 같은 트윗을 보냈다. 사진=트위터 캡처
이들은 적대 세력끼리 서로 살해하면서 지역을 점령하는 ‘마피아 커뮤니티’에서 만났다. 살인이라는 주제로 진행됐기 때문에 미성년자의 가입을 배제했지만 김 양은 자신을 20대 이상으로 속여 가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김 양은 이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트위터리언에게 “저는 실직자라서 낮에(트위터를 할 수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초 언론 보도에서는 김 양과 박 양이 역할극을 통해 가까워지면서 서로가 서로의 ‘애인’인 것처럼 행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캐릭터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캐릭터와 다른 사람의 캐릭터를 애인으로 엮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캐릭터의 ‘오너’인 사람들도 마치 그 연인관계가 현실인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커뮤니티 내에서도 김 양과 박 양이 서로의 캐릭터를 애인으로 삼아 가까워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추가 취재 결과 ‘마피아 커뮤니티’ 내에서 이들의 캐릭터는 연인 사이가 아니라 상하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공범인 박 양이 역할극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캐릭터는 마피아 조직의 중간 보스였고, 김 양의 캐릭터는 그 보스의 오른팔 격인 조직원이었다. 박 양의 캐릭터가 상대 세력의 조직원을 죽이도록 지시하면 김 양의 캐릭터는 이를 따르는 식으로 역할극이 진행됐다.
실제로 박 양과 김 양의 ‘마피아 커뮤니티’ 내 캐릭터 대화를 보면 김 양이 자신의 캐릭터를 통해 “내가 항상 하는 일은 상사(박 양의 캐릭터)를 따르고, 조직을 따르고, 때로는 누군가를 명령에 의해 죽이기도 하는 그런 것”이라고 밝힌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XXX(박 양의 캐릭터)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라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장난처럼 여겨질 커뮤니티 내 이들의 이 같은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것은 주범인 김 양이 커뮤니티에 깊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자퇴 후 김 양은 SNS에서 여러 캐릭터 커뮤니티를 돌며 다양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이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이용한 캐릭터가 바로 이 마피아 커뮤니티의 캐릭터였다. 김 양은 스스로가 마치 마피아 조직의 킬러인 것처럼 약 1개월 동안 그 캐릭터에 동화돼 있었다.
김 양이 자신의 캐릭터에 깊이 동화돼 있던 만큼, 자신의 상사 캐릭터로 친분을 쌓은 박 양과도 단순한 친구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 양의 캐릭터는 커뮤니티 내에서 다른 ‘애인 캐릭터’가 있었지만 김 양의 끈질긴 애정 표현에 커뮤니티 활동이 끝난 뒤에도 SNS의 개인 계정으로 만나 친분을 쌓았다.
마피아 커뮤니티 활동 이후에도 김 양과 박 양은 서로의 개인 계정을 통해서 친분을 쌓아왔다. 현재 김 양의 이 트위터 계정은 비공개로 전환된 뒤 삭제된 상태다.
김 양이 박 양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커뮤니티를 벗어난 뒤에도 김 양은 대등한 애인이 아니라 박 양에게 ‘종속된 캐릭터’를 구축했다. 사건 직전의 트윗에서는 박 양이 자신을 괴롭힌다면서도 박 양과의 관계를 끊어낼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커뮤니티에 빠져든 두 10대 여학생들이 현실에서도 ‘놀이의 연장’을 즐겼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살인을 지시하는 상사 역할의 캐릭터로 활동한 것이 박 양이 맞다면, 박 양으로부터 정신적인 영향을 깊게 받은 상태로 범행한 김 양의 사건에 박 양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건과 관련해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어린 학생들이 폐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구축한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해 살인에 이른 것은 2012년 발생한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과도 흡사하다. 이 당시에도 실제 범행을 지시한 피의자가 ‘(다른 피의자가) 피해자를 죽이겠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냥 손봐준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고 범행 공모를 부인했던 바 있다”라며 “지금 사건에서 진술이 가장 엇갈린 부분이 박 양도 사건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면 범행을 지시하거나 관여한 부분이 있는지 여부인데 김 양이 사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박 양에게 의존한 모습을 보인 점이나 박 양이 ‘선물’을 받고 난 뒤의 태도 등을 보면 도저히 사건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일 현재까지 밝혀진 것처럼 김 양이 박 양에게 깊이 종속됐거나, 역할극이라 하더라도 박 양의 지시를 받는 입장이었다면 범행과 관련한 박 양의 개입 정도와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 검찰은 “김 양의 거짓말인 줄 알았다”는 박 양의 주장에 대해 “사건 당일 김 양이 건넨 A 양 시신의 일부를 박 양이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고 ‘선물이 예쁘다’라고까지 했다”며 박 양의 사건 개입 가능성을 재차 제기한 바 있다.
한편 박 양은 부장판검사 출신이 포함된 12명의 초호화 변호인을 선임해 그 출신배경과 함께 “실제로 범행에 깊게 관여했기 때문에 변호인을 많이 선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됐던 바 있다. 박 양의 변호인단에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변호한 변호사가 포함돼 있었으나 22일 사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캐릭터 심취해 살인’ 신촌 사령카페 살인사건 범인들 지금은? 2012년에도 인터넷 상에 구축한 자신의 캐릭터에 심취한 나머지 끔찍한 살인사건을 벌인 일당들이 있었다. 이른바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 또는 ‘사령카페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의 범인들이다. 일반인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어려운 ‘사령카페’는 회원들이 진지하게 자신을 마녀 또는 퇴마사로 일컬으며 수호령을 소환해 활동한다는 커뮤니티다. 이 커뮤니티 내에서 ‘능력 있는 마녀’라는 캐릭터로 활동했던 박 아무개 씨(여·당시 20)를 중심으로 모인 10대 남성 회원들이 박 씨의 남자친구 김 아무개 씨(당시 20)를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사건의 실행범인 이 아무개 군(당시 16)은 박 씨의 캐릭터와 ‘사령카페’라는 커뮤니티 분위기에 심취해 있었다. 이 군은 커뮤니티에서 마녀로 추앙받는 박 씨의 과외 학생이기도 했는데, 박 씨로부터 사령카페를 소개 받아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자신의 남자친구였던 김 씨와 다툰 뒤 “(김 씨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이런 발언에 영향을 받고 있던 이 군은 자신들의 스마트폰 단체 채팅방에서 김 씨가 박 씨를 사령카페에서 빼내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 씨를 죽여야겠다”라며 범행을 예고했다. 이 과정에서 이 군은 “(김 씨를) 죽여줄 사람이 있다”라고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군이 ‘죽여줄 사람’으로 지목한 것은 또 다른 커뮤니티에서 만난, 이른바 ‘해결사(킬러)’를 자칭하고 있던 18세의 윤 아무개 씨(당시 대학생)였다. 윤 씨는 “김 씨를 죽이자”는 이 군의 제안을 곧바로 승낙한 뒤 “내가 이 방면의 일을 잘 안다”라며 흉기까지 준비해 이 군에게 건네줬다. 윤 씨는 피해자인 김 씨와 일면식이나 갈등관계가 전혀 없었으면서도 이런 ‘킬러 역할’에 심취해 살인에 가담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결국 2012년 4월 30일 김 씨를 서울 신촌역 인근 바람산어린이공원으로 유인해 낸 뒤 흉기로 수차례 찔러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 군과 윤 씨 등 범행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두 명에게는 살인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징역 20년이 최종 확정됐다. 현장에 함께 동행하고 범행을 방관했던 이 군의 여자친구 홍 아무개(당시 15세)양은 단기 7년, 장기 12년이 선고됐다. 사건의 ‘원흉’ 박 씨의 살인 방조나 살인 교사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까다로웠다. 사건이 발생한 당시 현장에 박 씨가 없었고, 구체적으로 범행을 교사했다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재판과정에서 “이 군이 (김 씨를) 손을 봐주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살해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범행을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으나 범인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하던 대학생으로서 정신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서 피해자를 죽이고 싶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내고, 그런 말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다른 피고인들의 살해 결의를 강화시켰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범행 후에는 박 씨가 피해자인 김 씨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나누자고 제안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실제 범행을 인지하고 관여했다는 점이 인정됐다. 최종적으로 박 씨에게는 살인 방조 혐의가 적용돼 징역 7년이 확정됐다. 당시 박 씨의 변호인은 “범인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현장에는 동행하지 않았고, 살인을 방조하거나 묵인하려는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이번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의 공범인 박 양의 변호인의 주장과 일부 일치한다. 박 양의 변호인은 지난 12일 두 번째 공판에서 “박 양이 김 양으로부터 유괴부터 살해, 시신 훼손과 유기 과정을 모두 전해 들었지만 이를 장난으로 생각해 실제 범행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살인 방조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이번 인천 사건에서 이 같은 변론이 받아들여질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