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 연합뉴스
지난 6월 16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고(故) 백남기 씨 유족에 사과의 뜻을 밝혔다. 백 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지 1년 7개월 만이다. 이 청장은 19일에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과는 사과를 받는 사람이 느껴야 한다”며 “농민회, 유족 측과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이 청장은 “6·10민주화항쟁 30주년 행사와 경찰인권센터에서 박종철 기념관을 찾아 느낀 소회도 있고, 큰 시대 흐름에 맞춰 인권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과 배경도 밝혔다.
이 청장의 사과는 인권 친화적 경찰로 거듭나라는 새 정부의 주문과 서울대병원의 사인 변경이 맞물려 진행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청장이 사과의 뜻을 밝히기 전인 6월 15일 서울대병원은 백 씨의 사망진단서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백 씨가 외부충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백 씨 유족 측의 입장은 경찰과 달랐다. 백 씨의 큰딸 백도라지 씨는 “사과를 한다면 최소한 유족을 만나 사과하려는 시도라도 해야 했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며 ‘원격 사과’라고 꼬집었다. 백남기 투쟁본부는 성명을 통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와 책임자에 대한 처벌, 구체적인 재발방지 대책이 빠진 도대체 무엇을 사과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껍데기뿐인 사과였다”면서 “경찰이 진정으로 고인을 애도하고 유족에게 사과하겠다면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우선”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백 씨의 유족이 말뿐인 경찰의 사과는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그저 한 가족의 고집이 아니다. 공권력을 이용한 폭력 사태는 과거에도 있었다. 백남기 씨 물대포 사건부터 용산참사, 밀양 송전탑 사태까지 많은 시민들이 죽고 다쳤다. 그간 공권력의 폭력을 경험한 이들이 ‘인권 경찰’을 말하려면 이런 사건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도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8년 전 용산 참사를 겪은 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그날,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용산 참사 희생자인 고(故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 씨는 “우리는 누구를 죽이려고 올라간 것도 아니고 누구를 해치려 했던 것도 아니다. 올라간 지 24시간도 안 돼 죽었다”며 “불에 타 죽은 것도 아니고 공권력 폭력에 희생된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4구역 재개발 현장 건물을 점거하고 보상을 요구하던 주민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불이 난 사건이다. 당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지고 23명이 다쳤다. 검찰은 사건 발생 3주 만에 철거민의 화염병 사용이 화재의 원인이었고, 경찰의 점거농성 해산작전은 정당한 공무집행에 해당한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검찰은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은 묻지 않고 철거민 대책위원장 등과 용역업체 직원 7명을 기소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0년 용산참사에 대해 “경찰의 (진압) 조처는 국내 법령 규정을 비롯한 각종 기준 및 경찰 규칙의 취지에 어긋나 단순한 당·부당의 수준을 넘어 위법 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결정문을 냈다. 특히 인권위는 참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자 경찰청장 내정자였던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 등 경찰 간부들의 기소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진상도 규명되지 않았다. 전 씨는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였던 김석기는 오사카 총영사,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됐고 작년에는 국회의원까지 됐고 경찰 관련자들은 단 한명도 처벌 안 됐다”며 “그런데 우리 피해자들은 자기 식구 죽였다고 죄를 뒤집어 씌어 5년 징역을 살았다. 아들이 아버지 죽이는 사람 봤느냐”고 반문했다.
여전히 밝히지 못한 의혹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요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26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참사에 대한 경찰의 재조사와 책임 규명 및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찰 개혁이 수사권을 받기 위한 쇼가 아니라면 대표적 경찰인권침해로 인한 사망사건인 용산 참사의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사일 밖에 모르던 밀양 주민들도 3년 전 송전탑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지난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 때는 쇠사슬로 몸을 엮은 주민 100여 명이 경찰의 해산 과정에서 잇따라 부상을 입었다. 당시 경찰 20개 중대, 2000여명과 밀양시청 공무원 100여명, 한전측 인력 200명이 동원됐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구미현 씨는 “우리의 기본권이 무참히 밟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다 해보자 해서 쇠사슬을 허리에 목에 여러 사람 엮었다”며 “그런데도 어걸 어떻게든 자르려고 기계도 동원했다. 그날 밀양 시내 철물점에 쇠사슬 자르는 기계가 동이 났다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구 씨는 “김수환(당시 밀양경찰서장)이 현장에만 나타나면 경찰의 진압은 살인적으로 변했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인데 사정없이 밀치고 피도 나고 짐짝같이 끌려 나갔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폭력은 단 한건도 입건된 적 없고 주민들만 실형에 벌금형에 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주민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381명이 입건됐다. 현재 150여 가구 주민들은 여전히 한전 보상금 수령을 거부한 채 송전탑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다. 구 씨는 “(경찰이) 사과해야 하고 지금 인권 경찰이 되겠다 외치고 있는데 과거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책임규명이 선제돼야 한다”며 “국민 편이 아닌 정권이나 기업의 입맛에 맞게 폭력을 저지른 경찰에 대해선 분명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30일 고(故) 백남기 씨 유족과 농민단체 주축의 ‘백남기투쟁본부’가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경찰 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인권침해 주범’이라는 주제로 경찰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실 ‘인권 친화적’ 경찰이 되겠다는 경찰의 다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엔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형사 5명이 22명의 피의자를 고문한 사실이 밝혀져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이에 경찰청은 “인권보호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그간 경찰 편의적인 집회시위 제한, 무차별 일제 검문검색 등 제반 경찰권 행사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재검토, 개선하는 한편 인권위 권고사항 등을 수용한 인권침해 종합 방지대책을 마련하여 강도 높게 추진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또 “경찰 치안행정의 최우선 순위를 국민들의 인권보호 및 경찰 인권향상을 최우선으로 두고 인권경찰로 거듭날 것을 재확인했다”고 언급했다.
또 지난 2012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엔 전국 250개 경찰서를 인권 중심 경찰서로 바꿔가겠다는 선언이 있기도 했다. 당시 김기용 경찰청장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경찰이 가장 중요시해야 할 불변의 진리이자 가치”라며 인권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백남기 씨 사망 사건 등 경찰의 인권침해는 계속됐고 시민사회는 이런 행태를 보여 온 경찰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백남기투쟁본부, 밀양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이 연대한 시민단체는 최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인권 친화적 변화를 추진 중인 경찰을 향해 쓴소리를 전했다.
이들은 “인권친화적 경찰이 되겠다는 선언에 앞서야할 것은 경찰이 자행한 인권침해 역사에 대한 반성이어야 한다”며 “그동안 정당한 법 집행이라며 외면해 온 국제사회와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단체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