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종업원 폭행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정우현 MP그룹 회장이 검찰 소환이 임박한 6월 26일 서울 MP그룹본사에서 대국민사과 및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종현 기자
지난 6월 21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서울 서초구 미스터피자 본사를 비롯해 J유업 등 관계사 2곳을 압수수색했다. 1999년 설립된 J유업은 미스터피자 가맹점들에 치즈를 독점 공급해 온 업체며, 정우현 회장 일가의 가족 회사로 전해진다. 검찰에 따르면 MP그룹은 10㎏당(2.5kg/4팩) 7만 원대인 치즈를 J유업 등을 통해 8만 7000원에 공급하고, 이른바 ‘치즈 통행세’를 거둬온 것으로 조사됐다.
치즈 매입 과정에서 각 가맹점은 정 전 회장 친인척이 유통 과정에 개입해 폭리를 취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본사 가맹 계약에 따라 MP그룹이 지정한 제품 외에는 치즈를 받을 수 없었다.
MP그룹이 가맹점주 등을 상대로 공개하는 ‘정보공개서’에 따르면 J유업은 치즈 외에 피자 포장박스를 가맹점주에게 독점 공급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기준 13억여 원에 불과한 이 회사 매출은 불과 5년 만에 6배가량 급증했다. 검찰은 J유업 등이 이 같은 치즈 통행세로 수십억 원을 챙겼으며, 이 중 일부가 정 전 회장 측에 흘러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좌 추적을 하고 있다.
또 미스터피자에 치즈와 연유 등을 공급하는 S사는 2014년 설립된 신생 회사지만 MP그룹과 납품 계약을 맺고 일부 품목에 대해 독점 납품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MP그룹 관계자는 “검찰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선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검찰은 미스터피자 납품업체 가운데 정 전 회장과 특수 관계에 있거나 MP그룹 임원과 친분이 있는 업체를 상대로도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MP그룹은 가맹점주로 하여금 간판 디자인을 수시로 바꾸게 하고, 간판 제작과 납품을 또 다른 S사, N사 등에 맡겼는데 이들 업체는 정 전 회장의 고향 지인 또는 사촌동생이 운영하는 업체다. 초기 간판 공사비용은 2015년 기준 1700만~1900만 원선인데 이는 일반적인 간판업체의 견적 비용보다 2배 가까이 많은 금액이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미스터피자 점포 1곳(기준 점포면적 132㎡)당 가맹점주가 부담하는 3.3㎡당 인테리어 비용은 346만 5000원으로 경쟁업체보다 최대 180만 원가량 많았다. 최근까지 MP그룹은 점포 인테리어 공사를 앞서 밝힌 N사 등에 맡겼는데 N사는 2013년 11월 설립된 회사로 미스터피자가 거의 유일한 거래처다. 미스터피자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D사 등도 비교적 최근 회사가 설립됐지만 여러 품목의 납품 건을 따내 특혜 의혹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2016년 9월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미스터피자 본점 앞에서 미스터피자 가맹점주협의회 회원들이 미스터피자 상생협약 파기 및 치즈가격 폭리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충남 천안에 주소지를 둔 고전은 2004년 설립된 식품 제조 가공업체며, 미스터피자에 피자 도우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또 고전과 법인 주소지가 같은 굿타임은 미스터피자에 납품되는 식자재에 대한 유통 업무를 맡고 있는데 검찰은 MP그룹이 고전과 굿타임을 통해 ‘도우 통행세’ 구조를 만들고, 중간에서 폭리를 거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MP그룹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부임 이후 개시된 첫 수사라는 점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MP그룹 외에도 사회적 약자에게 ‘갑질’을 해온 여러 기업을 주시하고 있다”며 “국민적 공분이 큰 만큼 수사 강도가 세질 수 있다”고 말했다.
MP그룹은 미스터피자 탈퇴 점주가 세운 매장 인근에 직영점을 열고 보복영업을 벌였다는 의혹과 본사와 가맹점이 절반씩 부담하는 광고비를 가맹점주에게 90% 이상 전가시켰다는 의혹을 함께 받고 있다. 이 같은 ‘갑질’ 과정에서 탈퇴 점주인 이 아무개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 전 회장은 검찰 소환이 임박하자 지난 6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회장직 사퇴를 비롯해 상생위원회 구성, 친인척 경영 배제,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의 자구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경비원 폭행 전력, 가맹점주에 대한 폭언 및 자서전 강매 의혹 등으로 물의를 빚은 정 전 회장에 대한 비난 여론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검찰은 정 전 회장에 대한 조사가 끝나는 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동대문 도매상으로 시작해 연 매출 1500억 원대의 회사를 일군 정 전 회장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비슷한 성공 이력으로 한때 자수성가한 CEO의 표본으로 꼽혔다. 그러나 최근 3년간 피자 사업은 적자로 돌아섰고, 야심차게 진출한 미국 시장에선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가맹점주에 대한 갑질과 친인척을 동원한 편법 경영은 법의 심판대에 섰다. ‘외통수’에 걸린 정 전 회장은 특수통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검찰 공격을 대비하고 있다. 정운호 전 대표에 이어 또 하나의 ‘동대문 신화’가 저물지 업계 안팎의 관심이 모아진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