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카를라 브루니는 1987년부터 모델로 활동하며 1990년대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게스 청바지 모델로 주목 받은 후 브루니는 크리스티앙 디오르, 지방시, 파코 라반, 소냐 리키엘, 베르사체, 샤넬, 이브 생 로랑, 칼 라거펠트, 베르사체 등 수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았고, 1년에 수백만 달러를 버는 모델이 된다. 10년 동안 런웨이에 섰던 그녀는 1997년 뮤지션으로 데뷔했고 2002년에 첫 앨범을 냈다. 이것은 셀러브리티의 허세가 아니었다. 뛰어난 작사 솜씨를 지녔던 브루니는 늦깎이 데뷔였지만 유망주로 평가 받았고 영부인이 된 후에도 앨범을 내며 음악 활동을 했다.
카를라 브루니는 한때 도널드 트럼프와도 사귀었으니, 대서양 양쪽의 대통령과 모두 인연을 맺었던 셈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모델이자 지적 능력과 음악적 감성을 동시에 지닌 카를라 브루니. 수많은 남자들은 그녀를 뮤즈로 삼거나 연정의 대상으로 여겼고, 20대 초반부터 브루니의 연애 행각은 쉴 시간이 없었다. 그 명단은 놀랍고 화려하다. 일단 에릭 클랩튼이나 믹 재거 같은, 스무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거장급 뮤지션들로 시작했다. 유고슬라비아의 디미트리 왕자, 할리우드 스타인 케빈 코스트너, 프랑스 배우인 뱅상 페레와 기욤 카네….
한때 도널드 트럼프와도 사귀었으니, 대서양 양쪽의 대통령과 모두 인연을 맺었던 셈이다. 그리스의 모델 제니 힐로다키와 동성애 관계이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어느 디너파티에서 사르코지를 만났고 2008년 2월 2일 결혼해 그녀는 영부인이 된다. “나는 핵무기를 좌지우지할 권력을 가진 남자를 원한다”는 그녀의 신념은 현실화된 셈이다.
‘남자 사냥꾼’으로 불리던 브루니의 연애 편력은 잔인했다. 그녀는 단지 잠깐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니라, 때론 파멸시켰다. 몇몇은 유부남들은 브루니 때문에 이혼해야 했다. 가장 고약한 관계는, 이후 두고두고 회자되었던 앙토방 부자와의 스캔들이었다. 카를라 브루니는 1999년 저명한 저널리스트 장-폴 앙토방을 만난다. 브루니는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남자들과 여러 차례 연인 관계를 맺었는데, 장-폴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브루니보다 19세 많았다. 30대 초반의 여성과 50대 초반의 중년남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1년 만에 끝났다.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브루니가 다른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 대상은 장-폴 앙토방의 아들인 라파엘 앙토방. 훈남 철학자였고 카를라 브루니보다 7세 연하였던 그 남자는 아버지의 여자를 빼앗았다. 아니, 브루니가 아버지 앙토방을 버리고 아들 앙토방을 선택했다고 표현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문제는 당시 라파엘이 결혼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그는 1995년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한 살 많았던 쥐스틴 레비와 결혼했다. 그녀는 프랑스 철학계의 거두인 베르나르-앙리 레비의 딸. 촉망 받은 젊은 철학자는 존경해 마지않는 대가의 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카를라 브루니가 아버지의 서재에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앙토방 부자
스물다섯 살의 라파엘은 수많은 남성을 섭렵한 브루니의 노련한 리드에 끌려 다녔다. 브루니는 자신의 음반에 ‘라파엘’이라는 세레나데의 노래를 수록했고, 라파엘 앙토방은 완전히 넘어갔다. 문제는 그와 그의 아내 사이에서 생겼다. 당시 쥐스틴 레비는 임신 중이었는데, 라파엘은 낙태를 요구했다. 교수 임용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가 생기면 방해가 된다는 이기적이며 잔인한 이유를 들었다. 레비는 남편의 요구대로 수술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라파엘은 이혼을 요구했고 브루니와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라파엘 앙토방과 카를라 브루니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
이 사건은 쥐스틴 레비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한동안 약물 중독에 빠져 지내던 그녀는 2004년 이 자신이 겪은 일을 토대로 소설 <심각하지 않아>를 내놓으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한국에도 출간된 이 소설의 주인공 루이스는 레비 자신을 투영한 인물. 카를라 브루니는 ‘파울라’라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그녀는 수많은 성형을 한 ‘살인자의 미소를 띤 터미네이터’로 묘사된다.
브루니와 라파엘 앙토방의 관계는 2007년까지 약 7년 동안 이어졌다. 브루니는 결국 라파엘을 버리고 사르코지에게 갔고, 라파엘은 여배우 클로에 람베르와 연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브루니는 사르코지에게 정착한 걸까? 그 ‘자유로운 영혼’이 그럴 리 없다. 영부인이던 시절 그녀는 뮤지션 벵자멩 비올레이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루머가 돌았고, 이에 사르코지는 환경부 장관인 샹탈 주아노와 맞바람을 피웠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한편 브루니는 전남편인 라파엘 앙토방을 대통령의 비공식 자문단으로 추천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오렐리앙과 함께 정기적으로 엘리제궁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