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서 축사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취임 이틀 만인 지난 6월 20일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주사무소를 방문해 “북한의 참가를 이끌어내는 과정으로 남북 관계가 풀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여자 아이스하키의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도 장관은 조직위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고 올림픽 성공 개최를 당부하는 의미에서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6월 24일 세계태권도선수대회 개막식 축사에서 “단일팀 구성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던 지난 영광을 다시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시작됐던 남북 선수단 동시 입장도 재현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평창 올림픽을 북한이 참가하는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지난 4월 7일 강릉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에서 펼쳐진 남북대결. 연합뉴스
이처럼 정부에서 남북 단일팀 결성에 의지를 보이면서 1991년 차례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와 FIFA 20세 이하 월드컵(이하 U-20 월드컵)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남북한이 단일팀을 결성해 참가한 단 두 번의 대회이기 때문이다.
남북 최초의 단일팀은 1991년 4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현정화, 홍차옥(이상 남한), 리분희, 류순복(이상 북한)이 주축이 된 ‘코리아’ 팀은 ‘만리장성’ 중국을 꺾고 우승을 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문 대통령도 이를 두고 “영광을 다시 보고 싶다”고 언급했다.
이는 남북 스포츠 교류 역사상 끊이지 않고 회자되는 사건이다. 세월이 흐르며 현정화-리분희 복식조의 ‘환상의 호흡’이 재조명받았다. 지난 2012년에는 이들의 스토리를 소재로 만든 영화 <코리아>가 개봉했다.
영화 ‘코리아’ 스틸 컷.
현재 한국마사회 탁구단 지휘봉을 잡고 있는 현정화 감독은 세월이 흐른 후 당시 단일팀 사정을 밝혀 이목을 끌기도 했다. 현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측과 자존심 싸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단일팀은 북한 요구에 의해 선수 구성을 남북한 반반으로 했다. 단체전 단식에서 리분희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 홍차옥이 아닌 무조건 류복순이 나가야 했다. 복식도 남북이 각각 1명씩 조를 이뤘다. 이에 현 감독은 3년간 호흡을 맞춘 홍차옥과 복식에 나서지 못했다.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둔 탁구 세계선수권에 이어 포르투갈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도 코리아팀이 나섰다. 남북 청소년 선수들이 힘을 합쳐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8강에 진출했다.
남북한은 대회 1년 전인 90년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통일축구대회’를 개최했다.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열린 대회였지만 양측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은 이어졌다. 당시 선수로 참가했던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심판운영실장은 세월이 흘러 “우리가 북한보다 경기력이 우월했지만 분위기를 고려해 골문을 열어줬다”며 “당시 북한 주심이 북한이 골을 넣을 때까지 추가 시간을 7~8분 이어갔다. 결국 북한이 페널티킥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유상철 울산대 감독은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한 아픔을 겪기도 했다. U-20 월드컵 본선에는 18명의 선수가 참가했고 아시아 예선 우승국인 남한이 10명 준우승국 북한이 8명을 채웠다. 동료들과 대회를 준비하던 8명의 선수들은 출전이 좌절됐다.
단일팀 결성으로 조직력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격에는 북한, 수비에는 남한 선수를 위주로 엔트리를 구성했다. 대회 4경기에서 터진 3골 모두 북한 선수들이 올린 득점이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나온 단일팀 논의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체육계 한 관계자는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이스하키도 ‘팀 케미스트리’가 아주 중요한 종목”이라며 “남북한 경기력 차이도 크기 때문에 단일팀 구성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올림픽만 바라보고 수년간 준비했는데…” 아이스하키계 뒤숭숭 문재인 대통령과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의 남북 단일팀 추진으로 아이스하키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대한아이스하키연맹은 이전까지 정부나 대한체육회 등과 단일팀 관련해 교감을 한 적이 없었다. 아이스하키는 탁구나 축구와 달리 북한과 교류를 해본 경험도 없다. 익명을 요구한 아이스하키계 관계자 A 씨는 “협회 사람들도 뉴스를 보고 놀랐다고 하더라”라며 “그래도 앞으로 정부나 체육회에서 요청이 있다면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까지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아이스하키연맹과의 논의, 팀 전력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과제가 산적해 있다. ‘북한 스포츠 거물’ 장웅 IOC 위원도 “91년 탁구 단일팀 구성에 회담만 22번 했다”며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대회에 참가할 선수들도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저변이 넓지 않은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 특성상 선수들은 올림픽 참가만을 바라보고 지난 수년간 준비를 해왔다. ‘단일화 논란’이 지속되자 아이스하키협회에서는 선수들이 직접 자신의 의견을 언론 등에 내는 것을 당분간 금지시켰다. 이에 A 씨는 “현재 선수들도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메달이 유력한 종목이 아니라서 그렇다는 생각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단일팀 추진은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나온 결과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