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는 SK플래닛의 자회사인 커머스플래닛이 운영했지만 지난해 2월 커머스플래닛과 SK플래닛이 합병한 이후 SK플래닛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11번가는 SK플래닛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SK플래닛의 영업손실은 3652억 원으로 5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2015년보다 적자폭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10월 황근주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은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SK플래닛 적자의 절반가량이 11번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SK플래닛이 11번가를 포기하는 건 아니다. 서성원 SK플래닛 사장은 최근 회사 인트라넷을 통해 “어떠한 옵션일지라도 그 기본 전제는 SK플래닛이 주도하는 성장 전략”이라며 “분사 후 매각이라는 옵션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인위적인 구조조정 또한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SK플래닛 내부에서는 11번가를 분사한 후 합작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K플래닛 관계자는 “지난해 초 조직을 재편하면서 11번가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함과 동시에 외부 투자도 고려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며 “좋은 조건에 11번가의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SK플래닛 본사.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업계에서는 신세계그룹이 11번가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SK플래닛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SK플래닛 내부에서는 11번가 파트너로 신세계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이미 전략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신세계 직원을 몇 차례 만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롯데그룹도 11번가 투자에 나설 후보로 거론된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10월 베트남에 전자상거래 웹사이트 ‘롯데닷브이엔’을 오픈하는 등 전자상거래 시장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 왔다.
이처럼 유통업체들이 전자상거래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최근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온라인쇼핑몰 거래액은 38조 원. 2014년 45조 원, 2015년 54조 원, 2016년 66조 원으로 매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기간 국내 백화점 총 판매액은 매년 29조~30조 원 수준으로 수년째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롯데와 신세계 모두 “아직까지 11번가 투자에 대해 논의한 게 없다”고 전했다.
SK플래닛은 11번가 투자 유치 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라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사진=11번가 홈페이지
국내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거래액은 증가 추세지만 실적은 대부분 적자를 보고 있어 이른바 ‘치킨 게임’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증권가에서는 쿠팡, 티켓몬스터(티몬) 등 소셜커머스(SNS를 통해 이루어지는 전자상거래) 업체보다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 계열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롯데와 신세계가 11번가의 유력한 파트너로 거론되는 이유 중 하나도 ‘규모의 경제’를 이끌 수 있는 대형 유통업체기 때문이다.
정지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최근 쿠팡의 비정규직 부당 해고와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논란과 더불어 방문자 감소 위기를 맞고 있는 티몬 등 하위 사업자들의 경쟁력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11번가 분사 가능성이 논의되는 이유는) 과거 이베이코리아의 G마켓 인수 사례처럼 외형 확장에 이은 물품 공동 구매, 배송 및 마케팅 효율화로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톡톡히 누리겠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유통업과 큰 인연이 없는 SK가 11번가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역시 전자상거래 시장의 잠재성장력을 높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SK플래닛 관계자는 “2008년부터 11번가를 운영하면서 큰 축은 아니더라도 전자상거래 시장 내에서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올라섰다”며 “11번가가 전자상거래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건 아니지만 가능성을 봤기에 지난해 전자상거래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전했다.
SK플래닛이 11번가 사업 강화에 나서는 것도 11번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지난 4월 SK플래닛은 O2O(온·오프라인 연계사업) 전략을 담당하는 NX본부를 해체하고 대다수 관련 인력을 11번가에 배치했다. 또 지난 3월부터 넉 달째 11번가 개발자를 채용하는 등 11번가 인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SK플래닛 관계자는 “11번가 사업 강화 의지가 있는 건 맞지만 투자 유치 등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 건 아니다”라며 “SK플래닛의 조직 개편은 굉장히 잦고 개발자 채용은 과거에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기업 유통업체인 롯데나 신세계는 11번가 운영 주체가 되길 원할 듯하다. 유통업체들은 11번가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만 SK플래닛이 11번가 운영을 주도하면 효과가 제한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11번가는 판매업체와 고객의 중개 역할을 하는 오픈마켓이고 롯데나 신세계의 전자상거래는 백화점이나 마트의 물건을 온라인으로 파는 쇼핑몰이라서 운영 방식 자체가 다르다”며 “같은 전자상거래라도 성격이 완전히 달라 함께 11번가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회사의 성격에 맞게 단독으로 운영하는 걸 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기업 계열 유통업체와 SK플래닛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다보니 제3의 유통업체가 11번가 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렇지만 11번가 투자에 나설 만큼 자본력이 뒷받침되는 업체를 찾기는 쉽지 않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11번가의 기업가치를 최소 3조 원 이상으로 산정해 지분 매각을 추진한다고 가정하면 매각 시 롯데나 신세계의 출자 규모가 대략 1조~1조 5000억 원 수준으로 결코 적지 않다”고 전했다.
소셜커머스 업체인 쿠팡의 유동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6835억 원, 티몬의 유동자산은 2039억 원이다.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수년째 적자를 보고 있어 컨소시엄을 구성해 11번가 투자에 뛰어들 가능성도 낮다. SK플래닛은 11번가 투자 유치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