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중학교 3학년 장기 천재 후지이 소타(14)가 6월 26일 도쿄 장기회관에서 열린 마스다 야스히로(19)와의 대국에서 이겨 29연승 기록을 세운 뒤 ‘29’라고 쓰여진 장기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실수가 적다.” “급소를 한눈에 꿰뚫어 본다.”
일본 장기계에 새로운 역사를 기록한 후지이 소타 4단. 대국에서 패한 프로기사들은 천재소년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후지이는 악수를 손에 꼽을 정도밖에 두지 않는다. 설령 악수를 둬도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해 최선의 수를 둔다. 또한 기세만 있는 게 아니라, 저력 같은 힘이 있어 공격이 매우 예리하다.” 아버지 혹은 삼촌뻘 되는 프로기사들은 ‘중학생답지 않은 후지이의 노련함’에 모두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었다.
29연승을 달성한 6월 26일. 역사적인 시합에서도 후지이는 침착했다. 스승인 스기모토 마사타카 7단은 “대단한 기록 달성이다. 스승인 나도 행복하다. 28연승을 달성하고 귀가하는 길에 후지이는 여느 때와 똑같이 장기 이야기만 하더라.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으며, 실은 그때 29연승을 확신했다”고 전했다.
후지이는 지난해 10월, 최연소 나이(14세 2개월)로 프로 세계에 입문했다. 초반 기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데뷔전에서는 현역 최고령 기사 가토 히후미 9단(76)을 110수 만에 이겨 큰 화제를 모았다. 가토는 후지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최연소 프로 입문(14세 7개월) 기록 보유자로 ‘원조 신동’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62세로, 이날 대국은 가장 나이 차가 많은 공식 경기로 기록됐다.
이후 후지이는 무패행진을 이어옴으로써 29연승이라는 일본 장기계의 기록을 30년 만에 갈아치웠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세운 신기록이다. 덕분에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고, 그의 고향 아이치현에서는 ‘아인슈타인급 천재’로 칭송받고 있다.
어릴적 후지이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큐보로’도 일본인들에게 화제다.
후지이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모으자, 일본 언론들은 그의 평소 생활을 소개하는 데도 열심이다. 후지이의 할머니 야스코 씨는 <주간여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후지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일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고 회고했다. 예를 들어, 만 1세가 지났을 즈음에는 열차에 관심을 보였다. 기차가 보고 싶다 해서 철로 변 길가에 데리고 가면, 어린아이가 넋을 잃고 바라봤다.
또 유치원에 들어가서는 독서에 빠져들었다. 초등학생이 되자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더란다. 어느 날은 <당신이 직장에서 미움을 받는 이유>란 책을 초등학생인 후지이가 읽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기억력도 남달랐다. 한자와 영어를 외우는 것이 빨랐으며, 피아노를 배우면 곧 치는 법을 마스터했다.
장기는 5살 때 할머니가 사다 준 초급자용 장기세트로 처음 접했다. 금세 빠져들어 후지이는 어머니를 졸라 ‘동네 어린이 장기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만일 장기에서 지기라도 하는 날엔 엉엉 울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목두기는 당해낼 어른이 없었고, 초등학교 4학년 땐 스기모토 마사타카 7단의 제자로 들어갔다.
<여성세븐>은 후지이가 이처럼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던 배경으로 ‘교육’을 꼽기도 했다. 이른바 몬테소리 교육법이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교육철학으로, 어린이가 스스로 자발적인 활동을 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걸 중시한다. 억지로 가르치려 들지 않고 자유스럽게 호기심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후지이의 경우 가정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자주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받았다. 3세 때는 ‘큐보로(Cuboro)’라는 나무블록을 가지고 놀았으며, 5세에는 ‘미로찾기’가 장난감을 대신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후지이는 실패해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끝까지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어른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도 여럿 있었다.
장기는 5수, 10수처럼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사고력은 훈련을 통해 충분히 키울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어떤 행위든 스스로 순서를 생각하는 것이다. <여성세븐>은 “아주 어릴 적부터 후지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하는 활동을 되풀이함으로써 앞을 내다보는 힘이 자연스럽게 붙은 듯하다”고 전했다. ‘승부사의 진격은 이미 1세에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한편, 아직 어린 나이지만 ‘천재소년’ 후지이가 프로기사로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간포스트>에 따르면 “일본 프로기사의 수입은 4단 승격의 경우 한 달에 15만 엔(약 150만 원)” 정도다. 여기에 참석하는 기전마다 대국료가 차등 지급된다. 보통 1국 당 2만~30만 엔선. 후지이는 공식적인 대국료에 인터넷방송에서 개최하는 비공식전, 언론 노출 등이 있기 때문에 월수입은 대략 50만 엔(약 506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봉으로 치자면 우리 돈으로 6000만 원이 넘는 금액. 중학생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연봉이다.
게다가 매년 승급을 거듭할수록 연봉은 뛰어오른다. 물론 우승 상금도 빼놓을 수 없다. 공식전 중에서 가장 상금이 높은 대국은 류오센(竜王戦). 여기서 지더라도 패자의 상금은 1590만 엔(약 1억 6000만 원). 만일 우승하면 상금은 무려 4320만 엔(약 4억 4000만 원)을 받게 된다. 한 매체는 “후지이가 지금의 승세가 이어갈 경우 10억 원에 가까운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후지이 소타 4단은? ▲일본 장기 역사상 최연소 프로기사. 공식전 최다연승 기록(29연승) 및 데뷔 이후 무패 최다연승 기록(29연승) 보유자 ▲생년월일 : 2002년 7월 19일 (만 14세) ▲출신지 : 아이치현 세토시 ▲프로 입단 : 2016년 10월 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