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신 전 사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기류가 바뀌는 분위기가 돈다. 신한 사태 당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현 공정거래조사부)는 신 전 사장을 횡령, 배임,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은행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지난 3월 대법원 1부는 횡령액 일부만 유죄, 나머지는 무죄로 판단해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반면 신 전 사장의 고소를 주도한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은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 일요신문DB
비슷한 시기,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아 중립인사로 평가받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취임하면서 금융권은 신한 사태의 앙금이 해소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금융권은 신 전 사장의 신한금융 스톡옵션 23만 7678주에 주목했다. 신한금융은 신한 사태가 불거지면서 신 전 사장의 스톡옵션 권리 행사를 전면 보류시킨 바 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신 전 사장은 스톡옵션 행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지만 조 회장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조 회장은 지난 3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스톡옵션과 관련해 “시간을 두고 절차에 따라 (스톡옵션) 지급 여부 등을 결정할 것”이라며 “완전 무죄다라고 나오지는 않은 만큼 이 이슈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달이 지난 5월, 신한금융은 이사회를 열어 신 전 사장이 2005∼2007년에 받은 20만 8540주에 대해 보류 해제를 결정했다. 2008년 받은 2만 9138주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벌금형을 이유로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추후 제재 등을 감안해 최종 결정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금감원은 지난 18일 신 전 사장에 대해 행정 제재를 내리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다음 이사회에서 남은 스톡옵션 해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스톡옵션 보류 해제 건을 두고 신한금융과 신 전 사장이 화해할 계기가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지난 5월 스톡옵션 해제를 결정할 당시 신한금융은 “금번 스톡옵션에 대한 의사결정이 신한의 힘을 하나로 통합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 전 사장의 측근은 “신 전 사장에게 손 내밀고 악수하는 건 화해가 아니다”라며 “신한 사태를 일으킨 사람들이 거짓말한 셈이 됐는데 이에 대해 주주들과 고객들에게 사과하는 게 우선”이라고 전했다.
오는 7월 7일에는 고(故)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 음악회가 열린다. 이희건 한일교류재단이 주관하는 이 음악회에는 신 전 사장을 비롯해 라응찬 전 회장, 이백순 전 행장이 참석해 신한 사태의 주역들이 7년 만에 한 자리에 모일 예정이다.
이희건 한일교류재단은 이희건 명예회장이 2008년 설립한 재단이다. 재단의 초대 이사장인 라 전 회장은 2010년 10월 신한금융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재단 이사장 자리는 2012년 10월까지 맡았다. 현재 재단 이사인 류시열 이사와 김병주 이사 역시 라 전 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2005년부터 신한금융 사외이사를 맡아 온 류 이사는 라 전 회장이 사퇴하면서 신한금융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그가 대행을 맡은 당시에도 라 전 회장과 친분 때문에 주주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서강대 교수 출신인 김병주 이사는 ‘신한·조흥은행 통합추진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라 전 회장의 측근들이 즐비한 재단에서 신 전 사장을 초청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앞의 신 전 사장의 측근은 “은퇴한 신한금융 직원은 대부분 다 초청받았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 일요신문DB
신한금융은 최근 신 전 사장과 관련한 일들이 신한금융과 상관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스톡옵션 보류 해제는 이사회에서 적합하다고 생각해 결정한 것이고 음악회는 재단에서 주관하는 것”이라며 “직접적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라 전 회장, 신 전 사장, 이백순 전 행장이 모두 신한을 떠나 신한금융이 입장을 밝힐 게 없다”고 전했다.
즉 최근 움직임은 조용병 회장이나 신한금융이 앞장선 게 아니라 라 전 회장의 화해 제스처로 풀이된다. 이희건 한일교류재단뿐 아니라 신한금융 이사회도 라 전 회장 영향력 아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정권교체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신한 사태 당시 라 전 회장은 이백순 전 행장을 시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에게 비자금 3억 원을 전달한 혐의도 받았다. 라 전 회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 일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은 라 전 회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신한 사태가 발생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신한 사태를 기억하고 있다. 지난 2월 위성호 신한은행장이 취임할 때도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신한 사태의 주범일 뿐더러 진실 은폐를 위한 위증 및 위증교사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위 행장이 고발됐다”며 “은행의 대표라는 직분을 넘어 현재와 미래를 관리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는 은행장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투명한 선발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신 전 사장은 피해자로 인식해 왔다. 당시 조영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검찰은 금감원이 마련한 내부통제모범규준상의 보고절차도 생략한 채 부랴부랴 신 전 사장을 고소했다”며 “이 부분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지원 당시 비상대책위 대표도 “신 전 사장은 라 전 회장이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고 오늘의 신한을 일궈낸 사람이라면서 선처를 부탁한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호남권 인사를 중용하면서 전북 군산 출신인 신 전 사장의 이름도 정치권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여당 의원들은 신 전 사장이 이전 정권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여당 입장에서는 평판이 좋고 전문성 있는 금융인이 많지 않아서 향후 금융권 인사에 신 전 사장을 후보군에 올려놨을 수 있다”고 전했다. 앞의 신 전 사장 측근은 “신 전 사장이 향후 계획이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밝히기는 아직 이르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