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현대카드는 현대카드본부와 현대캐피털본부를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직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원래 법인이 분리된 회사다. 다만 그동안 영업이나 상품개발 등 업종 특성상 같이 운영할 수 없는 부서를 제외하고 전략기획, 경영지원 등 기능을 중심으로 조직을 꾸려 두 회사의 업무를 함께 처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왔다. 이를테면 경영지원본부가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재무와 인사 등을 함께 맡고 있는 식이다.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분리경영에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연합뉴스
하지만 지난 6월 19일부터 적용된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두 회사는 앞으로 각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둘로 나뉘어 별도의 조직에 속하고, 업무도 자신이 속한 본부와 관련된 부분만 진행한다.
또 신설된 디지털본부와 글로벌본부가 각각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업무를 주로 맡아 두 회사의 분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직개편으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각각의 사업 정체성이 더욱 확실해지고 두 회사 각자 독립경영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그동안 정태영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운영되던 현대카드·캐피탈이 조직 분리에 나선 까닭으로는 올해 있었던 주주 변경이 거론된다. 10년 넘게 현대카드·캐피탈의 주요 주주였던 미국 GE캐피탈은 그동안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매각했다.
이 중 현대카드 지분 43%는 현대커머셜에 19%, 어피니티컨소시엄에 24%씩 넘어갔다. 이에 따라 박영택 어피니티 회장, 이상훈 어피니티코리아 대표가 현대카드 사외이사로 현대카드 경영진에 합류했다. 공통조직 분리 개편은 이들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캐피탈 지분 43.3%는 현대·기아차에 23.3%, 나머지 20%는 특수목적회사에 넘겨져 유동화됐다. 이런 지분구조 변화 때문에 금융권에선 어피니티컨소시엄이 이번 조직개편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대카드 지분 23.99%를 사들여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어피니티는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커머셜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을 제외하고 현대카드의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이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조직 운용이 혼재돼 있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조직분리를 요구했다는 소문이 금융권에 나돈다.
나아가 이번 조직개편을 계기로 어피니티가 현대카드의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재무적 투자자인 어피니티컨소시엄은 빠른 시간 안에 현대카드를 통한 투자 성과를 실현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단기적 전략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어피니티컨소시엄이 지분 매입 당시 현대카드가 3년 안에 상장하기로 하는 내용의 주주간계약(SHA)을 체결하고 2020년 현대카드가 상장하는 시점을 전후해서 주식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할 계획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반면 오너 일가인 정 부회장은 눈앞의 실적보다 장기 전략을 중요시하는 입장이다. 특히 ‘디지털 현대카드’를 키워드로 내세우고 카드사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문제는 정 부회장이 현대카드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주요 주주인 어피니티컨소시엄의 목소리를 마냥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다.
현대카드 측은 어피티니의 영향력 행사를 강력히 부인한다. 회사 관계자는 “조직개편은 어피니티컨소시엄과 무관하다”며 “조직 효율화와 현대카드의 디지털사업 강화를 위해 조직분리를 실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조직개편이 어피티니의 경영개입보다 현대자동차그룹 차원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현재의 지배구조 하에서는 금융계열사가 지주회사 전환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사전 정비작업 차원에서 조직개편이 실시됐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대자동차는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검토 중인데 유력한 방안 중 하나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이다. 특히 현대자동차나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를 인적분할한 뒤 지주사로 전환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 경우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현대차투자증권(구 HMC투자증권) 등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모두 해소해야 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는 자회사 및 손자회사로 금융사 지분을 보유할 수 없다. 만약 현대차그룹이 지주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칭 ‘현대차그룹홀딩스’의 손자회사 격이 되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현대차투자증권 등은 반드시 매각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는 작업인 데다 금융계열사들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금융계열사들은 실적뿐 아니라 사업 내용에서도 현대차그룹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특히 현대캐피탈의 경우 자동차 할부 파이낸싱을 담당해 자동차 사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회사로 꼽힌다.
금융계열사들은 그룹 지배구조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규모가 가장 큰 현대카드의 경우 현대자동차가 36.96%, 기아자동차가 11.48%를 보유 중이다. 현대카드 다음으로 덩치가 큰 현대캐피탈 역시 현대차가 59.68%, 기아차가 20.1%씩 소유하고, 현대차투자증권은 현대차(27.49%), 현대모비스(16.99%), 기아차(4.9%)가 모두 지분을 가진 계열사다.
한때 이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국회에서 논의 중인 중간금융지주사 도입이 꼽혔다. 중간금융지주사법은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증손회사 지분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 안팎으로 완화해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지난 18대 국회에서 폐기된 데 이어 19대 국회에서도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반대 당론을 고수하는 것은 물론 학자 시절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조차 “당론과 배치되는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때문에 최근 일각에서는 정태영 부회장을 통해 금융계열사들을 독립 소그룹으로 분리하는 방식이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현대차그룹이 보유 중인 지분을 정 부회장에게 넘기고, 계열분리 등을 통해 그룹에서 독립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경우 현대캐피탈에서 자동차 판매에 필수적인 할부금융 기능은 현대차나 기아차의 사업부 형태로 흡수하고 나머지 부문들만 떨어져 나가도록 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따라서 별도 조직을 강화한 이번 조직개편도 이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글로벌 자동차업체들도 대부분 파이낸싱 기능을 함께 갖고 있다”면서 “현대차도 이런 방식을 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