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7일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첫 국무회의를 시작하기 앞서 국무위원들과 이동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시민단체 출신들 전진 배치
정치권에선 시민단체 출신이 아니면 문재인 정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된다. 시민단체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는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축이다. 우선 내각에서는 김상곤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의장, 전국교수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비록 낙마했지만 안경환 전 법무장관 후보자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활동했다. 안 전 후보자가 이 센터에 몸 담았을 당시 부소장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맡았었다. 안 전 후보자에 이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시민단체 출신이다. 안 전 후보가 몸 담았던 참여연대와 함께 시민단체 양대 산맥을 이뤄온 경제정의실천연합이 박 후보자의 활동처였다. 그는 경실련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에서 일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장 실장과 함께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에서 경제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 실장 외에도 청와대 곳곳에 시민단체 경력자들이 포진해있다. 조현옥 인사수석은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를 지냈고 시민단체와의 소통을 담당하는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은 경실련 정책실장,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을 지냈다. 하 수석과 호흡을 맞추는 김금옥 시민사회비서관은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활동가였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대구 페놀 사태 때부터 환경운동에 참여했고, 안병옥 환경부 차관은 시민환경연구소·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출신이다. 정부 부처와 환경 분야 정책을 조율하는 김혜애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은 녹색연합 공동대표를 지냈다. 환경 문제에 대해 정책 조율을 하는 김수현 사회수석 역시 전업 활동가는 아니지만 한국도시연구소에서 주거·빈민 관련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전국은 물론, 해외조직까지 관할하는 거대 법정 조직 민주평통 사무처장에는 전국연합 출신의 황인성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임명됐다.
문 대통령이 시민단체 출신들을 신임하는 이유는 그의 이력과도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를 오랫동안 하면서 사회 참여에 대한 시민단체의 역할과 사회적 중요성을 목격했다. 시민단체 경력자들을 정치에 수혈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참여정부에서도 이러한 실험이 임기 내내 이뤄진 바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 출신의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정부 부처는 물론, 청와대 정책 라인 곳곳을 장악하자 늘공(전업 공무원)들은 불안하다는 말을 숨기지 않는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시민단체의 실험적인 목소리와 정책을 반영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인사에서 너무 지나친 쏠림 현상은 곤란하다. 이렇게 되면 직업 공무원들도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정책을 몰아가게 된다. 최근 4대강 사업 전면 재검토, 탈원전 계획 등을 보고 많은 공무원들이 어리둥절해한다. 수십 년을 보고 결정을 해야 하는 사안이지 몇 년 만에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균형 잡힌 인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 설마 했던 호남 탕평책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60%가 넘는 전폭적 지지를 보여준 광주·전남의 한 중견 언론인은 “우리도 놀랄 지경”이라고 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지역 출신 인사가 문재인 정부 초기 인사에서 발탁됐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호남 권역 순회경선 유세에서 “제3기 민주정부는 호남의 인재가 마음껏 일하는 나라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직 인사와 내각을 이끄는 책임총리부터 대탕평할 것을 약속한다”고 언급, 호남 배려를 약속했었다. 문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발표한 인사 제1호부터 호남을 흡족하게 했다. 호남(영광) 출신인 이낙연 전 전라남도 지사를 지명, ‘통합·지역탕평’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고창), 김현미 국토부 장관(정읍),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전주), 조현 외교부 2차관(김제), 심보균 행정자치부 차관(김제) 등은 전북 출신이다. 이낙연 총리를 비롯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장흥),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함평),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나주),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나주),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해남)이 전남 출신이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광주가 고향이다.
6월 말까지 임명된 정부 파워 엘리트의 30% 가까이가 호남 출신으로 구성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와는 비교가 안 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이다. 사실 호남권 언론인들에 따르면 지역민들 상당수가 문 대통령의 약속 이행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과거의 경험 탓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지방선거를 한 달 반 정도 남겨둔 5월 15일 문재인 대통령(당시 고문)은 부산의 언론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왜 부산은 현 정권을 부산 정권으로 안 받아들여 주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만 부산을 엄청 짝사랑한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부산 정권 발언은 제4회 전국 지방선거(2006년 5월 31일) 당시 호남 표심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부산 정권’ 논란이 일었다. 2017년 3월 19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이제 다시 한 번 부산 사람이 주체가 돼 ‘부산 대통령’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 여성 장관 30% 공약 근접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을 더 많이 기용하고 있다. 구색 맞추기식이 아니라 요직에도 여성을 중용하는 중이다. 6월 말까지 발표된 15명의 장관 후보자 중 4명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여성 장·차관 30%로 출발해 임기 중 단계적인 남녀동수내각’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강경화(외교부)·김현미(국토교통부) 장관이 청문회를 통과했고 김은경(환경부)·정현백(여성가족부) 장관 지명자는 아직 후보자로 남아 있다. 인선이 남은 부처가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인데, 복지부 장관에는 여성이 내정될 가능성이 거론돼 내각에 여성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두 부처 중 한 곳에 여성 장관이 지명되면 여성 장관은 5명(29.4%)으로 문 대통령은 ‘여성 장관 30%’ 공약을 지키게 된다. 두 부처에서 여성 장관을 내지 못한다 해도 24%로 약속에 근접한다. 더욱이 차관급인 보훈처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켰기 때문에 피우진 처장을 장관급 인선에 포함하면 여성은 5명이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으로 역할이 강화된 국민권익위원장에도 여성인 박은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탁돼 취임했다. 국민권익위원장은 인사 청문 대상이 아니어서 임명 직후 취임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여성 대표성 강화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본인도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남녀동수내각 구성이 세계적 추세인데도 한국은 최하위로 중동국가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대표성의 불균형은 민주주의 완성의 큰 걸림돌이다.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 여성 관리직 공무원 임용목표제를 적극 시행하고,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여성 관리자 비율 확대 또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민주당 한 현역 의원은 “인사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지만 문 대통령이 졸업한 경남고와 경희대 출신의 차관급 이상 인선자는 아직까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등 문재인 대통령의 첫 인사에서 특정 학맥 쏠림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임 정부에 비해 나름대로 많은 고심의 흔적이 있는 인사라고 본다”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