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어린아이의 상상력이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할 때가 있죠? 특히 아이가 있는 분들은 알겁니다. 아이가 무심코 그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무릎을 ‘탁’ 칠 때가 꽤 있습니다. ‘와...어떻게 저런 상상을 하지?’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한 장이 획기적인 기술 개발에 근간을 마련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심지어 어린 아이의 그림 한 장이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답을 주저준다면요.
고베 대지진을 기억하실 겁니다. 1995년 1월 17일 일본 고베에서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째로 강한 지진이었습니다. 이 지진으로 6437명이 사망했고, 4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재산피해 규모는 약 14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지진에 잘 대비한다는 일본이었지만, 진도 7이 넘는 강진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대지진을 겪은 일본은 다시 맘을 다잡았습니다. 내진설계 기술을 강화하는 한편,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에도 힘썼죠. 그 중 하나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지진 안전 그림그리기 대회’였습니다.
대지진 직후 열린 이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한 장의 그림이 어른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았습니다.
바로 이 한 장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주목하십시오. 그림 안의 집은 공중에 ‘부웅’ 떠 있습니다. 어떻게 떠 있을까요. 집과 땅 사이에 자석(원안)이 자리합니다. 대지진을 겪은 이 아이는 이렇게 생각습니다.
“만약 우리 집이 공중에 떠 있다면... 지진이 와도 안전하지 않을까?...집과 땅 사이에 ‘같은 극’끼리 서로 밀어내는 자석을 설치한다면...집이 떠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자석으로 집을 띄우다니요! 어린아이다운 엉뚱한 발상이고, 괴랄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 그림에 주목했습니다. 참으로 독특하고 엉뚱한 생각이지만, 실행만 된다면야...이 아이 의도대로 지진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놀랍게도 이 그림에서 힌트를 얻은 내진설계 전문가들은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기존의 내진설계 기술은 한계가 많았습니다. 자재의 내구력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둔 ‘기본 내진’, 건물에 별도의 추를 달아 흔들림을 상쇄시키는 ‘제진’, 건물 바닥에 진도를 낮추는 바닥재를 까는 ‘면진’ 등 기존 기술들은 지진의 강도를 낮출 뿐, 완벽하게 지진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집을 아예 공중으로 띄어 버린다면, 아무리 큰 지진이 오더라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겠죠.
그렇게 탄생한 기술이 바로 ‘차진 기술’입니다. 내진설계 전문가들은 앞서 어린아이로부터 힌트를 얻어 이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업계 내에서는 이를 ‘궁극의 기술’로 여기고 있을 정도입니다.
앞서 어린아이의 상상처럼 ‘자기력’을 이용하기도 하고, 또한 수륙 양용차 처럼 ‘부력’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차진 기술’은 실용화 단계 까지 왔다는 후문입니다. ‘공중에 떠 있는 집’...이젠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때로는 어린아이의 상상력이 인류를 구할 방안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