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최근 방산비리 척결계획 초안을 새롭게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리 색출에다 구조적 원인까지 제대로 짚을 것이라는 의지다. 일요신문DB
“국방 개혁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 방위력 강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방산비리가 하나의 걸림돌이 된다. 비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히 짚고 넘어갈 것은 넘어가겠다.” 지난 5월 22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4대강 재감사에 돌입한 데 이어 방산비리 근절을 강조하면서, 정치권과 군 안팎에선 “보수 정권 9년 청산 대상 2호는 방산비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들과 군 전문가 등의 말을 종합하면, 문재인 정부는 방산비리와 관련한 준비를 ‘미리’ 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명 ‘방산비리 리스트’가 작성됐는데, 여기엔 과거 이명박 정부 때부터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사건들은 물론, 최근 의혹이 불거져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근절 방안과 관련 정책의 ‘큰 그림’도 나와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기자와 만난 한 여권 관계자는 “방산비리 역시 취임 직후 강도 높게 진행된 검찰 개혁과 4대강 재감사 지시 과정과 비슷하게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권 관계자는 방산비리 척결이 진행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과거형이다. 그는 “최근 난항을 겪고 있는 국방부 장관 인선과는 별개로 지금은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단계”라며 “구상돼 있던 방산비리 근절 방향이 최근 크게 달라졌다. 기존 내용들이 대폭 수정됐고, 얼마 전 새롭게 초안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방산비리 관련 계획의 방향이 최근 수정된 이유는, 주요 타깃에 대한 일부 정치권과 군, 방산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 나오면서부터다.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군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 세웠던 방산비리 근절 계획과 과거부터 이어져온 방산비리 수사, 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라며 “2014년 11월 구성된 검찰 방산비리 합동수사단도 성과가 있었음에도 ‘몸통은 두고 꼬리만 건드린다’는 지적이 많지 않았나. 이번 계획도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군 안팎의 전문가들은 방위사업청과 국내 방산업체들이 주요 비리 대상에 오른 점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다. 방사청은 국내 방산 업무를 총괄하고 있지만 결국 국방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두고 있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 등의 결정 내용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 방사청만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방산비리 척결’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과거 방산비리 수사가 대부분 무기구매, 또는 계약 단계에만 집중돼 있었던 점도 지적된다. 이 단계는 복잡한 군 무기체계 도입 절차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라 그동안 ‘빙산의 일각’만 본다는 비판이 나왔다.
여기에 또 다른 방산 전문가는 “방산비리라는 단어 자체가 문제가 있다. 해외에서 무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위사업’ 비리, 개인 간에 벌어지는 ‘단순 군납 비리’와 방산비리는 구분돼야 한다”며 “실제로 그동안 굵직굵직한 방산비리는 대부분 해외 무기체계 도입과 관련한 비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내 방산업체들이 해외 업체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건 단순히 기술력 때문이 아니다. 비리 집단으로 묘사되면서 국내 방위산업 전체가 위축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따라 최근 새롭게 작성된 방산비리 근절 계획 초안은 국내 무기도입 절차의 가장 앞부분, 소요 단계에 집중돼 있다. 정치권과 군 안팎의 전문가들은 이 소요 단계에서부터 비리가 시작되며, 그 규모도 상당하다고 보고 있다.
소요 단계는 필요한 무기를 제시하는 단계다. 육, 해, 공 각 군에서 ‘어떠한 무기가 필요하다’고 소요제기를 하면 합동참모본부, 국방부를 거쳐 방추위 안건으로 올라간다. 최종 결정 단계에서 청와대(국가안보실)와 조율하고, 다시 소요제기를 한 군으로 내려간다.
문제는 첫 단추를 끼우는 이 단계에서부터 허점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국방부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1~2015년 사이 중기계획에 반영된 총 사업비 1000억 원 이상 사업 80건 중 34건이 전력소요검증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무기체계를 도입할 때 예산 수립에 앞서 검증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42.5%의 사업이 이 단계를 생략했다는 얘기다.
여기에 한 방산 전문가는 “표면적 절차와 동시에 물밑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절차가 있다”며 “소요 단계에서만 최소 5년~10년이 지나간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군, 정치권, 무기업체 등 관계자들은 셀 수도 없다. 이 기간 동안 갑자기 북한의 위협 등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하고, 예비역 장교나 평론가들의 평가가 나온다. 군 안팎에서 ‘어떠한 무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 다음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판을 짠다’고 표현한다. 실제 비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방산비리 근절 방안과 계획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초안이 이제 막 작성돼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 다만 그동안 이어져오던 방산비리 수사나 근절 방안, 정책 등과는 차이가 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정부의 비리만 색출할 게 아니라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짚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무기중개상의 세계 ‘그들이 없으면 거래 자체가 불가능’ 방산 비리 논란 뒤엔 늘 무기중개상들이 있다. 이들은 수조 원대의 무기 시장 거래에 직접 관여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국내 무기중개상들은 대부분 군 출신이다. 대부분 ‘별’을 달지 못한 예비역 영관급 장교들이다. 로비가 대부분 부정적 의미로 알려지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로비스트 활동 여부는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이들의 명함에 쓰는 명칭도 대부분 사장·부사장·고문 등 일반적인 직함을 갖고 있다. 로비 방식 자체도 상당히 자연스러워 문제를 삼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한 예비역 장교는 “영화에서 나올법한 모습은 없다. 비슷한 시기 군 생활을 했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임을 갖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수준이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영업이고 부탁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외국 방산업체들도 유력 업체를 제외하면 국내 무기중개상 없이는 사업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직접 지사를 세우는 것보다 이들을 통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란 얘기다. 2006년 방사청이 신설되면서 과거와 같이 ‘결정권자’의 말 한마디로 사업이 결정되기는 힘들게 됐다. 한 방산 전문가는 “외국 업체와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미팅을 잡거나 문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업체는 업체대로, 방사청은 방사청대로 이들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활동 중인 무기중개상의 수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방사청에서도 방산업체로 진출하는 군 예비역 인사들은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지만, 영세 무기중개상이나 기타 업체로 흘러들어가는 이들까지 다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여기에 정식 출퇴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명함만 만들어 활동하는 이도 많기 때문에 실제로 몇 명인지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기중개 업체들도 소규모로 운영되는 되는 곳이 많은 데다 만들어지고 없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무기중개상이 개입한 물품, 특히 해외 업체의 물품은 ‘부르는 게 값’이다. 해외 장비의 실제 가격과 적정가는 파악이 어려워 중간에 끼는 무기중개상이 제시하는 가격이 최종 가격이 되기도 한다. 이 가격은 무기중개상들이 챙겨가는 수수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총 수주 성사 금액 가운데 최하 0.3%에서 3%까지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