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씨는 송 씨 이전에 이 아무개 씨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지난해 피소됐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박 씨는 이 씨를 무고죄로 고소했고, 이 씨는 유죄가 인정돼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이후 송 씨 역시 허위사실로 고소했다는 무고죄로 피소돼 첫 번째 고소여성으로 불리는 이 씨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일부 여론이 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송 씨는 이 씨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우선 법원이 ‘구속 필요성이 낮다’며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고, 검찰이 반대했음에도 국민참여재판이 개시됐다. 불구속 상태였던 송 씨는 사복 차림으로 피고인석에 나왔다.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배우 겸 가수 박유천이 지난해 6월 30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는 모습. 고성준 기자
송 씨의 변호인은 검찰 공소사실 가운데 피고인이 금전적인 목적으로 박 씨를 고소했다는 것을 부인하며 검찰과 대립되는 변론을 이어갔다. 변호인은 “송 씨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피고인은 성관계 이후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었다”며 “첫 번째 고소여성과도 유흥업소 직원인 것만 빼고는 같은 게 없다. 검사가 합리적 의심을 갖고 입증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해 달라”고 배심원단에 호소했다.
박 씨와 송 씨의 진술이 상반됨에도 분명한 사실은 지난 2017년 12월 17일 박 씨와 송 씨가 강남 소재 텐카페에서 만났고, 더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함께 남자화장실에 들어갔고 이후 성관계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CCTV 영상도 없었고 이들 각자의 증언을 뒷받침할 만한 단서는 전무했다. 가장 중요한 판단의 근거는 이들의 진술이었다.
검찰 측에서는 “송 씨가 화장실 내 본인의 위치와 박 씨의 성폭행 상황을 계속해서 번복했다. 없었던 것을 말하기 때문에 말이 계속 바뀌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피고인이 지인에게 성폭행 사실을 말할 당시 박 씨가 주기로 했다는 돈 액수도 자꾸 바뀌는데 뭐가 맞는거냐”고 물었다. 또 검찰은 송 씨가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송 씨의 경우 이전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던 여성들과 매우 다르다”며 “성폭행을 당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송 씨는 화장실 문을 열 수 있었음에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피고인 송 씨는 “바깥에서 음악 소리가 크게 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해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러려고 음악 소리를 크게 튼 것이 아닌가 생각이 번뜩 들었다”면서 “퇴근하고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박 씨가 유명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보복을 당할 것이 너무 무서워서 신고접수를 포기했다. 친한 친구들도 내가 업소여성이라는 약자이기 때문에 질 것 같으니 신고하지 말라고 조언해줬다”고 말했다. 배심원이 “왜 추가적으로 정액 DNA 검사를 하지 않았냐”고도 묻자 송 씨는 “남성 신원을 밝혀야지만 검사가 가능하다고 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다른 논쟁의 중심은 피고인 송 씨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송 씨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한 뒤 지인인 정 아무개 씨 등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검찰 측은 “송 씨가 ‘꽁으로 따먹혔다’, ‘2000만 원 주기로 했는데 안왔다’, ‘성폭행 신고해야겠다’는 등의 내용을 보냈는데 성폭행을 입었다는 사람이 ‘꽁으로’나 ‘따먹었다’와 같은 단어를 쓴 데다가, 강제로 당해서 신고했다기보다 돈을 안주니 신고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검찰 수사 결과 송 씨가 경찰에 문자내역을 제출하기 전에 일부 문자를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변호인은 “전체 문자 중에 검찰에게 유리한 일부만 법정에서 보여주고 있다. 전체 맥락을 보면 피고인이 그런 단어와 문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송 씨는 “그 당시 성폭행을 당하고 정신이 없던 상황이었고, 당시 쓰던 말이 저속했다. 환심을 사려는 노력 없이 억지로 성관계를 당한 것은 확실하다”며 “문자내역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경찰에 제출하려고 했지만 첫 번째로 선임했던 변호사가 일부 내용을 지우라고 해서 그 말을 들었던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피고인 송 씨와 사건 당일 같은 장소에 종업원으로 근무했던 A 씨가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을 이어갔다. A 씨는 “방 안 화장실은 손님들이 이용을 하고 들어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과도한 스킨십이 일어날 수 있는 폐쇄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화장실까지 들어가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동안 업소에서 성매매나 성관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변호인 측 증인으로 지난해 송 씨의 성폭행을 보도한 기자 등이 출석했다. 이들은 “박 씨 성폭행 피해자가 또 있다는 보도를 했었다”며 “저널리즘을 기본으로 박 씨의 성폭행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고, 박 씨 측 입장을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했기 때문에 보도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송 씨에게 무고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구형했고, 송 씨는 마지막으로 “나는 성폭행 피해자”라며 “1년 반이 지났는데 이렇게 거짓말을 세세하게 할 수가 있냐. 박유천이 뻔뻔하게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오열했다. 재판부는 이런 송 씨에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허위사실을 신고하거나, 허위사실로 박 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 7명도 만장일치로 두 가지 혐의에 대해 무죄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348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유명연예인 박유천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방청을 위해 줄서서 기다렸고 재판이 끝난 다음날 새벽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검찰이 신문을 할 때 비웃거나 야유를 보내 재판부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날 재판은 오전 11시께 시작돼 치열한 공방 끝에 다음날 새벽에야 선고 판결이 났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