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구의회 정성철 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6월 16일 부산시청에서 시위를 갖고 해운대 우동 운촌삼거리에서 송정에 이르는 구간에 대한 BRT사업 철회를 요구했다.
간선급행버스체계 혹은 중앙버스전용차로 등으로 불리는 BRT는 도심과 외곽을 잇는 주요 간선도로에 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해 급행버스를 운행케 하는 대중교통시스템을 말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실시됐으며 국내에서는 2005년 말께 서울시와 대전시에서 선을 보인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부산지역에서 해당 사업이 급피치를 올린 건 서병수 시장의 취임 이후부터다. 대중교통 활성화와 교통정체 해소라는 기본 취지가 시민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급물살을 탔다.
# 사망사고 잦은 데도 사업 추진에 적극 나선 부산시
최근 서울시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2015년까지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1487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46명이 사망하고 3518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교통 이용자들에겐 약간의 편의가 주어졌지만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진 셈이다.
부산에서 BRT와 관련해 사고다발지역으로 꼽히는 곳은 덕천역 환승센터 일대다. 이곳은 사업 완료 이후 최근까지 사망사고가 네 건이나 발생했다. 사망사고 외에 단순 교통사고를 포함한 전체 사고발생 건수는 집계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사고가 잦은 이유로는 시장이란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환승센터를 만들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전통시장은 노년층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들이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뛰어가다 보니 사고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실에도 부산시는 BRT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서병수 시장의 핵심교통정책으로 자리매김했다. 시는 부산 시내 주요 간선도로를 대상으로 1·2차로 나눠 사업을 진행키로 했다(표 BRT 세부 추진 내용 참조). 1·2차사업의 총 길이는 36.4km이며 사업비는 1100억 원에 이른다. 문현~수영, 대티~하단, 하단~진해, 내성~양산 등은 중·장기 검토사업으로 남았다.
시가 발 빠른 행보를 이어가는 도중 문제점이 속속 드러났다. 우선 BRT 개통 이후 버스의 운행 속도는 개선됐지만, 승용차들의 속도는 크게 떨어져 도로의 정체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버스와 승용차 통행시간도 배 이상이나 차이가 났다.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민원이 폭주한 해운대
시민들의 불만은 해운대에서 터졌다. 올림픽교차로에서 운촌삼거리에 이르는 1.3㎞ 구간 개통과 맞물리면서 정점으로 치달았다. 공사가 본격화하고 완공을 향하자 가뜩이나 심한 교통체증이 갈수록 극에 달했다. 이미 완공을 눈앞에 둔 공사는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건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부산시와 해운대구에 민원이 폭주했다. 지역주민들의 불만은 정치권으로 이어졌다. 부산 해운대구 구의회 정성철 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은 6월 16일 부산시청에서 시위를 갖고 해운대 우동 운촌삼거리에서 송정에 이르는 구간에 대한 BRT 사업 철회를 요구했다.
이날 의원들은 “부산시는 지역주민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 밀어붙이기식 졸속행정을 당장 멈춰라”면서 “이후 일어나는 교통지옥에 대한 모든 책임은 서병수 시장을 비롯한 부산시와 해운대구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버스전용차로에 승용차를 다니게 한다?
부산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추경예산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버스전용차로에 일반차량도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납득하기 힘든 단서조항을 단 것도 논란거리다. BRT 사업이 말썽 많은 ‘뜨거운 감자’임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부산시의회는 최근 2017년 1차 추가경정예산 심의에서 BRT 추가 설치 예산 20억 원을 의결하며 ‘해운대구 운촌삼거리~부산기계공고 앞 500m 구간을 버스와 일반차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혼용차로로 시공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BRT가 시내버스의 통행속도 개선을 위한 사업인데도 승용차 등 일반차량도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최준식 부산시의원(해운대2)은 “BRT 사업에 대한 구민들의 반대와 찬성이 팽팽하고 해당 구간이 커브길인 점을 고려했다”고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예산을 따낸다는 목적을 배경으로 단서조항을 삽입한 채 시의회가 일방적으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는 일부 보도는 맞지 않다. 부산시도 분명 이(버스·일반차 혼용)에 동의했다. 오히려 시가 단서조항 삽입을 유도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 사업진행 보류 구간 발생
논란은 결국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부산시는 최근 들어 해운대 올림픽교차로~송정삼거리(7.1㎞) BRT 구간 중 중동 지하차도~송정삼거리 4㎞ 구간 사업을 잠정 보류했다. 시가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민원이 폭주한 탓이란 게 중론이다.
부산시 송광행 대중교통과장은 “사업을 완전히 중단한 건 아니다. 상황의 변화가 생기면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추진을 보류할 정도의 사업이라면 당초 계획에서 제외하는 게 옳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여러 측면을 고려했을 때, 설계 당시에는 해당 구간도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시가 이미 예정된 사업을 보류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서병수 시장의 핵심사업인 BRT는 계획대로 진행되기가 힘들게 됐다. 지역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치적에만 열을 올린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편, 서병수 시장은 7월 4일 취임 3주년을 맞아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지난 3년간의 성적을 점수로 매기면 80점”이라고 자평했다.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아전인수’격인 평점으로 보고 있다. 엘시티 등 시정에서 한발 비껴선 사안을 제외하더라도 가덕도신공항 유치 실패와 BRT와 관련한 민원이 많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자평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서병수 시장은 이날 BRT에 대한 질문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불편이 커서 반대 목소리가 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찬성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앞으로 중앙대로까지 BRT를 진행하면 편의성이 한층 확대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