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범인과 공범이 함께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진 트위터 기반 캐릭터 커뮤니티.
큰 틀이 짜여있다고는 하지만 각 참가자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캐릭터를 만들 때 얕게는 생년월일과 신체 사이즈부터, 더 깊이 들어간다면 캐릭터의 과거와 성향, 말버릇, 연인관계처럼 아주 세밀한 설정을 구축해 역할극을 진행한다. 자신이 세세하게 설정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현실의 자신과 커뮤니티 속 캐릭터를 완전히 동일시하는 일이 많다. 이른바 ‘앤캐(캐릭터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캐릭터와 연인관계인 다른 캐릭터)’에 대한 집착은 이런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양의 경우는 지난 1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마피아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 20명 남짓의 인원이 참가한 이 커뮤니티는 지역 세력권 쟁탈전을 위해 반대 진영의 마피아 조직원들과 대립하는 시나리오로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대립하는 상대 조직원들을 살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 참가자들을 배제했으나 김 양은 자신을 30살이라고 속이고 커뮤니티에 참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 양은 이 커뮤니티에서 공범 박 양을 처음으로 만났다.
김 양이 자신이 활동한 마피아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캐릭터 설정을 설명한 트윗. 김 양이 트윗에서 언급한 ‘상사’는 박 양의 캐릭터를 가리킨다. 트위터 캡처.
SNS를 기반으로 하는 캐릭터 커뮤니티는 보통 일주일~보름 정도로 단기간에 활동을 종료하는 경우가 많다. 김 양과 박 양의 마피아 커뮤니티도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보름 정도만 유지된 뒤 종료됐다. 그러나 김 양은 커뮤니티가 종료된 이후에도 자신의 캐릭터와 박 양의 캐릭터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실제로 김 양과 박 양이 트위터 개인계정으로 나눈 대화들은 대다수가 마피아 커뮤니티 내에서 자신들의 캐릭터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김 양은 자신이 박 양의 캐릭터에 얼마나 종속돼 있는지, 박 양의 캐릭터에 대한 자신의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양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괴롭혀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 양이 자신의 캐릭터를 잔인하게 대하는 글을 써 줄 때마다 김 양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김 양의 행태는 자신과 캐릭터를 동일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김 양의 과거 다른 캐릭터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행적을 살펴본 결과 김 양이 자신의 캐릭터에 극도로 이입하는 모습을 보여 온 것이 확인됐다. 자신의 캐릭터에게 불행한 미래와 관련한 설정을 짜놓고도 그 슬픔에 못 이겨 “캐릭터에게 너무 미안하다. 두 시간을 울었다”라고 할 정도였다.
이처럼 김 양이 자신의 캐릭터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이 감정 이입을 했기 때문에 범행 당시 캐릭터 커뮤니티와 현실에 대한 구분이 모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범행을 저지를 때 김 양은 “사냥하러 간다” “(피해 아동의) 손가락이 예쁘다”라며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사용하던 말투를 그대로 사용했다.
공범 박 양이 자신의 캐릭터 설정에 대해 설명한 모습. 박 양의 설정과 김 양이 박 양에게 건넨 피해 아동의 신체부위가 일치한다.
실제로 <일요신문> 취재 결과 김 양은 박 양의 캐릭터 설정 가운데 하나인 “인육을 먹는다”와 “신체 특정 부위를 선호한다”에 맞춰 피해 아동의 시신을 선물로 가져다 준 사실이 확인됐다. 김 양이 박 양에게 건넨 피해 아동의 시신 일부는 박 양의 캐릭터가 선호하는 신체 부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박 양이 자신의 캐릭터인 ‘조직의 보스’를 이용해 김 양이 범행에 이르도록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편 김 양은 박 양이 “네 안에 살인도 저지를 수 있는 난폭한 인격 J가 있다”라고 자신을 부추겨 범행을 교사했고, 범행을 저지른 것 역시 자신이 아니라 J라고 폭로해 충격을 줬다. 앞선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김 양은 조사가 시작되기 직전 “지금부터는 난폭한 인격인 J가 나온다” “오늘은 상냥한 인격인 A가 대답할 것 같다”라며 다중인격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난 4일 공판에서 검찰은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해 “실제로 다중인격이라면 각 인격이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해야 한다”라며 김 양의 주장이 양형을 낮추기 위한 허위주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앤캐·관계캐 안끊을 것” 공범 박양 구속 이후에도 ‘커뮤’에 삐죽 지난달 29일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돼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던 박 양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박 양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지인이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김 양 관련 정보를 제보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이 문제가 끝나면 앤캐/관계캐 오너들에게도 사정을 설명 드릴 예정입니다. 오너님들께 사과드리며 관계를 깰 생각은 없으니 알아주세요”라고 밝혔다. ‘앤캐’가 캐릭터 커뮤니티 내 ‘애인 캐릭터’를 말한다면, ‘관계캐’는 애인까지는 아니지만 서로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관심을 보이는 캐릭터를 말한다. 결국 캐릭터 커뮤니티와 관련한 사건에 휘말렸으면서도 여전히 커뮤니티 내 인간관계를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구속 상태인 박 양이 자신의 지인에게 부탁해 트위터로 김 양과 관련한 진술을 확보하는 한편, 캐릭터 커뮤니티 내 ‘앤캐’들에게 사과와 당부의 말을 남겼다. 트위터 캡처. 김 양과 박 양이 주로 활동하던 커뮤니티는 ‘시리어스 고어 커뮤니티’로 확인되고 있다. ‘시리어스’는 말 그대로 진지한 분위기를 뜻하고, ‘고어(gore)’는 커뮤니티 참가자끼리 서로 죽이거나 고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스토리를 말한다. 이 같은 커뮤니티는 상대방을 얼마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살해하고 고문하는지가 참가자 캐릭터의 인기의 척도가 된다. 이 때문에 참가자들은 누가 더 잔인하고 끔찍하게 캐릭터를 학대하는지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트위터를 이용한 캐릭터 커뮤니티는 실제 사용하는 본인 계정 외에 자신의 캐릭터 계정을 따로 만들어 활동하게 된다. 캐릭터의 사진을 프로필에 추가하고 그 캐릭터의 성향과 설정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식이다. SNS 특성상 24시간 내내 캐릭터 커뮤니티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에 김 양처럼 자신과 캐릭터를 동일시해 감정 이입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캐릭터 커뮤니티 내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캐릭터와 다른 캐릭터를 연인으로 맺어주기도 한다. 이 경우 애인 캐릭터의 오너는 줄임말로 ‘앤오’라고 부른다. 애인이 되고 싶다고 무작정 접근한다고 해서 앤캐가 성사되는 게 아니라 상대 캐릭터에게 고백 글을 써서 보내는 ‘고백로그(고록)’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상대가 ‘수락로그(수록)’을 보내야 비로소 앤캐가 된다. 이 같은 앤캐는 캐릭터 커뮤니티가 종료된 후에도 관계가 이어진다. 커뮤니티를 위해 만든 캐릭터 계정을 삭제하지 않고 상대방과 연락을 유지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넘어 캐릭터의 오너, 즉 실제 사람에게까지 현실에서도 연인과 같은 일을 강요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 한편 이 같은 캐릭터 커뮤니티는 설정이나 운영이 자유롭고 여러 장르가 복합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시리어스 커뮤니티 외에도 다양한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건을 지정하고 참가자들 가운데 범인을 맞추는 ‘추리커’, 판타지 세계를 구축하고 방대한 설정에 따른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스토리커’, 참가자들이 서로 연인관계를 맺거나 우정을 나누는 ‘힐링커’ 등이 있다. 이번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인 김 양은 주로 시리어스 커뮤니티에서 활동했지만 박 양은 힐링커나 스토리커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