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 2014년 2월 기자회견 당시 모습. 연합뉴스
서훈 국정원장은 지난 6월 15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현재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 국적자와 외국인들의 현황을 공개했다. 이들은 총 10명으로 한국 국적자는 6명, 외국인들은 4명이었다. 세부적으로는 한국 국적자 6명 중 3명은 순수 한국 출신의 선교사들이며, 나머지 3명은 탈북자 출신이었다. 외국인 4명은 모두 한국계로서 3명은 미국인, 나머지 1명은 캐나다인이었다.
이들 중 가장 오랜 기간 억류된 한국인은 김정욱 선교사다. 2013년 10월 북한에 억류된 그는 훗날 붙잡힌 두 명의 한국인 선교사와 함께 ‘국가전복음모죄’ ‘간첩죄’ ‘반국가 선전·선동죄’ ‘불법 국경출입죄’ ‘파괴 암해죄’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다.
북한은 김정욱 선교사를 두고 “국가정보원의 사주로 북한 정권을 전복하려 했다”며 사실상 그를 첩자로 몰아세웠다. 이러한 북한의 거센 압박 탓인지 김 선교사는 이듬해 스스로 평양 현지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원의 돈을 받고 북한 정권 전복 음모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선교사와 관계된 국내 교계는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터무니없으며 그는 순수 선교 차원에서 입북한 것이라고 주장해오고 있다. 더불어 김 선교사의 기자회견 내용 역시 북한의 압박 탓에 어쩔 수 없이 나온 허위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필자는 북한 내 정보기관과 연계된 내부 관계자를 통해 김정욱 선교사의 비교적 상세한 체포 과정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는 김 선교사가 직접 북한에 밀입국해 북한 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필자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김 선교사는 북한과 인접한 단둥의 모처에서 체포됐다.
애초 김 선교사가 북한 신의주의 지하교회에 들어가려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앞서의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는 김 선교사의 밀입북을 주선한 ‘한 인물’에 있었다. 김 선교사는 이 인물에 대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돌연 입북을 주저했다는 설명이다. 알고 보니 이 인물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요원이었고, 김 선교사의 납북을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기획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선교사가 주저함에 따라, 앞서의 요원은 중국 단둥의 모처에서 동료들과 함께 그를 체포해 북으로 이송했다. 김 선교사의 완력이 상당하기에 그를 이송하는 과정이 힘겨웠다는 후문이다.
혹자는 어떻게 북한의 보위부 요원이 중국 땅에서, 그것도 타국인을 체포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과 중국은 상호 간 암묵적으로 국경지역의 혐의자를 체포하고 이송하는 문제에 있어선 눈을 감아주는 분위기다. 2009년 3월 한국계 미국인 기자 유나 리와 함께 체포된 중국계 미국인 기자 로라 링의 체포 장소도 중국 땅이었다. 취재 도중 우발적으로 국경을 넘어선 로라 링은 이를 인지하고 중국 땅으로 건너왔지만, 북한 국경경비대는 중국 땅에 진입해 그를 체포해 갔다. 이 때문에 중국의 책임론이 일기도 했다.
서훈 국정원장은 지난 6월 15일 국회 정보위 간담회에서 김정욱 선교사 등 한국인 납북자 현황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의문은 남을 수 있다. 어찌됐건 국경을 넘어 김정욱 선교사 납북을 기도했다는 것은 북한 보위부 입장에서도 꽤나 큰 수고를 요하는 일이다. 또 왜 하필 한국 국적의 선교사를 타깃으로 삼아 납북 계획을 세웠는지도 의문점이다. 이에 대해 앞서의 내부 관계자는 2013년 연말의 북한 내 상황을 납북 배경으로 설명했다.
당시 보위부는 국내외적으로 장성택 추종세력 소탕을 이미 진행하던 시점이었다. 이때 김정은은 장성택 세력은 물론 국내외 불순 세력을 전방위적으로 소탕할 것을 특별지시했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성택 추종세력들을 완전히 소탕할 것 ▲장성택의 추종세력들과 연계한 남한, 미국, 일본의 불순분자들의 접근을 차단할 것 ▲조국을 배반하고 떠나는 철없는 인민들(탈북자를 의미함) 단속을 철저히 할 것 ▲이산가족과 탈북자의 재북(在北) 가족들과 연계한 남한, 일본, 미국의 보이지 않는 인물들을 체포할 것 ▲마지막으로 군중 속으로 들어가서 지하교회들을 뿌리 뽑고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
여기에 김정은은 보위부 특별지시를 통해 ‘임무수행실적이 저조한 보위 일꾼들에게는 엄중한 비판과 문책이 있을 것’이란 경고를 덧붙였다고 한다.
이에 보위부는 장성택 추종세력 소탕으로 불이 붙은 국내외 불순 세력 전방위 소탕 과제를 떠안고 ‘실적 올리기’에 열을 올려야 했다. 보위부로서 이 시기 북한을 드나드는 한국인 선교사들은 좋은 먹잇감이었고, 실적 쌓기에도 딱 좋은 대상이었다. 이들은 김정은의 특별지시 속의 ‘지하교회’ 연루 인물이며,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적절한 조치를 통해 그들을 국정원과 엮어 놓으면 북한 내부에 선전하기도 좋은 대상이기도 했다.
김정욱 선교사가 억류된 지 벌써 4년째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경색된 남북관계 탓에 별다른 수도 못 쓰고 시간을 보내 왔다. 정권 교체로 새롭게 정립될 남북 관계 속에서 이들에 대한 송환 협상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