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실 벽에 붙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지포스터. 이상돈 의원실 사진 제공.
6월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엔 정체 불명의 포스터가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실마다 등장했다. 포스터는 조 후보자 전면 사진과 함께 “인간노동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 삶의 원천이며 노동의 가치는 인간 삶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입니다. 조대엽, 당신을 응원합니다. 힘내세요”라는 문구를 담고 있었다. 포스터는 의원실 출입구 옆 의원 명패 쪽에 붙었다.
보통 국회 보좌진들은 이곳에 포스터를 붙이지 않는다. 의원 명패를 가릴뿐더러 미관을 해치는 이유에서다. 포스터는 주로 의원 명패 반대편에 붙인다. 환노위 소속 의원들이 평소 ‘열정페이 금지’ 등의 캐치프레이즈를 붙이기도 하는 곳이다. 정치권에서는 “보좌진이 아닌 외부인이 들어와서 포스터를 붙인 것 자체가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조 후보자 지지 포스터가 붙었던 이상돈 의원실 관계자는 “22일 오후에 외부 행사를 마치고 의원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포스터가 보였다. 의원의 지시로 포스터를 바로 떼었다. 민원인들이 회관에 오면 입장문 형태로 의원실에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불법 부착물은 처음이다. 우리는 솔직히 별 관심이 없다. 의원에 대한 협박도 아니고 일종의 해프닝이다”라고 밝혔다. 조 후보자 지지 포스터는 신보라 문진국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물론 한정애 이정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조 후보자에 대한 청문절차를 준비 중인 환노위 소속 의원실 곳곳에 붙었다.
조 후보자 지지 포스터 속엔 ‘숨은 일인치’도 있다. 이상돈 의원실 관계자는 “남성 의원들 방엔 하늘색 배경의 포스터가 붙었고 여성 의원 방에 달린 포스터는 분홍색이었다. 임이자 국민의당 의원은 여성인데도 하늘색 포스터가 붙어서 좀 의아했다”라고 전했다. 신보라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는 분홍색이었다. 포스터의 크기도 제각각이다. 보통 A4 용지 크기지만 남자 의원들의 포스터가 좀 더 크다”라고 밝혔다. 임이자 의원실 관계자는 “하늘색 포스터였다”라고 설명했다.
포스터를 두고 여야 의원들 간 온도차가 감지되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별 일이 아니다. 누가 붙였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이전엔 불법 포스터보다 더한 일도 많았다. 국민들이 의견을 표출한 것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신보라 의원실 관계자는 “포스터를 발견한 이튿날 오전에 신 의원에게 보고 드렸는데 너무 황당해 했다. 여당 쪽에서 조 후보자를 지나치게 보호하려다가 나온 해프닝 같다”라고 밝혔다. 야당 의원들 대부분이 포스터에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전언도 돌았다.
포스터가 붙은 시기도 묘하다. 한국당과 국민의당은 조 후보자를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공격이 정점에 달했을 때 조 후보자 지지 포스터가 붙은 것이다. 한국당 일부 의원들은 불법 포스터를 문자폭탄 연장선으로 보고 수사 의뢰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포스터를 붙인 이들의 정체가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이상돈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 방호과에 찾아가서 CCTV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함께 찍힌 다른 보좌진들의 신원이 공개되는 것도 개인정보에 포함될 수 있어 어렵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CCTV를 확인한 방호과 직원들이 ‘조끼를 입은 40~50대 남자들이었다. 2명이 번갈아가면서 붙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방호과는 수사 권한이 없다. 영등포경찰서에 신고하면 수사가 가능하지만 수사 의뢰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신보라 의원실 관계자는 “방호과 직원들과 함께 의원회관 CCTV를 확인했다. 22일 오후 5시 40분, 외부인 남자 두 명이 포스터를 붙이고 인증샷을 찍는 장면이 어렴풋이 보인다. 신원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옆방인 오신환 의원 사무실 방향에서 뒷모습이 찍혔고 희미한 옆모습이 마지막으로 찍힌 뒤 사라졌다.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야당에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다. 국민의당 비서관은 “의원회관은 의원실 허락을 받지 않으면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다. 회관 출입구마다 경비가 삼엄하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직원들이 포스터를 붙인 것 같은데 민주노총과 친분이 있는 의원들이 문을 열어준 것 아니겠나”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환노위 소속 여당 의원들의 허락을 얻어 불법 포스터를 부착했다는 주장이다.
한국당 보좌관은 “여당은 모르겠지만 환노위 소속 한국당 의원실 벽엔 포스터가 전부 붙었다. 회관에 들어오려면 의원실 방문증이 있어야 한다. 어떤 통로로 들어와서 포스터를 붙였는지 궁금하다. 조대엽 후보자 여론이 안 좋으니 여당 의원들이 다른 방법으로 국면 전환 노력을 하다가 무리수를 둔 것 같다”라고 보탰다.
하지만 민주당과 민주노총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누군지도 모르는데 출입을 허락했겠나. 국민들이 국회에 들어오는 것이 뭐가 그리 잘못됐나. 야당 의원들이 조잡스러운 사안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관계자 역시 “금시초문이다. 민주노총 소속 직원들이 불법 포스터를 붙일 이유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사건이 미궁으로 접어든 가운데 6월 27일 목격자들의 구체적인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국회 관계자는 “포스터를 붙이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포스터를 붙이는 도중에 제가 ‘이런 것을 해도 조 후보자에게 도움이 안 된다. 당신들이 몰래 포스터를 붙이고 가면 누가 붙이는지 모를 것 아니냐’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포스터를 붙이고 가면서 자신들이 노조에서 왔다고 했다. 노조 이름이 어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된 제보도 있었다. 국민의당의 한 보좌관은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노조 관계자가 들고 있는 피켓이 회관 벽에 붙은 포스터 문구와 똑같다”라며 사진 2장을 보여줬다. 고용부 서울서부지청은 조 후보자가 청문회 준비를 위해 매일 출근하는 곳이다.
사진 속 의문의 남자는 고용부 서울서부지청 앞에서 “인간노동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 삶의 원천이며, 노동의 가치는 인간 삶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입니다. 조대엽, 당신을 응원합니다. 힘내세요”라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서울서부지청 경비실 관계자는 “조 후보자를 응원하는 문구가 써 있는 커다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