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안철수 후보 캠프 공명선거추진단 단장을 맡았던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28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 씨의 채용 특혜 의혹과 관련한 증거조작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대선을 코앞에 둔 5월 4일 국민의당은 ‘메가톤급’ 폭로를 예고했다. 다음 날 김인원 공명선거추진단 부단장 등은 기자회견을 통해 준용 씨 미국 파슨스 스쿨 동료의 녹음 파일을 공개하며 고용정보원 입사 때 문재인 후보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국민의당 측은 “(준용 씨 동료와) 당이 직접 통화했다”고 했다. 또 폭로한 내용에 대해 “100프로 확실하다”는 취지의 말을 네 차례나 했다.
그 후 국민의당은 30여 개의 관련 보도 자료를 쏟아내며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다. 폭로를 계기로 국민의당 네거티브의 화력은 준용 씨 취업 특혜에 초점이 맞춰졌다. 선거 전날인 5월 8일엔 준용 씨 동료 증언을 ‘가짜 인터뷰’라며 국민의당 관계자를 고발했던 추미애 민주당 대표 등에 대해 무고죄로 서울지검에 고소장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제보 내용이 조작됐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는 ‘대국민 사기극’으로 전락했다. 대선 내내 판쳤던 가짜 뉴스의 결정판이라는 지적이다.
#일주일간 무슨 일이
4월 27일 이유미 씨는 안철수 전 대표의 총선 영입 인사 ‘1호’인 이준서 전 최고위원을 만나 “준용 씨의 미국 파슨스 스쿨 동료로부터 제보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물론 꾸며낸 말이었다. 이 씨는 5월 1일 준용 씨가 문 후보 영향력으로 취업했다는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를 이 전 최고위원에게 보냈다. 이 역시 휴대전화 3대를 사용해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5월 3일엔 준용 씨 동료 증언이 담긴 음성 파일을 전송했다. 준용 씨 동료라던 인물은 이 씨 친동생이었다.
국민의당은 이 씨 제보를 별다른 검증절차 없이 5월 5일 폭로했다. 문 후보의 최대 아킬레스건이었던 준용 씨 취업 특혜를 뒷받침하는 내용이어서 충격파는 상당했다. 민주당은 인터뷰에 등장한 인물과 내용이 거짓이라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준용 씨 동료로 추정되는 인물이 인터넷상에 국민의당 폭로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의 글을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선거 막판 준용 씨 동료 증언은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그런데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폭로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 씨로부터 관련 내용을 들은 뒤 이를 일부 캠프 관계자들에게 전달했고, 여러 차례 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국민의당은 권양숙 여사 친척이 취업 특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가 허위로 밝혀지자 거센 비난에 시달리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당 일각에서 제보 내용을 신중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지지율 반전을 모색하고 있던 안 후보 캠프에선 ‘호재’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국민의당의 한 의원은 “별다른 확인도 없이 특정인의 제보만 믿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유력 대선 후보를 공격한다는 게 꺼림칙했다”면서 “당시엔 일단 터트리고 보자는 기류가 강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의원실의 보좌관도 “폭로와 고소·고발이 난무하던 상황이었지만 혹시라도 거짓이라면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라는 우려가 나왔었다. 그러자 한 의원이 ‘어차피 대선 끝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하더라. 캠프 자체가 패색이 짙어 워낙 암울했던 상황이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아니었겠느냐”라고 말했다.
#단독범행 맞을까
이 씨를 구속기소한 검찰의 수사 칼끝은 국민의당을 겨누고 있다. 검찰의 한 고위 인사는 “현직 대통령과 관련된 수사다. 검찰이 개혁 대상에 올라있는 만큼 실적을 올려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수사 강도는 셀 것”이라고 점쳤다. 국민의당은 이 씨 개인 소행이라는 입장이다. 선거 때 공명선거추진단 단장을 맡았던 이용주 의원은 이 씨가 검찰 수사에서 ‘단독 범행’이라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이 전 최고위원도 제보가 조작된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도 했다. 녹음파일 진위를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거짓말 탐지기를 할 것도 아니고 진위를 어떻게 확인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씨에게 당도 속았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 씨는 이러한 당의 스탠스에 대해 다소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씨의 한 지인은 “검찰 수사가 개시되자 이 씨가 상당히 불안해했다. 자신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얘기를 했을 뿐인데 당이 적극 부추겼다고 들었다. 조작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지만 당에서 그렇게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더라”라고 전했다. 이 씨는 소환 직전 언론사 기자에게 ‘당에서 기획해서 지시해놓고 꼬리자르기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정치권 인사들도 캠프에서 공식적으로 일하지도 않았던 개인의 제보 내용을 별다른 검증도 없이 발표했다는 국민의당 설명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준용 씨 취업 특혜 공격을 맡았던 공명선거추진단의 단장과 부단장 모두 검사 출신이라는 점도 부각된다. 최근 드러난 사실에 비춰봤을 때 최소한의 의심만 가졌더라도 쉽게 조작된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소스’를 들고 온 이 전 최고위원을 신뢰했기 때문이라는 반박도 나오지만 적어도 ‘부실 검증’ 논란만큼은 피해가기 힘들다.
국민의당 안팎에선 캠프 핵심 관계자들이 제보 내용을 적극적으로 검증하지는 않았지만 사전에 인지하고 묵인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안철수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최고위원이 가지고 온 음성 파일이 조금 이상했다. 원본을 들어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묵살됐다. 조작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폭로하는 게 더 우선시 됐다”고 전했다. 또 다른 국민의당 의원은 “(폭로 전) 조작 가능성이 제기됐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검증해야 한다는 생각을 아무도 못 했던 것 같다. 원본을 확인하는 게 취재의 기본이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지지율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털어놨다.
#‘대권 재수’ 안철수 어디로
지난해 2월 안철수 전 대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뒤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조직적 개입이 드러나면 당을 해체하겠다”라며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당 대표가 직접 해체라는 말까지 언급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대선 후 물밑에서 맴돌았던 원심력이 거세질 가능성도 높다. 탈당 후 민주당으로의 복당을 원하던 의원들 움직임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고는 있지만 “검찰 수사를 지켜볼 뿐”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고 있다.
국민의당의 한 당직자는 “안 전 대표가 조작된 제보임을 사전에 알았는지는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날 것”이라면서도 “솔직히 일반 지지자가 제보를 했다면 당 차원에서 그렇게 대대적으로 폭로했겠느냐. 안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이준서·이유미)들이 주도했기 때문에 당에서도 별다른 검증 없이 정치적 공세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자 국민의당 비안 인사들을 중심으로 “안 전 대표가 비선에 의존하다 보니 생긴 참사”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공식 캠프 중심으로 선거 전략이 짜였다면 이렇게 특정 개인의 제보가 아무런 여과 없이 폭로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대권 재수’를 선언했던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당 내에서도 안 대표가 사전에 조작을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대선 후보로서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군다나 이 씨와 이 전 최고위원은 당내에서 소위 ‘안철수 키즈’로 통했다. 안 전 대표는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던 지난 6월 24일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독대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에 대해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안 전 대표는 대선 때 네거티브와 관련해 별다른 보고를 받지 않았다. 또 이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안 전 대표까지 보고가 올라갔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안철수 키즈’ 이유미와 이준서는 누구? 이유미 씨와 이준서 전 최고위원은 당내에서 ‘안철수계’로 꼽힌다. 이 씨는 전남 여수 출신으로 안철수 전 대표와는 카이스트 기술경영대학원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났다. 이 인연으로 2012년 ‘안철수-박경철 청춘콘서트’ 서포터로 활동했으며 2013년엔 ‘66일 안철수와 함께한 희망’이라는 책을 펴냈다. 여기에서 이 씨는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을 건강하고 상식적인 세상으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며 안 전 대표 지지 이유를 밝혔다. 이 씨는 18대와 19대 대선에서 안 전 대표를 도왔다. 18대 대선에서 안 전 대표가 사퇴한 뒤 급식 식사량 사전 예측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엄청난벤처를 창업해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이 씨는 창조경제 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이 씨는 19대와 20대 총선에서 전남 여수갑 국민의당 예비 후보로 직접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당시 가족들은 이 씨의 정치 입문을 완강하게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이준서 전 최고위원은 2011년 소셜디자인 벤처기업 에코준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세계3대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2014년엔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로 꼽히는 카림 라시드와 합작 벤처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됐다. 안 전 대표는 2016년 1월 이 전 최고위원을 영입하면서 “젊은 IT 창업가들이 마포 당사를 찾아왔다. 이준서 에코준 대표, 허지원 지원인스티튜트 대표다. 젊은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하겠다고 한다. ‘천하의 인재’가 다 모이는 국민의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국민의당에 입당한 뒤 청년 비대위원을 역임했다. 이번 대선에선 2030희망위원장직을 맡았다. 지난해 20대 총선 땐 “두 달간의 짧은 정치적 경험과 패기로 국민을 위한 국회의원이 되기에 저는 부족함이 많다”며 청년 비례대표 신청을 철회하기도 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
역대 대선 폭로 살펴보니…이회창 되로 주고 말로 받고 문준용 제보 조작 사건에 대해 국민의당은 당원인 이유미 씨 단독 범행이었다며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부실검증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대선 때만 되면 반복되는 역대 대형폭로 사건을 살펴봤다. #1992년 초원복집 사건 14대 대선 막판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측은 1992년 12월 15일 부산지역 기관장 7명이 부산 남구 초원복집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당선을 위한 대책 회의를 가졌다고 폭로하고 이들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서 부산지역 기관장들은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눈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했으며, 언론은 관권 선거의 부도덕성보다 도청의 부당함을 더 부각시켰다. 때문에 통일국민당이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김영삼 후보에 대한 영남 지지층이 결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14대 대선에서는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 1997년 김대중 비자금 의혹 15대 대선 선거를 2개월여 앞둔 1997년 10월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 측에서 김대중 후보를 겨냥해 670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했다. 이회창 캠프의 강삼재 사무총장은 “김대중 후보가 처조카 이형택을 통해 670억 원을 관리했다”는 내용의 ‘김대중 비자금’을 폭로했다. 또 1991년 초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 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는 주장까지 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이 사건을 수사할 경우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극심한 국론 분열을 유발해 경제 회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대선 전까지 수사를 완료하기도 힘들다”면서 수사를 유보했다. 이회창 후보 측은 김대중 비자금 의혹 제기로 별다른 반사효과를 보지 못했고 대선에서 패배했다. # 2002년 김대업 병풍 폭로 2002년 16대 대선을 6개월 앞두고 김대업 씨는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이 허위 진단서를 받아 병역 면제를 받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의 부인이 장남 병역 문제에 연루됐다고도 했다. 김 씨는 이와 관련된 녹취록을 공개했지만 검찰은 음질이 양호하지 못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낼 수 없었고 테이프는 증거 능력을 가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검찰은 대선 두 달 전 수사를 마친 뒤 이 후보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대업 씨는 2004년 2월 27일 수사관 자격 사칭과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1년 10월의 형을 받았다. # 2007년 BBK 사건 2007년 17대 대선은 네거티브 공방이 가장 치열했던 선거로 꼽힌다. 당시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 후보의 최태민 의혹을 집중 부각시켰고, 박 후보는 이 후보의 BBK 의혹으로 맞섰다. ‘BBK 주가조작 사건’은 2000년대 초 BBK 투자자문 대표 김경준이 옵셔널벤처스를 인수한 뒤 주가를 조작하고, 소액주주 5200명에게 384억 원의 피해를 입힌 사건이다. 그런데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후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이 됐다.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 당선 이후 BBK 특검 조사까지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김경준 씨는 출소 후 미국으로 돌아간 최근까지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