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 회장 겸 국민은행장. 연합뉴스
요즘 금융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새로 선임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누가 선임될지다. 그중에서도 특히 KB금융그룹이 금융당국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이는 KB금융의 지배구조에 금융당국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KB금융은 여러 이유로 금융당국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어왔는데, 특히 역대 수장들이 대부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전례를 갖고 있다. 역대 KB금융 회장 중 임기 3년을 다 채운 인물은 어윤대 전 회장뿐이다.
KB금융은 겉으로는 정부의 지분이 전혀 없는 순수 민간금융회사다. 하지만 핵심 계열사인 국민은행이 국책은행인 주택은행과 합병을 통해 탄생했다는 태생적 배경 때문에 정부의 입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특히 지주사 회장이나 국민은행장 등 최고 경영진에 정부나 정치권 출신 인사가 종종 거론되며 취약점을 노출해왔다.
현직 회장인 윤종규 회장은 외환은행 출신으로 삼일회계법인을 거쳐 국민은행에 합류한 금융인 출신이자 내부 인사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했다가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최종임용을 받지 못한 반(半)관료 출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그가 회장에 취임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 등 정부의 의중이 일정 부분 반영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찌됐건 그는 민간 출신 최고경영자(CEO)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1인자인 그를 제외한 나머지 핵심 권력자의 자리가 사실상 대부분 비어 있다는 점이다. KB금융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KB금융지주 사장은 지난해 1월 논란 끝에 친정으로 복귀한 김옥찬 사장이 맡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사회에 합류하지 못하며 ‘실권’에 물음표가 붙어 있다. 역대 KB금융 사장은 모두 사내이사로 선임돼 명실상부한 2인자로 자리매김해왔다.
‘넘버3’ 격인 국민은행장은 윤종규 회장이 겸임하고 있다. 윤 회장은 2014년 말 KB금융지주 회장과 국민은행장 사이의 충돌로 빚어진 이른바 ‘KB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아예 은행장을 겸직했다.
국민은행장 다음 서열인 상임감사는 더욱 심각하다. 국민은행 감사직은 2년 6개월째 후임자를 선정하지 못한 채 공석이다. 내부 권력서열 1~4위 자리가 모두 새정부 출범 후폭풍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는 셈이다.
우선 2014년 11월 취임한 윤 회장의 임기는 4개월 남짓 남아 있는데, 연임은 무난할 것이라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금융당국 수장들이 교체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연합
윤 회장은 확실한 우군이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명목상 최종구 금융위원장 내정자와 행시 동기지만, 앞서 말했듯 공직에 임용되지 않아 연결고리가 약하다. 또 차기 금융감독원장에는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금감원장이 바뀌면 부원장보 이상 임원들도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상당수가 교체된다. 금감원은 그동안 승진한 지 1년 이내의 임원을 제외하면 모두 물러나는 것이 관례처럼 돼왔다. 따라서 윤 회장이 금융당국의 인사 소용돌이의 후폭풍을 무탈하게 넘길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국민은행장 분리는 윤 회장의 취임 공약이었던 만큼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미 금융권에서는 실명이 거론되면서 하마평이 구체화되고 있다.
차기 국민은행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이홍 KB국민은행 부행장과 박지우 KB캐피탈 사장이다. 이들은 지난해 은행장직의 분리설이 처음 나돌았을 당시에도 하마평에 올랐다.
이홍 부행장은 1958년생으로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국민은행에 입행했다. 외환업무부 부장, HR본부장 등을 거쳐 2013년 기업금융본부 부행장으로 선임됐고 현재는 경영기획그룹 부행장을 맡고 있다.
이 부행장은 윤 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가 김옥찬 KB금융지주 사장을 제치고 윤 회장과 함께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의 입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KB금융의 회장 자리가 비는 상황이면 김 사장이 아니라 이 부행장이 권한대행을 맡는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1957년생으로 서강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국민은행에 입행했다. 온라인채널본부 본부장, 신용카드사업 부행장, 마케팅본부장(부사장), 고객만족본부 본부장(부행장) 등을 거쳐 2015년 3월 KB캐피탈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박 사장은 KB금융 사태 당시 영업본부장(부행장)을 맡던 인물로 KB금융 사태의 핵심 당사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당시 박 사장은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고 사퇴했지만 몇 달 만에 복귀하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두 사람 외에 윤웅원 KB국민카드 사장도 후보로 꼽힌다. 1960년생으로 상대적으로 젊은 축인 윤 사장은 1990년에 국민은행에 들어갔다. KB금융지주 경영관리부장, 국민은행 재무관리본부장, KB금융지주 부사장 등을 거쳐 2016년 1월 KB국민카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외부 인사가 입성할 수 있는 유력 창구로 꼽혀온 상임감사 자리는 KB가 최근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KB금융 상임감사직은 2015년 1월 정병기 전 감사가 사퇴한 이후 2년 6개월째 공석인데, 후임자를 선임하는 작업을 시작하는 대신 자격요건만 강화한 것은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기 위해 사전에 내부 규정을 정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상임감사위원의 직무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회사 등의 감사 또는 재무업무 등에 일정 기간 근무한 경력을 고려해 후보를 추천한다’는 내용의 지배구조 내부 규범을 만들었다. 금융회사 경험이 없는 인사는 감사를 맡을 수 없다는 의미로, 정부나 금융감독 당국 등에서 낙하산을 내려 보내려는 시도를 차단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KB 측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금융권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관료나 정치권 입장에서 볼 때 KB금융 최고위직은 상당히 매력적인 자리”라면서 “그간의 전례를 볼 때 금융당국의 변화가 KB금융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